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9일 법정시한 앞두고 ‘세비반납’ 내세워도 협상 난항

여당은 19대 마지막 본회의에서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기습적으로 국회법 개정안을 상정했던 전례를 의식해 무소속을 복당시켜서라도 국회의장직을 야당에 빼앗기지 않아야 된다는 목소리가 당내에서 높아지면서 의장단 협상조차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내비쳤고, 야권은 원 구성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 원 구성 이후 다뤄질 각종 쟁점 현안에 대한 야당 간 공조부터 확인해 일의 순서가 뒤바뀐 모습을 보였다.
이렇듯 협상이 진척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당초 기한 내 원 구성을 하지 못하면 세비를 반납하겠다던 여야의 약속도 이제는 흐지부지되어가는 모양새라 원 구성 협상이 제대로 이뤄질 수나 있을지 우려의 시선이 20대 국회로 집중되고 있다.
◆ 국회의장·상임위원장직 놓고 여야 신경전 여전
지난 30일 여야 3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원 구성 협상을 위한 회동을 가졌지만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로 고성만 오간 끝에 18개 상임위원회 중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각자 8개씩, 국민의당은 2개의 위원장을 가져간다는 데 합의한 것 외엔 전혀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그나마 제1당인 더민주가 가져가는 것으로 중의가 모아지던 국회의장직 문제조차 30일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친박계 의원들이 야당에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내놓으면서 원점으로 회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19대 국회에서 부의장을 지낸 5선의 친박 중진 정갑윤 의원이 단상에 올라 “국회의장직을 가져와야 한다”고 적극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에 정진석 원내대표도 “국회의장직을 포기한 적은 없다”며 “책임 있는 집권여당으로서 우리는 의장직을 포기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선지 현재 1석 차이로 제1당을 123석의 더민주에 내줬던 새누리당은 내달 2일 전국위원회를 통해 새로이 출범하는 김희옥 혁신비대위의 심사를 통해 새누리당을 탈당했었던 무소속 의원들을 대부분 순차적으로 복당시킬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 원내대표가 원 구성 협상 전 복당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실제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인데, 현실적으로 더민주와 국민의당만으로 과반을 이루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국회의장직을 가져오기엔 무소속 복당만으론 어려울 것이란 평가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선 법사위원장 등 주요 상임위원장직을 확보하기 위한 협상력 제고 차원의 행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미 야권은 여소야대 정국임을 적극 내세워 운영위·법제사법위·예산결산특별위원장 등 3개 주요 상임위원장직 중 운영위원장이나 법사위원장을 야당이 가져가야 한다고 몰아붙이고 있어 새누리당은 국회의장에 이어 법사위원장까지 야권이 가질 경우 법안 처리의 주도권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는데 이 때문에 원 구성 협상이 늦어지더라도 국회의장직에 대한 입장조차 번복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 당내에선 여소야대 상황인 만큼 원내 균형을 이루고 박근혜 정부의 집권 후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의장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점 역시 이 같은 방침을 내놓게 된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반면 야당은 이미 언급했듯 지난 19대에서 야당 몫이었던 법사위 외에 새누리당 몫이었던 운영위에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운영위가 청와대 소관 상임위로 청와대를 견제할 수 있는 주요 상임위인데다 19대 국회에서 있었던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당시 운영위원장직을 새누리당이 가지고 있어 야당 운영위원들이 별 힘을 쓰지 못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더민주 일각에선 새누리당이 법사위·예결위·운영위를 모두 확보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데 반발해 국회의장직을 포기하더라도 핵심 상임위의 위원장직을 전부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 바 있을 만큼 일부 핵심 상임위를 놓고 여야 간 기 싸움이 여전히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당도 30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를 확보하겠다는 입장을 내놔 상임위 쟁탈전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은 이 자리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경제정당, 정책·민생정당으로 가려면 기재위를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밝혀 그동안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논의하던 기재위와 정무위 양분 안을 어그러뜨렸다.
