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열린우리당 지도부로부터 시작된 정치권의 ‘오픈 프라이머리’ 바람이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한나라당의 당심까지 흔들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대권 빅3로 읽혀지는 유력한 잠룡들이 포진하고 있기에 지금까지는 아쉬울 것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 폐쇄성으로 인해 “경선 방식을 개방하지 않는다면 대선에서 어려울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현재 ‘오픈 프라이머리’를 놓고 각 계파별 논쟁이 분분하게 일어나고 있다. 국민들에게 수구와 보수, 그리고 폐쇄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한나라당이 이번 기회에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오픈 프라이머리’ 수용론과 유력한 대권 주자가 없는 열린우리당에서 만들어낸 방식에 따라서는 안 된다는 불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대권 주자 경선 방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설전, 그 허와 실을 살펴보았다.
◆ 오픈 프라이머리로 재창출
‘오픈 프라이머리’란 정치권에서 완전 국민 경선제를 의미하는 시사적 용어로 열린우리당의 대선후보 선출 방식에 따라 처음 정치권에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2007년 대선 후보 선출 때, 기존의 국민참여경선보다 일반 국민의 참여 폭을 대폭 확대하기 위해 이러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오픈 프라이머리’의 발단이다.
열린우리당은 대선후보를 포함해 공직후보를 선출할 때, 기간당원이 30% 이상 참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행 규정 역시 당원경선제가 아닌 국민경선제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완전 국민경선제로 국민 참여 비율을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열린우리당의 이 같은 제도 변화에 대해 일각에서는 “당내 유력 대선 후보가 없는 탓에 외부 인사 영입을 넓히고자 하는 꼼수”라는 지적도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로 고건 전 총리를 경선에 참여시키기 위한 임시방편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속내가 있든, 없든 중요한 것은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당내 유력 대선 주자가 없는 상황이기에 ‘오픈 프라이머리’는 이반된 민심을 다시 끌어 모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적은 지지율도 경선을 통해 하나로 모아지면 상당한 위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써는 정동영 전 의장, 김근태 의장, 천정배 의원, 유시민 장관, 고건 전 총리, 정운찬 서울대 총장, 박원순 변호사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이 국민경선제를 통해 여당의 대권 경선에 참여하게 될 경우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는 한나라당 또한 쉽지 않은 적을 상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열린우리당에서 완전 국민참여경선제를 실시할 경우 지난 2002년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통해 확인된 바 있었던 대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으로도 예상된다. 당시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가장 재미를 본 사람은 역시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완전 국민참여경선제가 ‘제2의 민주당 경선’ 바람을 몰고 올 수도 있는 1석2조의 방침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한나라당에서도 진지하게
상황이 이렇다보니 굳게 닫혀 있던 한나라당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또한 지난 2002년의 악몽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당내 전반적인 분위기로 완전 국민참여경선제에 대해 호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각 계파별 주장이 어긋나며 완전 국민참여경선제에 대해 이제 조금씩 논의가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사실, 한나라당으로서는 굳이 완전 국민참여경선제를 실시할 이유가 없다.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유력 대권 후보들이 당내 포진해 있을 뿐 아니라, 당 지지율 또한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계파와 신보수 단체로부터 한나라당도 완전 국민참여경선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오만해졌다”, “폐쇄적 집단이다” 등의 이미지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차기 대권에서도 어렵다는 근거에서 비롯된다.
이 같은 주장은 親이명박계와 親손학규계 진영을 바탕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7.11 전당대회 결과 현행 경선 방식대로라면 경선 승리자는 박 전 대표가 될 것이라는 계산이 확실시됨에 따른 것이다. 완전 국민참여경선제를 실시함으로써 두 사람에게 손해가 될 것은 없다는 점에도 시선이 모아진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은 “대선후보 경선방식은 바꿀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재 대선후보 선출 방식도 당원과 일반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인데, 특정 후보의 유불리 때문에 ‘게임의 룰’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논리에서 비롯된다.
◆ 한나라당은 의견 불일치
한나라당 대권 빅3들은 일단 이 점에 대해 조심스러워 보인다. 때문에 측근들의 움직임과는 달리, 정작 본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측근들의 움직임에 빅3들의 의중이 전혀 개입된 바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 이러한 이유로 한나라당은 완전 국민참여경선제를 두고 이명박계와 박근혜계로 다시 한 번 나뉘어 갈등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관측된다.
당내 일부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는 역시 경선의 흥행을 높이기 위해 완전 국민참여경선제로의 전환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시작된 이 같은 제도가 일종의 ‘고육지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난 2002년의 악몽을 잊지 못해 한나라당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소장파 의원들 중 일부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있지만, 빅3를 제외한 외부인사가 참여할 수 있는 경선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동감한다”며 “지난 전대를 통해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지적된 바 있고, 민심을 거스르면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완전 국민참여경선제도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은들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지난 2002년에도 경험했지만, 한나라당 방식대로 흥행을 해야지 여당 방식에 끌려 다녀 이득 볼 것이 없다. 기존 주자들 간 싸움이 치열하면 얼마든지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 뉴라이트도 오픈 프라이머리 찬성
한편, 한나라당 외부의 뉴라이트 계열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는 완전 국민참여경선제도에 대해 적극 찬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7일 뉴라이트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가 주최한 ‘제1야당 한나라당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는 한나라당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애정의 채찍질이 가해졌다.
특히 이 자리에서 서경석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의 경우 “지금 나라를 걱정하며 열심히 뛰는 것은 국민이지,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이 아니다”라며 “대선주자들은 이미지를 어떻게 잘 보일까 하는 거나 고민하고 있다”고 쓴 소리를 가했다. 또, 서 대표는 “담대하게 국민 앞에 나서서 투쟁하는 투사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완전 국민경선제의 결단을 내리고 고건 전 총리까지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성린 안민정책포럼 회장은 “현 집권당이나 좌파 연합은 어떻게든 판을 흔들고,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50% 이상의 지지율을 얻으려 할 것”이라며 “6개월 전에 대선후보를 확정하는 한나라당 경선 방식은 너무 구태의연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처럼 한나라당 또한 당 내부적으로 또, 외부적으로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경선 방식의 변화가 불가피한 사안으로 당의 최대 과제로 남겨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픈 프라이머리를 두고 둘러싼 한나라당의 대권 갈등, 이제 곧 당내 갈등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