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기생이 현대로 돌아왔다
조선시대의 기생이 현대로 돌아왔다
  • 김윤재
  • 승인 2006.08.2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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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기생주점을 아시나요?
영등포의 유래는 정확히 정해진 것이 없다. 예전 무속 신앙으로 음력 2월 초하루를 영등날이라 하여 무당이 보름동안 영등굿을 하게 되는데 이는 풍우를 관장하는 영등할머니가 2월 초하루 세상에 내려왔다가 인간의 생활을 일일히 살피다가 보름날 하늘로 올라가기에 보름동안 곳을 한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하여 영등포구 신길동 50번지 방아곶이 나루터부근에는 성황당이 있었고 이 곳에서 영등굿을 하였기 때문에 영등포구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는 說이 유력하다. 이런 이유로 영등포 이 세 음절에서 퍼뜩 떠오르는 이미지는 화려함보다는 어쩐지 촌티가 나고 세월의 흐름을 따르지 못하는 듯한 촌스러움을 생각하게 한다. 서울의 4대 집창촌으로 손꼽히던 영등포역 앞 사창가 골목은 개발이라는 이유로 그 화려한 불빛을 잃은 지 오래 됐다. 이 자리에 빨간 불빛대신 대형 백화점과 고층 빌딩들이 여기저기 들어섰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영등포의 촌스런 이미지를 가려주지는 않는다. 한 상권분석 자료에 의하면 영등포 인구가 9백만 명이고, 하루 유동인구만 해도 80만 명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서울의 강남을 제외하고는 명동, 신촌보다도 훨씬 큰 규모다. 하지만 대규모 유흥가라고 할지라도 영등포의 소비문화는 확실히 그 색깔이 다르다. 그 색깔은 ‘영등포스러운’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싸면서도 저급하지 않고, 화끈하면서도 너무 속 들여다보이지 않는 그런 아련한 향수가 남아 있다”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전한다. 그 대표적인 유흥 풍속도로 ‘기생주점’을 꼽는다. 단 10분 만에 손님이든 여성종업원이든 할 것 없이 ‘원초적’인 모습으로 곧바로 돌입하게 된다는 기생주점의 역사는 의외로 뿌리 깊다. 또 뿌리 깊은 만큼 그 ‘내공’과 ‘원칙’도 분명하다. 기생주점의 원조로 불리는 영등포의 골목골목을 샅샅이 취재했다. ◆영등포 유흥가 저렴, 질펀한 술판 유명 유흥문화의 중심이라 불리는 서울 강남이 럭셔리한 귀족주의를 표방한 일명 ‘레드벨벳’이라면, 명동, 북창동으로 대표되는 강북의 유흥중심가는 월급쟁이 중산층을 기반으로 한 ‘화이트칼라’다. 각 나름대로 문화의 색깔이 다르다. 이런 유흥가의 사이에 끼어 있는 영등포 역시 색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닳고 닳은 쇠 냄새와 땀내가 흥건하게 배인 땀 냄새 그리고 살 냄새가 코를 찌르는 ‘블루칼라’다. 영등포의 대표적인 유흥가는 경방필 백화점 앞길을 중심으로 형성된 삼각주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곽영일 어학원 옆 골목을 돌다보면 유흥가 들이 불야성인양 네온싸인을 비추고 있다. 영등포의 유흥가는 이미 1차는 끝내고 그냥 돌아가기가 아쉬운 사람들이 불빛으로 달려드는 나방들처럼 영등포로 몰린다. 그 수많은 간판들은 밥과 술과 여자를 팔기위해 입을 벌리고 있는 업소의 대리인들인 셈이다. 유흥전문 마케팅업체인 SB홀딩스의 김진영 대표는 영등포의 유흥삼각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서울 대부분이 개발바람으로 옛날 모습을 잃었다. 하지만 이 영등포 유흥가만큼은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30년 전 옛날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겉모습만 그런 게 아니라 아가씨를 끼고 술 마시는 문화 역시 그렇다” 김 대표는 “야사에 의하면 유흥가삼각지에 위치한 상당수 업소의 사장들은 과거 구두닦이 출신이란 말이 있다”면서 입지전적이고 거친 인물들이 영등포 유흥가를 지배하고 있다며 영등포 유흥문화에 대해 설명을 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영등포의 색깔은 고유의 빛을 잃지 않고 있다고 한다. 여의도의 한 증권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K씨는 자칭 열렬한 영등포 예찬론자다. 그는 10여 년이 넘는 직장생활 동안 마무리 술자리는 언제나 영등포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여의도나 강남룸살롱은 인간미가 없다. 하지만 영등포는 다르다. 솔직히 업소시설도 처지고 아가씨들 인물도 좀 떨어진다. 하지만 살을 맞대는 느낌 자체가 천지차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허리아래를 신(?)처럼 받들라”