이렇듯 상임위 배분을 놓고선 제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국회의장직 문제에 있어선 더민주와 국민의당 모두 한 목소리로 야권이 가져가야 한다고 공조할 뜻을 내비치며 새누리당의 ‘여당 국회의장론’을 차단하고 나섰는데, 내달 7일이 의장단 구성 법정 시한인 만큼 이날 본회의를 열어 의장선출을 자율투표에 맡기자고 제안했다.
박완주 더민주 원내수석부대표와 김관영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31일 오전 국회에서 가진 회동에서 이같이 의견을 모았는데, 박 원내수석은 회동 뒤 새누리당을 겨냥해 “원 구성 시한이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탈당한 의원들을 복당시켜 1당을 만들어 국회의장을 하겠다는 둥 자꾸 몽니를 부리고 있다”며 “그럴 것 같으면 본회의에서 (국회의장단 선출을) 자유투표로 해버리면 된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만일 자율투표에 붙일 경우 20대 국회는 여소야대이기에 어차피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무소속 복당까지 내걸었던 새누리당의 협상카드를 조기에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박 원내수석은 원 구성을 위한 법정시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단 점을 의식했는지 기자들을 향해 “야당 원내수석의 워딩(발언)이 좀 세졌다고 (보도)하라”며 “오늘부터 (원 구성 협상에 있어)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새누리당에) 협공할 것”이라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런 야권 공조 움직임을 보여주듯 두 야당은 이날 더민주의 원안대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교육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 분리하고 이를 여성가족위원회와 통합하는 데에 의견 일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 원 구성 지연 시 ‘세비 반납’ 약속 ‘흐지부지’?
이렇듯 여야가 협치는 차치하고 원 구성부터 첨예하게 대치하는 양상으로 흐르고 있는 가운데 원 구성 법정시한이 점차 다가오면서 앞서 정치권에서 공언했던 여러 세비 반납 약속도 이뤄질 것인지 주목받고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이 지난 3월 20대 총선 공식선거운동 직전 ‘5대 개혁 과제’를 20대 국회 1년간 이를 시행치 못하면 1년 치 세비를 모두 반납하자고 제안했었는데, 여기에 당시 당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 등을 포함해 30여명이 준수키로 서명해 이목을 끌었지만 총선 패배 뒤 지도부가 해체되고 제안자였던 조 본부장도 떠나면서 사실상 백지화된 모양새다.
한편 야권은 세비 반납과 관련해 박완주 더민주 원내수석부대표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 구성이 되지 않는다면 세비를 반납해야 한다는 여론에 동의한다”고 밝힌 적이 있고, 국민의당 역시 지난달 19일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20대 국회는 5월 30일까지 원 구성을 완료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원 구성이 될 때까지 세비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 직접 주장하고 나선 바 있다.
이에 따라 원 구성이 기한 내 이뤄질 수 있을지 불투명한 현 시점에 세비 반납 이행을 놓고도 야권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더민주의 경우 박 원내수석이 31일 원내대책회의 뒤 기자들의 질문에 “세비를 반납하는 사태를 연결고리로 협상하는 건 과한 것 같다”며 한 발 물러난 데 반해 국민의당은 김관영 원내수석이 같은 날 원내대책회의에서 “6월 7일까지 국회가 정상적으로 개원되지 않는다면 무노동 무임금까지 수용할 각오가 돼 있다”고 세비 반납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처럼 세비 반납 약속을 놓고도 이견 차가 나오는 상황에서 원 구성 역시 기한 내 구성보다는 지연까지도 염두에 두고 눈치싸움에 들어감에 따라 이런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데, 원내교섭단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제3자로서 현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는 정의당은 “매번 이런 식의 나눠먹기, 졸속 원 구성이 계속되서는 안 된다”며 “국회개혁특위를 구성해 원 구성 뿐 아니라 다양한 국회제도의 개혁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국회법 개정안 논란 속에서도 원 구성만은 기한 내 이뤄내겠다던 여야가 약속대로 내달 9일까지 접점을 찾고 협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많은 이들의 이목이 20대 국회를 향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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