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은 더민주…與 ‘법사·운영·기재’ 등 핵심 상임위 확보

비록 의장단 구성 법정시한인 6일은 넘겼지만 상임위 구성 법정시한인 9일 이전에 여야가 합의를 이뤄내면서 지난 1994년 국회의장단 및 상임위원장단 선출 시한을 정한 이래 역대 최단기간 내 원 구성으로 어느 정도 체면치레는 했다고 할 수 있다.
당초 국회 임기 개시 이후 7일 이내에 선출돼야 하는 국회의장단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서로 의장직 확보에 매달리면서 ‘자유투표’까지 거론되는 등 험악한 상황이 연출돼 합의에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8일 새누리당에서 더민주에 전격 양보하기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협상 진전의 물꼬를 텄다.
이에 협상은 급물살을 타면서 20대 국회 임기 개시 열흘째인 오는 9일 오후 2시 본회의에서 의장단을 선출하기로 했고 개원식은 13일 오전 10시에 열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임기 개시 후 15일 만으로 11대 국회 이래 가장 개원이 빨랐던 지난 16대 국회보다도 이틀 앞선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법정시한을 조금 넘기면서도 예상보다 빠르게 합의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느 정당도 과반을 점할 수 없도록 3자 구도를 이루게 한 20대 총선 결과를 정치권이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데다 여야가 앞다퉈 수차례 약속했던 ‘법정시한 내 원 구성’조차 준수하지 못한 데 따른 민심의 질타와 압박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번 합의안을 도출하기까지 어느 정당의 역할이 더 컸는지에 대해선 각자 의견이 엇갈려 여전히 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는 점을 내비쳤다.
◆ ‘국회의장’ 쟁탈전, 與 ‘통 큰 양보’로 마침표
앞서 원 구성 협상 과정 중 막바지까지 가장 쟁점이 됐던 건 국회의장직을 어느 정당이 가져가느냐는 문제였다.
본래 20대 총선 직후 정국이 여소야대 국면으로 전환되고 제1당까지 더민주가 차지한데다 공천 과정에서의 불거진 계파 갈등이 총선 이후에도 계속된 새누리당이 자연스럽게 포기하는 분위기로 흘렀지만 정진석 원내대표 체제가 안정을 찾은 이후엔 연일 ‘의장직을 야권에 넘기기로 언급한 적이 없다’며 포기한 듯 싶었던 의장직을 거꾸로 원 구성 협상카드로 내밀었다.
이에 총선 결과를 명분삼아 의장직은 이미 확보한 것으로 여기고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이 차지했던 운영위·예결위 등 주요 상임위 공략에 박차를 가하려던 더민주는 새누리당이 내놓은 예상 밖의 전략에 말려들면서 의장직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에 뛰어들게 됐다.
더민주는 새누리당을 향해 19대에서 더민주 몫이었던 법사위를 양보하겠다는 식으로 여론전을 펼치며 의장직과 법사위원장직을 교환하는 형태로 여타 핵심 상임위 확보를 노렸지만 새누리당은 여야 간 물밑 협상과정까지 공개하며 이 같은 제안을 일축했다.
그러자 더민주는 원 구성 협상 진행과 관련해 청와대 배후설을 제기하며 새누리당을 압박한 데 이어 당내 김종인 대표의 반대 의사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에서 제안해온 국회의장직 ‘자유투표’ 제안까지 수용하며 실력행사에 들어갈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로 인해 원 구성 이후에도 여야가 극한 대치 상태로 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자유투표를 먼저 더민주에 제안한 것은 물론 “원 구성이 더 늦어지면 새누리당의 책임”이라며 새누리당에도 자유투표 수용을 촉구했던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정작 발언 당일에 “우리 38표도 (자유투표 시) 단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새누리당에도 힘을 실어주는 듯한 이중적 태도를 취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이는 원 구성 협상 과정에서 두 거대 정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캐스팅 보트 역할에 그치는 국민의당이 스스로 협상력을 제고하려는 차원에서 내놓은 발언으로 해석되지만 안 그대로 진척되지 않는 상황에 이런 저울질까지 겹쳐지면서 더욱 지지부진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법정시한 하루를 또 넘겨 이틀째로 접어든 8일에 이르러 새누리당이 의장직과 상임위원장직을 함께 놓고 논의해야 한다던 그간의 주장을 접고 돌연 의장직 포기를 선언하면서 크게 전환됐는데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 같은 결단을 내리게 된 데엔 서청원 의원의 공이 컸다고 강조했다.
현재 20대 국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유일한 8선 의원으로 원내 최다선인 서 의원은 본래 새누리당 내 가장 유력한 차기 국회의장 후보로 꼽혀왔으나 4·13총선에서 여당의 참패로 인해 의장직 도전을 공식화하지 않고 있었는데, 결국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가미래전략포럼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의장직에) 나는 출마한다는 얘기도 안 했다”며 “교착 상태에 빠진 원 구성을 빨리 하기 위해 야당이 의장을 하겠다면 의총을 통해 결의해 넘겨줘라”라고 자신의 뜻을 전했다.
