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거부권’ 전격 발동…野 “20대 국회서 재의할 것” 맞불

반면 여당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두둔하고 나서면서 야당과 충돌해 정국은 ‘협치’의 첫 발을 내딛기도 전부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가운데 이날 국회법 개정안이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힌 법제처의 발표를 두고도 발표 내용과 정반대의 의견을 낸 헌법학자도 절반에 달했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면서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은 한층 가열되고 있다.
◆ 朴 대통령, ‘국회법 개정안’ 전격 거부권 행사
27일 정부와 국회는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오전부터 연달아 맞대응을 벌이며 숨 가쁜 하루를 보냈다.
그 첫 포문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주재한 임시 국무회의에서 열렸는데, 황 총리는 이날 작심한 듯 20분간의 짧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10분간 ‘국회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하며 해당 법안에 대한 재의를 요구하는 정부의 입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거듭 설명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회법 개정안은 행정부에 대한 견제가 아니라 통제를 위한 것”이라며 “입법부엔 행정부를 감시·견제할 수 있도록 예산심의권, 국정감사권, 국정조사권 등 여러 권능이 있지만 이는 행정부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장치를 둔 것이지 행정부가 일하는 과정 전반을 하나하나 국회가 통제하도록 하자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국회법 개정안에서 청문회 개최 대상이 소관 현안 조사로 확대된 부분에 대해서도 “국정조사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재판 및 수사에의 관여, 개인의 사생활 침해 등이 결과적으로 초래될 수 있는 소지가 많고, 청문회 개최 여부도 상임위 또는 소위 의결만으로 가능해 헌법상 국정조사제도가 유명무실화될 우려마저 있다”며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황 총리는 상시 청문회 가능성을 열게 된다면 행정부 업무 부담이 늘 뿐 아니라 사업자 선정이나 국책사업 입지 결정 등 행정행위 중립성에도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며 하나의 사안에 대해 여러 상임위원회에서 청문회를 개최할 가능성도 있어 국정운영에 혼선을 초래할 소지가 높다고 지적했다.
황 총리가 이 같은 입장을 표하자마자 법제처 역시 곧바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행정부, 사법부, 헌법재판소 등에 의무를 부과하고 청문회 불출석 등에 국회증언감정법을 적용하는 것은 자율입법권의 대상이 아니다. 중요 안건 심사를 위한 청문회까지 운영 중인 상황에 ‘소관 현안 조사 청문회’까지 추가한다면 행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이중, 삼중의 통제”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다만 법제처는 이번 결정에 대해 “지난 26일 결론을 내렸다”면서도 “이 법률 개정안을 19대 국회에서 처리할지, 20대 국회에서 처리할지 문제는 국회가 판단할 사안”이라고 공을 넘겼다.
◆ 3野 격앙…“20대 국회서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 천명
이렇듯 국회법 개정안을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하는 수순으로 흘러가자 야권의 각 당의 이해를 막론하고 일치단결해 반발하고 나섰는데, 먼저 더불어민주당에선 우상호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운영에 관한 법률을 왜 대통령이 거부하는가. 의회민주주의 거부이며 삼권분립에 위배되는 중대한 권한침해”라고 입장을 내놨다.
특히 우 원내대표는 정부가 이날 갑자기 임시 국무회의까지 열어 재의를 요구한 것과 관련, “다음 주 화요일 정기 국무회의가 예정돼 있음에도 19대 국회 마지막 날인 오늘 국무회의를 소집해 거부권을 의결한 이유가 뭔가. 결국 19대 국회에서 마지막 본회의를 열 수 없도록 거부권 행사한 것”이라며 “국회법을 거부하겠다면 거부당사자인 대통령이 직접 왜 이 법안을 거부해야 하는지 국민에게 설명하는 게 도리인데 본인이 아프리카 순방을 떠나고 국무총리가 대리 사회를 보게 하는 모습을 국민이 과연 소통하는 대통령이라 하겠나”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거부권 때문에 협치에 있어 또 한 번의 금이 갔다”며 “더민주와 국민의당, 정의당은 이 문제에 강력 규탄하는 등 공동 대응키로 의견을 모아 20대 국회가 열리면 재의결하기로 합의했다”고 맞불을 놨다.
