[영화리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리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이문원
  • 승인 2004.03.22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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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고통’의 전율적인 서사시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는 호칭은, 주로 폭력묘사를 나름의 미학적 비전으로 재구성시키는 작가들, 샘 페킨파나 그에게 강한 영향을 받은 오우삼과 같은 액션영화 감독들에게 붙여지는 모종의 '훈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에 비해 액션스타 출신 감독 멜 깁슨의 비젼은 '시인'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프로모터'에 가까운 것으로서, 비일상적 폭력묘사를 가능한한 사실적이고 전율적으로 묘사하는 데 모든 테크닉을 집중시켜 관객들로 하여금 말초적으로 영화 속 폭력묘사에 반응토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 전체의 감각적 심상을 극한까지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화제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멜 깁슨의 신작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그의 이런 극단적인 비젼이 가장 '신성한' 소재와 만나 지금껏 보지 못했던 기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이며, 비단 '그리스도 영화' 장르의 구분 안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영화 장르를 통털어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법한 독특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먼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어떤 시선으로 이 민감한 종교적 소재를 다루고 있는지 살펴 보기로 하자. 이야기 구조 만으로만 본다면, 이 영화는 '종교적 충실함'의 극치이다. 이 영화에는 그 '이야기의 구성' 면에서 파격적 요소라곤 전혀 없으며, 오히려 종교적 감흥을 증폭시키고, 그 의미를 보다 포괄적으로 확장시키거나 대체시키는 대신, 기존의 의미 체계를 더욱 굳건히 완결시켜 주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영화에는 전혀 '개인적 비젼'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 오직 '성서'가 언급하고 있는 이야기 그대로를 구현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여기서 '벗어나는' 일을 철저히 부정하고, 제어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구조적 측면에서 표현 방식의 문제로 넘어가는 과정에 이르면 단 하나의, 그리고 이 영화를 결정적으로 다른 '그리스도 영화'들과 구분시키는 요소가 발생하고 만다. 바로, 이 영화는 예수의 정신적 고통보다는 육체적 고통과 그 해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진정한 '육체적 고통의 서사시'이다. 예수라는, 정신적 사고와 종교적 믿음의 집합체적인 인물을 놓고 그 정신적/종교적 의미 대신 육체적 의미로서만 접근한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이미 명백한 논란점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그 엄청난 폭력장면들, 거의 새디즘/매저키즘 시네마에 근접해있다는 느낌을 주는, 화면을 쳐다보기도 고통스러운 폭력장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이 영화가 예수와 예수의 고통에 대해 기존의 것과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듯 보인다. '고문 장면의 대가' 멜 깁슨은 과연 이전에 비해 훨씬 확장된 테크닉으로 예수에게 쏟아지는 고문을 묘사한다. 칼렙 데스채널이 구사하는 음영의 섬찟한 대비와 기하학적 앵글, 전율적이고 긴장의 고삐를 급하게 죄어오는 존 데브니의 음악, 슬로우모션과 예기치 못한 동작중 컷으로 허를 찌르는 자극적인 편집방식, 그리고 예수를 실감나는 만신창이로 만들어놓는 분장테크닉에 이르기까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 이 '육체적 고통의 과정'은 순식간에 관객들의 피부 끝으로 파고들어 과부하 상태에 이를 듯한 감각적 동일화를 이뤄내고, 이를 통해 수많은 영화들에서 묘사한 바 있는 예수의 고통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밀착적인 반응을 거둬내고 있다. 이 '육체적 고통'은 곧 영화의 주제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육체적 고통의 시점과 그 '정도'의 차로서 영화의 호흡구조를 만들어내고, 리듬감을 부여하며, 결국 '인류를 위한 희생'이라는 고통의 궁극적 목적성을 일괄적으로 함축해 폭발시켜 버린다. 이런 종류의 접근 방식으로 인해 얻어질 수 있는 감흥이란, 어찌보면 모던 시네마가 수없이 탐구해온 방법론에 대한 예기치 못한 해답으로서, 이 말초적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비로소 예수를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인간'으로서 받아들이며, '인간'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뛰어넘어버린 그의 숭고한 신성 추구에 대해 지금껏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완벽한 '사랑의 완성'으로서 예수의 진정한 위대함을 더듬게 된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 '예수'의 희생과 고통은 육체적 범주를 뛰어넘은 '사랑의 사상'의 결정체였다. 그의 고통은 사고하는 고통이었으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처럼 다소 선정적인 극사실주의 묘사로는 예수의 희생에 대해 표피적인 이해 외에는 얻어내기 힘들다는 것이 바로 '정석론'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예수의 정신세계를 가늠해내려는 시도는 수없이 행해져 왔고, 보다 깊이있는 철학적 사유 또한 지난 100여년 간 스크린의 안과 밖에서 수없이 이뤄져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멜 깁슨의, 사고의 깊이 면에서 야트막하고, 표현의 정도 상으로 '하드-코어'적인 예수 이야기가 신선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놀랍게도 '그 이상'의 의미 또한 지니고 있는데, 바로 '감각' 그 자체를 '진실'로서 받아들이고, 또 이해하고 있는 'MTV' 세대들에게 가장 적합한 종류의 절실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며, 이 점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단순한 프릭쇼-센세이셔널리즘에서 탈출시켜 전혀 다른 영역, 아무도 가지 않았고, 아무도 '가려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힘있게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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