당내 주류를 이룬 친박계의 좌장인 그의 발언에 새누리당은 의장직을 더민주에 넘기기로 입장이 정리되면서 협상은 급물살을 탈 수 있었는데, 더민주는 새누리당의 국회의장직 양보라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원칙의 승리고 민심 앞에 장사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준 결과”라며 총선 결과로 나타난 민심의 압박을 의식한 결정이었다는 평가를 내놓은 반면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같은 날 트위터를 통해 “(서 의원의) 통 큰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며 협상 전기를 마련하게 된 건 새누리당 덕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원 구성 협상 합의 발표 직후에도 기자들에게 거듭 “물꼬를 터준 것은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으로 진짜 친구로서 굉장히 높이 평가한다”고 역설했는데 4·13총선에서 제1당에 오른 데 이어 협상 타결의 공까지 더민주로 기울 경우 야권 내 경쟁자로서 더민주에 한층 힘이 쏠릴 것을 경계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 주요 핵심 상임위, 與 ‘선방’…野 ‘예결특위’ 확보에 그쳐
의장직만큼 치열하게 기 싸움이 전개된 18개 상임위원장직 배분에 대해서도 의장직 양보 이후 생각보다 빠르게 합의를 이뤘는데, 우선 새누리당은 국회 운영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정무위원회, 안전행정위원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정보위원회, 국방위원회를 맡기로 했다.
더민주의 경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윤리특별위원회를 맡았으며 국민의당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등 2개 상임위원장직을 확보했다.
협상 과정에서 여야 모두 사활을 걸었던 법사위, 운영위, 예결특위 등 3대 핵심 상임위는 이번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어느 정당 몫으로 돌아갈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가 됐었는데, 운영위는 청와대를 관할하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절대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법사위는 의장직이 더민주로 간 이상 새누리당이 가져가게 될 것으로 점쳐졌다.
다만 3개의 핵심 상임위 중 예결위까지 새누리당이 독식할 수는 없는 만큼 결국 더민주로 넘어갔는데, 예결위는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는 점에서 예산을 가지고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면서도 자당에 유리한 국책사업에 힘을 쓸 수도 있는 상임위여서 더민주는 이를 확보한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이와 관련,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합의 직후 가진 국회 기자회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예결위”라며 “19대 국회에선 예산을 정시에 처리해야 하는데 (시간에) 몰려서 예산심사를 심도있게 하지 못한 전례가 있어 이번엔 예결위를 확보해 심도 깊은 예산심사를 해야겠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우 원내대표는 3대 상임위 못지않게 주요 상임위로 꼽히는 기재위와 정무위는 확보하지 못하고 예결위만 얻은 것 아니냐는 지적엔 “예결위는 전 부처 전 장관이 나오기 때문에 기재·정무위 보다 예결위 확보에 중점을 뒀다”며 “(예결특위 확보는) 예산에 대한 우리 더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지만 이번 상임위 배분 결과를 엄밀히 놓고 봤을 때 새누리당은 국회의장을 내주는 대신 예결위를 제외한 핵심 상임위를 모두 확보한데다 기재위, 정무위는 물론 미방위 등 실속 있는 상임위들을 대부분 확보해 야권에 비해 실리를 챙겼다고 평가되고 있다.
◆ 원 구성 ‘합의 공헌도’엔 與野 ‘내 덕’ 자평

일단 각 당은 이번 결과에 공통적으로 어느 정도 만족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지만 이번 협상 과정에서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누가 더 공헌했는지를 놓고선 각자 다른 목소리를 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아침에 서청원 의원이 용단을 내려줘서 교착 상태에 빠졌던 원 구성 협상에 물꼬를 터주셨다”며 의장직 양보로 협상이 진척됐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새누리당의 공이 컸음을 강조했다.
반면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언뜻 보기에는 더민주가 국회의장을 가져와서 상임위원회 내용 중에서 우리당 의원들이 볼 때는 너무 많은 양보를 한 게 아니냐 서운해할 것 같다”며 “우리가 과감히 양보해서 원 구성을 한 데 의미부여를 하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고 밝혀 상임위 배분 과정에서 더민주가 양보했다는 부분에 방점을 뒀다.
국민의당의 경우 박지원 원내대표가 “정 원내대표가 예결위원회를 (더민주에) 양보하겠다고 한 데서 물꼬가 트인 것”이라며 새누리당에 힘을 실어주는 듯하면서도 “지난 5일 저와 만나서 얘기를 나눈 게 (물꼬가) 터졌다”고 말해 결국 자신의 공으로 돌렸다.
특히 박 원내대표는 이번 협상 과정을 두고 “우리 당의 자유투표 제안과 무노동 무임금 원칙, 특권 내려놓기로 국민 여론이 달라졌다”며 자신들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강조해 다른 당과 똑같이 자당의 치적으로 포장하기 바쁜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공헌도를 놓고는 여전히 각 당마다 이견을 보일 만큼 제각각이지만 그동안 원 구성만 가지고 한 달 가까이 끌어온 답답한 상황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에선 어떻게 보든 크게 평가할 만한데, 여야가 이번 합의를 계기로 20대 국회에서 계속 ‘협치’를 이어갈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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