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지난 7월5일부터 시작한 특별 단속을 통해 사행성 불법 PC방의 기세를 꺾었다고 보고 있다. 경찰청 생활질서과 손원진 경위는 “성인 PC방 이용객들이 줄고 수익 구조도 나빠졌다. 분위기는 잡았다”라고 현재 판세를 분석했다. 인터넷 PC문화협회 조광혁 사무국장도 “경찰이 강력하게 단속하면서 불법 PC방들이 다시 일반 PC방으로 돌아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많을 때는 전국에 7천여 개의 불법 PC방이 있었는데 지금은 4천개 정도라는 것이다. 사실 지난 한 달간 경찰은 성인 PC방과 ‘전쟁’을 벌였다. 대구지방경찰청이 70여 명의 형사들로 ‘허리케인 부대’를 발족한 것이 상징적이다. 일선 지구대 차원에서도 단속반을 둔 곳이 있을 정도다. 경찰들이 거리에 나가 홍보 전단지를 돌리는 가두 캠페인까지 벌이는 등 성인 PC방을 단속하기 위해 전력투구를 했다. 한 달간 3천8백62건을 단속해 1만7천70명을 형사 입건했고, 이 가운데 8백12명을 구속했다. 압수한 컴퓨터가 8만7천여 대에 달해 일선 경찰서에서 이것을 쌓아놓는 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다. 경찰이 이런 의지로 단속을 하고는 있지만 성인 PC방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음성적으로 번지고 있다. 경찰도 불법 PC방들이 음성화·조직화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경기도 분당경찰서 생활질서계 박민철 경장은 “단속 여파로 폐업하거나 업종을 전환한 곳이 많다. 하지만 문을 닫아놓고 고정 고객만 출입시키거나 카페 등으로 위장해서 영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경북 대구 수성경찰서 생활질서계 이은주 순경도 “불법 PC방들이 점점 음성화하고 있기 때문에 단속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라고 말했다.
◆위장한 성인 PC방
불법 성인 PC방은 형태도 가지가지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Y클리닉’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던 PC방을 적발됐다. 상가 건물 2층 창문에 짙은 선팅을 한 채 외부에 ‘외과·내과·소아과’라고 써 붙이고 영업하는 병원을 수상히 여긴 경찰의 확인 단속에 걸린 것이다. 이 업소는 낯선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해 출입문에 A4용지 크기의 ‘임대 문의’라는 쪽지를 붙여놓고 일명 ‘망지기’라고 불리는 무전기를 든 감시원이 항상 외부를 감시했다. 경찰 조사에서 업소 관계자는 병원이 나가면서 인테리어를 고치지 않은 상태에서 컴퓨터 30여 대를 들여놓고 영업을 시작했다고 진술했다. 수원 권선구에서는 정상적인 PC방을 운영하면서 지하에 불법 PC방을 따로 만들어 단골 손님들에게 도박을 하도록 한 업주가 적발되었다. 경찰이 압수한 장부에는 불법 PC방에서 하루 3백만원에서 6백만원까지 수입을 올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제주 에서는 ‘위장 폐업’까지 등장했다. 점포 셔터를 내린 뒤 ‘점포 임대’를 알리는 쪽지를 붙여놓고 실제로는 가정집 대문과 연결되는 후문을 통해 비밀 통로를 만들어 영업을 하다가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 적발되었다. 이 업소는 환전소를 없애고 손님이 환전을 요구할 경우 차량으로 이동하는 신종 수법인 ‘이동 환전상’도 운영했다. 경찰은 사행성 게임과 관련해 플래카드를 내거는 등 단속뿐 아니라 홍보에도 힘을 쏟았다 경기도 남양주에서는 건설회사 간판을 달고 영업하던 업소가 적발되었고, 대구에서는 ‘00가라데’ 간판을 내건 체육관 일부를 빌려 영업하던 불법 PC방이 경찰의 단속에 걸렸다. 막걸리집, 인테리어 회사, 카페, 중고차판매업소, 부동산업소 등 형태도 가지가지로 위장을 한 채 불법영업을 하고 있다.
◆새로운 개념으로 변모
형태만 바뀐 것이 아니다. 내용도 변했다. ‘4인 1방’ 영업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수십 대의 PC를 놓고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방에 네 명 정도 수용하는 소규모 PC방으로 바뀌고 있다. 경찰청 생활질서과 손원진 경위는 “불법 PC방들이 음성화하면서 5~10대 규모로 축소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규모가 작아지다 보니 주택가로 침투하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무점포 영업’도 등장했다. 고객이 통장에 돈을 넣으면 업주가 인터넷에 있는 아이템 거래소를 통해서 고유번호와 비밀번호를 전화로 불러준다. 그러면 고객이 도박 사이트에 접속해 이 번호들을 입력한 뒤 사이버머니를 받아 도박을 하는 형식이다. 굳이 PC방에 가지 않고서도 집에서 도박을 할 수 있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위장만 하는 것이 아니고 내용도 최첨단으로 바뀐 것이다. 한 불법 PC방 업주는 “단속이 강화되면서 무점포 영업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요즘에는 업주들이 인터넷 도박 카페 등에 홍보를 해 손님을 끌어들이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경찰이 단속에 애를 먹는 것은 당연하다. 눈으로 보기엔 불법 PC방인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구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간판도 없이 영업하는 경우도 많아 첩보를 입수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업주들은 왜 단속이 이처럼 세게 계속되는데도 위험을 감수하면서 영업을 계속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돈 때문이다. 운영하던 성인 오락실을 접고 최근 불법 PC방을 연 한 업주는 “성인 오락실을 하는 사람들이 PC방으로 이동하고 있다. 단속이 심해 위험부담이 있지만 적은 창업 비용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불법 PC방에 대한 단속은 지속적이면서도 치밀하게 계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경과 국세청 등 관련 기관의 노력에 더해 지방 자치 단체들도 나서고 이들이 사용하는 불법 소프트웨어를 찾아내 금전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기관들까지 동참해 단속해야 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강원랜드에서 운영하는 한국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 배봉구 센터장에 따르면 불법 PC방에서 이루어지는 도박과 관련한 상담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센터에서는 도박과 관련해 지난해 모두 2천1백건을 상담했는데 이 가운데 불법 PC방과 관련한 상담은 7%였다. 하지만 올해에는 상반기에만 13.5%를 기록했다. 배센터장은 “불법 PC방이 더 창궐할지 여부는 정부의 의지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