아울러 우 원내대표는 19대 국회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폐기된다고 해도 20대 국회에서 재의결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는데 “19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것의 귀책사유가 (박 대통령의 거부권 때문이지) 19대 국회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며 “법안의 연속성 측면에서 20대 국회에서 재의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당 역시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는) 총선 민의를 심각하게 왜곡 해석하는 것”이라고 반발한 데 이어 천정배 상임대표도 “대통령이 야당과 국민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라고 하는 등 격한 반응을 보였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의 경우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이날 20대 국회에서 재의결하겠다는 야권을 향해 “이 법안은 지난번 정의화 국회의장이 3당 수석과 안건 상정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음에도 전격 상정해 처리를 유도한 것”이라며 “정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기에 재의하라고 요구한 만큼 20대에서 다루기 어렵다. 거부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한 부분을 꼬집어 “거부권도 당연히 해야 된다고 말하는 건 자신들의 당내 문제가 친박·비박(문제)이기 때문에 ‘청와대에 잘 보이려 노력하는구나’라는 감을 받았다”고 일침을 가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어 ‘19대 국회에서 거부된 개정안이 재의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17대 국회에서 가결된 법안이 18대 국회에서 17건 공포됐고, 18대 국회애서 19대 국회(로 넘어가 공포된 법안)도 28개”라며 “자문을 받은 헌법학자나 법률가들의 해석에 의하면 (재의 절차는) 계속된다”고 반박했다.
◆ 與 “19대 의결 법안, 19대에 끝내야”
하지만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9대 의원이 의결한 법안에 대해 20대 의원이 재의결하는 건 국회법 등 법리에 맞지 않다”며 “19대 일은 19대에 끝내는 것이 순리”라고 법리 공방을 이어갔다.
또 정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직접적 책임을 피하고자 해외순방 기간에 맞춰 전자결재 시스템을 통해 우회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언제 어디서든 국정에 관한 결정을 할 수 있게 노무현 정부에서 전자결재 시스템을 만들어놨는데 꼼수라는 지적엔 동의할 수 없다”고도 적극 맞받아쳤다.
오히려 그는 이번에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를 통해 거부된 것에 대해 “20대 국회가 상시 청문회법을 놓고 처음부터 충돌하면서 시작하는 그런 부담을 어떤 측면에선 정부에서 덜어준 측면도 있다”고 두둔하며 재차 찬동의 뜻을 표했다.

한편 지난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전격 상정해 이날 정 원내대표로부터 이번 논란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로 지목된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회법 개정안 재의 의결 소식을 전해 듣고 “국회 운영에 관한 법률에 행정부가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붙여 재의를 요구했다”며 “국회의 효율성을 높이고 일 잘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법안이란 취지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정부를 질타했다.
정 의장은 이어 “재의 요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국회 운영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삼권분립의 기본 구조에 지대한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아주 비통하고 참담하다”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아프리카 3개국 및 프랑스 국빈 방문차 에티오피아를 방문 중인 박 대통령은 한국시간으로 오후1시10분경 전자결재를 통해 국회법 개정안 재의 요구안에 서명함으로써 이날 오전 황 총리가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국회법 개정안 재의 요구안을 재가했다.
이에 따라 이날 박 대통령이 재가한 국회법 개정안 재의 요구안은 국회사무처 의안과로 즉시 접수됐는데 사무처 역시 이번 사안의 민감성 때문인지 일부 언론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19대 국회에서 제의하지 않으면 개정안이 폐기된다는 게 국회사무처 입장’이라고 보도한 데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린 바 없다”며 확실히 거리를 뒀다.
이렇게 ‘뜨거운 감자’가 된 이번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문제에 대해 야권은 20대 국회에서의 재의결은 어떻게든 단행한다는 입장이면서도 원 구성과 민생 현안 등에는 결부시키지 않겠다는 기조는 유지해 새 국회가 출범하기 전부터 좌초될 우려는 일부 덜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권 간 협치는 이제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이라 할 수 있어 향후 각종 현안 처리에 있어서도 상당한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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