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위-전준위, 최고위원제 부활 놓고 갈등 양상

이에 당 지도부에서도 일단 상황 악화를 막는 데에 방점을 두고 간담회 개최 등을 제시하는 등 완급 조절에 들어갔지만 머지않아 치러질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지도체제 개편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는 만큼 과거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혁신안을 마련했던 김상곤 혁신위원회 인사들과 현재 더민주의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 간 충돌은 시간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도마 오른 ‘최고위원제’, 계파 갈등 재점화 되나
더민주는 지난해 2·8전당대회 이후 김상곤 혁신위원장을 중심으로 구성한 당 혁신위원회를 통해 수도권 집중화와 지도부 갈등의 원인으로 꼽혔던 최고위원제와 권력이 과잉 집중된 사무총장직을 폐지하는 내용의 혁신안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문재인 대표는 당내 반발에 직면하자 자신의 대표직까지 거는 승부수를 던진 끝에 혁신안을 당헌에 반영했었는데, 이 때 수정된 당헌에 따르면 오는 8월 27일 개최될 20대 국회 첫 더민주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제는 폐지되고 대표위원제가 도입되게 된다.
대표위원제 하에선 권역별, 세대·계층별로 각 5명씩, 10명의 대표위원으로 지도부를 구성하게 하고 있으며 권역별 대표위원의 경우엔 전국을 5개 권역으로 구분해 시·도당위원장 중 호선으로 선출한다.
대표위원제는 계파가 아닌 ‘업무’를 중심으로 한 제도로, 굳이 비교하자면 지역 대표는 지역구 의원과 유사하고 각 분야 대표는 비례대표 의원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또 대표위원제에서의 대표위원 수가 최고위원제에서의 최고위원 수에 비해 2배 정도에 이르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많은 인사들이 당 지도부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구성원이나 의견의 다양성 면이나 전국정당으로서의 대표성 측면에 있어 최고위원제보다 낫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당내에선 전당대회 선거로 지도부를 구성하는 편이 더 명분이 서고 지도부의 결정에 당이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며 최고위원제 부활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혁신안을 마련했던 혁신위 출신 인사들까지 반대 성명을 내는 등 본격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점차 사태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원 구성 협상으로도 정신없는 와중에 당 지도체제 문제로 이 같은 국면에 처하자 지도부는 현 시점에서 분명하게 매듭지어 논란을 확산시키기보다 일단 뒤로 미뤄두면서 미봉책으로 당장의 갈등을 봉합해 놓으려는 분위기인데, 당초 지난달 30일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 전체 회의에서 의제로 다루려다가 “추후 회의에서 논의키로 했다”며 번복한 점이나 2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우상호 원내대표가 “이 문제가 당내 새로운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음 주 초에 의원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당 구성원은 개별적 의견 개진을 자제하고 간담회에서 토론해 달라”고 밝힌 데 비쳐 봐도 이런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내주 초로 예정된 간담회에서조차 또 다시 논의가 미뤄질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데, 우 원내대표가 이날 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또 다른 계파 갈등의 계기로 삼아선 안 된다”고 강조한 데 이어 당 정책조정회의에서도 거듭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헌당규 개정과 관련해 이러저러한 논란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며 “간담회에서 당헌당규 혁신안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천명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사안의 심각성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더민주 내 갈등 양상 고조…전준위, '혁신위'에 분통 터뜨려
실제로 이 문제가 주요사안으로 떠오르면서 일찌감치 개별적 목소리가 터져 나온 바 있는데, 지난 29일 우원식 더민주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말 혁신안을 폐기하려는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한 번 시행해보지도 않고 폐기를 운운하고 있는 건 정말 납득할 수 없다”며 “일부 사람들은 혁신위를 당시 대표의 권력유지용이었다고 하는데 이건 모든 혁신 노력에 대한 모욕”이라고 혁신위의 혁신안을 지지했었다.