이런 영등포의 유흥문화를 이끌고 있는 곳이 바로 다름 아닌 ‘기생주점’이다. 기생주점의 역사는 시기를 알 수 없던 오랜 과거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그런데 기생주점의 명성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데에는 ‘영등포 7공주’의 공이 컸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10대 불량소녀의 폭력조직을 얼핏 연상시키는 ‘영등포 7공주’는 사실 영등포 유흥가 일대에서 면면히 내려온 최고의 술집여성을 지칭한다. 영등포 유흥업소는 술값에 따라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거의 대부분 질펀하다는 점을 최대의 무기로 삼는다. 하지만 질펀함에도 급이 있는 법. 7공주란 술이면 술, 노래면 노래, 몸이면 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 7명에게만 붙여진 영광의 칭호다. 기생주점 K의 이 부장은 “20대 중후반의 고참 아가씨들이 포진돼 있다는 것이 기생주점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서 “남자 손님에 대한 지극정성은 기본이다. 특히 남성의 허리아래는 신처럼 모시는 마음가짐을 항상 갖게 한다”고 강조했다. K 부장은 자신의 업소가 원조 기생주점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유는 7공주 중 한명이 바로 자신의 업소에 근무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역에서는 은퇴해 현재는 후진양성(?) 업무를 주로 맡고 있다고 한다. 이 기생주점을 다녀 왔다는 K씨의 생생한 증언에 따르면 기생주점은 걸쭉하기로 소문난 북창동식 룸살롱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고 한다. 북창동식 룸살롱은 시간만 끄는 신고식과 술만 낭비하는 계곡주 코스를 의례적으로 거치게 된다. 때문에 막상 기대했던 ‘전투’라 불리는 성적 서비스 단계에 돌입하면 실제로 5분도 채 안 돼 허무하게 형식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생주점은 시작부터 끝까지 군더더기가 없다. 업소에 들어선 지 5분에서 10분만 지나면 남자손님과 여성 종업원이 만리장성을 쌓은 사이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맞붙는다는 것이다. 이 순간부터 남성은 결코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K씨는 충고를 한다. 왜냐하면 시도 때도 없이 파트너인 여성의 손길이 과감한 대시를 해오기 때문이란다. 광고회사에 다닌다는 Y씨는 ‘목욕탕문화’ ‘영등포 스타일’이란 말로 기생주점을 표현했다. 그는 정말 중요한 접대가 있거나 누군가와 흉금 없는 관계가 돼야 할 때 기생주점을 찾는다고 한다. 그때마다 실패한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유는 기생주점의 구조 때문이란다. Y씨는 “목욕탕도 아닌 곳에서 모두 홀딱 벗고 술을 마신다고 생각해 보라. 감추고 머리 쓸 일이 뭐가 더 있겠는가. 마이크를 돌려가며 노래를 부를 때마다 파트너들의 입과 손 엉덩이가 쉴 새 없이 남성을 자극한다. 주지육림의 세계가 따로 없는 것이다”며 기생주점에 대한 애찬론을 폈다. ◆명성 자자한 ‘영등포 7공주’ 어느 술집이든 지켜야 할 원칙과 철칙이 있다. 영등포의 대표적 ‘목욕탕 문화’인 이 곳 기생주점에도 나름대로의 철저한 원칙과 금기는 있다. 그것은 절대 ‘2차’는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소 안에서만 질펀하게 한바탕 놀고 그것으로 끝이다. “예나 지금이나 기생에게도 자존심이 있는 것이다. 술자리에서만큼은 기분전환을 위해 모든 것을 맞춰줄 수 있지만 정조만큼은 선택권이 있는 것이다. 같이 술 한잔 했다고 해서 모든 걸 끝내버리면 무슨 재미가 있나?” 기생주점에서 일하고 있다는 선영(가명)의 나름대로 원칙이 있는 답변이다. 올해 27세라는 그는 영등포를 찾는 취객들을 두 가지 종류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심리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주머니사정이 그리 두둑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문득 떠오르는 술자리의 향수를 찾기 위해 찾는 이들도 있는데 이들의 연령 대는 꽤 높은 편이라고 한다. 굳이 기생주점이 아니더라도 영등포의 유흥삼각지 내 거의 모든 업소는 ‘싼값에 화끈하게 놀 수 있다’는 전통적 진리와 홍보 원칙을 무던히도 지켜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영등포 상표를 단 기생주점은 점차 다른 지역으로 확대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타 지역 타 업소에서 영등포 스타일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최근 영등포의 유흥가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질펀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유흥가와는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열린우리당의 당사가 바로 양평동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유흥삼각지 역시 나름대로 혜택을 입었다는 일리있는 주장이다. ‘서민경제 살리기’가 구호인 여당이 여전히 변두리 이미지를 벗어내지 못하는 영등포 유흥가를 더 엄격하게 규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서울의 맨해튼으로 불리는 여의도가 뉴욕 부럽지 않게 개발되고 커질 것이란 기대감도 영등포 유흥가를 살짝 흥분시키고 있다. 물론 이는 영등포 유흥가가 앞으로도 특별한 외부영향 없이 여의도의 ‘욕망해방구’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영등포의 유흥삼각지는 지금도 싸고 질펀하고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서민들을 잘 아는 영등포에 매일 밤 남성들의 발길을 꼼짝 못하게 끌어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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