우 의원은 이어 “혁신안의 골자는 퇴행적 계파의 근거가 되는 줄세우기를 막기 위해 최고위원의 선출방식을 바꾸려는 것”이라며 “다시 계파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것인가”라고 일침을 놨다.
그러면서 그는 혁신위의 지도체제 개편안에 대해 “민생대표위원, 민생본부장, 각급단위의 민생책임자를 두어 민생연석회의를 구성해 민생정당의 면모를 갖추는 것”이라며 “이런 노력의 결과를 없애려면 문제점만 지적해선 안 되고 당시 고민에 대한 다른 대안을 내놔야 한다. 비대위와 혁신위 간 진지한 토론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혁신위 역시 지난 1일 이런 주장과 한 목소리를 내며 “최근 일각에서 계파정치를 청산하고 민생복지정치로 매진하자는 혁신안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전당적 차원의 결의로 세운 당헌당규를 시행하지도 않고 폐기처분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혁신위는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입장을 내놨다.
이들은 최고위원제와 사무총장제 부활을 전준위가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친전을 보내 “계파정치구조를 해체하지 않고선 민생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 당원을 주인으로 세우는 정당정치를 할 수 없었기에 계파정치의 구조적 틀인 최고위원제를 대신해 대표위원제로 혁신안을 구성했다”며 “당 지도체제에 대한 혁신안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당의 오랜 병폐인 계파이기주의와 계파갈등이 당권과 지도체제를 둘러싸고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혁신안 유지 필요성을 역설했다.
아울러 혁신위는 혁신안을 폐기하려는 전준위를 겨냥해 “혁신을 향한 우리당의 노력은 20대 총선에서 전국적인 지지와 제1당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며 “작은 성공에 도취되어 계파이기주의와 계파갈등으로 만신창이가 됐던 어제를 망각한다면 민심은 돌아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혁신위의 이 같은 노골적 압박에 불쾌감을 느낀 전준위 측에서도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는데, 2일 이찬열 전준위 당헌당규분과위원장은 하루 전 단체로 성명을 냈던 혁신위를 겨냥해 “이게 혁신인가. 이렇게 해놓으면 분과위에선 일을 어떻게 하는가”라고 맞불을 놨다.
이 위원장은 이어 “마치 혁신안이 아니면 다 죽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그러면 혁신안은 제대로 돼 있나”라며 “완벽하게 해놨으면 말도 안 한다. 방망이를 ‘땅땅땅’ 칠 수 있도록 제대로 해놨어야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같은 이 위원장의 지적은 혁신위가 혁신안에 따라 대표위원제로 지도부를 꾸린다는 법조문은 만들었어도 구체적 시행령은 만들어놓지 않은 점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도 이 위원장 역시 혁신안의 전면 폐기 가능성에 대해선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밝혀 혁신위의 우려와 달리 혁신안을 폐기하기보다 기존 틀 안에서 일부 수정·보완해 나갈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최고위원제와 혁신위에서 수립한 혁신안의 문제점과 대안 등을 분과위 차원에서 (수정·보완하기 위해) 토론하고 있다”며 “선출 조건이 맞지 않는 부분도 많고, 선거인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거나 불확실하다거나 인원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위원장은 “아직 어떠한 결론을 내지 않았고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검토 중”이라며 “중요한 건 우리가 만드는 당헌당규만큼은 앞으로 누가 와서 일하더라도 내용상으로는 변경시킬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만들자는 데 의지를 모았다”고 강조했다.
당초 이날 회의에는 일부 혁신위원도 참석해 혁신안에 대해 설명하고 토론도 이뤄질 예정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김해영, 이철희 의원 등 전준위원들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오는 8일에 열릴 전체회의에선 혁신안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논의가 한층 구체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큰 문제는 여기서 나온 결과물에 대해 혁신위 측 인사를 비롯한 당내 일각에서 어느 정도까지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인데, 전준위 회의는 물론 의원 간담회도 함께 진행될 내주 초가 이 문제를 매듭지을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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