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TK’ 첨예한 갈등 속 기존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정

이날 오후 ADPi(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이 정부세종청사에서 발표한 영남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 결과 김해공항 확장이 신공항 후보지였던 밀양·가덕도보다 접근성과 소음, 환경, 비용, 리스크 등 모든 면에서 앞선 818점을 기록(1000점 만점)하면서 2위로 나온 밀양과 3위인 가덕도 계획안은 자연스럽게 폐기됐다.
특히 비용 면에서도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이 밀양에 활주로 1개인 공항을 만들거나 매립 과정이 필요한 가덕도보다 훨씬 적게 든다는 점도 이번 결정에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김해공항은 소음 문제로 24시간 활용하기 어려운데다 지난 2002년 중국 민항기가 공항 북측의 돗대산에 추락하는 대참사가 일어났을 만큼 주위의 산지가 이착륙에 위험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확장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관건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일단 ‘김해공항 확장’이란 이번 결정 자체는 큰 틀에서 수용하는 분위기지만 후보지역 국회의원들과 지자체장들은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고 일부 야권은 지역갈등을 일으켰다는 점을 꼬집어 정부 비판에 몰두하고 있어 이번 결과로 인한 여진이 얼마나 오래 갈 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논란의 ‘영남 신공항’ 문제, 26년 만에 매듭
영남 신공항은 지난 1990년 인천국제공항 타당성 조사와 함께 부산권 신공항 건설 타당성 조사를 시행했던 것을 시발로 1999년에는 김해국제공항 노후화와 미래 항공수요에 대비해 부산시에서 적극 나섰으나 이때까지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금 같은 지역 간 유치 경쟁 양상을 띠게 된 건 지난 2004년 부산시가 가덕도에 영남권 허브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며 시작됐는데 당시 대구·경북 지역에선 이에 반발해 영남권 전체는 물론 호남과 충청 일부지역까지 권역에 둘 수 있는 동남권 신공항의 최적지는 밀양이라며 대립각을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2006년 12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타당성 검사를 지시한 데 이어 2007년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대선공약으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내걸어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 간 유치 경쟁은 본격화됐다.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 당선 뒤 약속대로 2008년 9월 동남권 신공항을 ‘30대 광역 선도 프로젝트’로 선정하고 다음 해 4월 후보지로 가덕도와 밀양을 꼽아 2파전으로 흘렀는데, 2010년 7월 입지평가위원회가 구성된 뒤 두 후보지에 대한 현지 실사와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으나 밀양을 주장하는 TK와 가덕도에 유치하자는 PK 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지역 갈등 수준으로까지 확대됐다.
이에 난감해진 정부는 결국 2011년 3월 30일 두 지역 모두에 ‘경제성 미흡’을 이유로 들어 백지화하겠다고 전하면서 신공항 건설 논란은 잠시 사그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모두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다시 표면화됐는데, 2014년 8월 25일 공항 수요가 충분하다는 정부의 수요예측에 따라 밀양과 가덕도를 놓고 TK와 PK의 유치 경쟁이 재개됐다.
그러면서도 지난 2015년 1월 19일 부산·대구·울산시장과 경남·북 지사 등 영남 신공항 관련 5개 지자체장은 지나친 과열 경쟁을 지양하기 위해 신공항 사전 타당성 검토 용역을 정부가 외국 전문기관에 맡기는 것으로 뜻을 모았는데, 이에 따라 그해 6월 26일 정부가 한국교통연구원과 프랑스 ADPi 컨소시엄을 용역수행기관으로 선정했다.
이 기관은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고 평가항목과 항목별 가중치, 배점 기준 등을 정했는데 객관성과 공정성을 내세워 당시 내용을 비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밀양에 불리한 고정 장애물이 평가지표에서 누락된 것으로 알려져 PK지역에서 크게 반발하는 등 결과 발표 시점이 가까워올수록 논란이 격화됐다.
결국 최종 결과 발표일인 21일 예상을 깨고 두 후보지 모두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보다 모든 측면에서 부적합한 것으로 결론나면서 지난하게 끌어온 영남 신공항 문제에 종지부를 찍었다.
◆ 與 “대승적 수용”…PK “아쉬워”·TK “실망”
신공항 입지 발표로 그동안 텃밭인 영남권의 분열을 우려해 왔던 새누리당은 김해공항 확장으로 최종 결론 난 데 대해 우선 안도하는 분위기다.
발표 직전까지만 해도 당내 부산 출신 일부 의원들은 신공항이 밀양으로 결정될 경우 탈당을 비롯한 정계개편 가능성까지 내비치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였기에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으로 결정 난 편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이를 보여주듯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가진 신공항 관련 대책회의 직후 브리핑을 열고 “정부는 객관성,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프랑스 업체에 용역을 맡겼다”며 “어려운 결정을 대승적으로 수용하고 이로 인한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수용 의사를 밝혔다.
새누리당 부산시당 위원장으로 가덕도 선정에 힘을 쏟았던 김세연 의원 역시 “최선의 선택인 가덕 신공항이 아니라 김해공항 확장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면서도 “정부가 지역간 갈등을 최소화하고 어려운 경제사정을 감안해 비용절감에 많이 고심한 부분이란 점에 대해선 평가할 만 하다”고 입장을 내놨다.
다만 일부 의원들은 불만을 표하기도 했는데 부산이 지역구인 이진복 의원은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결론”이라고 비꼬았고 대구가 지역구인 윤재옥 의원은 “지금 대구, 경북 시도민, 영남권 시도민들이 이번 결과에 실망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마찬가지로 대구 출신인 유승민 의원은 자신의 복당을 둘러싼 최근 당 내홍 때문인지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김해공항 확장이 절대 이렇게 수용할 수 없는 안이라고 계속 주장해오던 분들이 있기 때문에, 김해공항 확장 결론에 대한 적절성에 대해 조금 더 검토해봐야겠다”고 말했다.
◆ 더민주 “지역갈등, 정부 책임”…국민의당 “정부여당·더민주 모두 책임”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대표가 “비교적 중립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며 “모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에서 결정하지 않았겠냐”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박광온 더민주 수석 대변인을 통한 서면 브리핑에선 “오늘 발표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실현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한 공약을 한 셈”이라며 “정부가 눈치보기 식 태도로 3~4년의 시간을 끌며 지역 갈등을 키운 꼴이란 점에서 매우 유감”이라고 정부 비판적 반응을 내놨다.
한 발 더 나아가 부산지역 더민주 의원들의 경우 한층 강하게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는데, 김영춘, 박재호, 최인호, 전재수, 김해영 등 5명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규모 국책사업이 심각하게 농단된 결과에 대해 우리는 수용할 수 없다. 부산시민들의 노력이 물거품 된 이번 발표는 유감스럽고 실망스런 결과”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야당 의원이기에 정부 비판에 부담이 없는데다 영남이 대체로 여당의 텃밭이란 점과 달리 어떻게든 이 지역 민심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들여야 하는 더민주 입장에선 여당 내 부산 의원들보다 강한 목소리를 내는 편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현재도 포화상태인 김해공항의 활주로 추가 건설은 신공항 건설 때까지의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불공정 용역에 대한 당내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그 진상을 명명백백히 가려낼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런 와중에 그간 김수민 의원의 리베이트 수수 의혹에 휩싸여 신공항 이슈에선 한 발 물러나 있던 국민의당은 현안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인지 정부는 물론 새누리당과 더민주 모두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박지원 원내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해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 무능한 정부”라며 정부를 비판한 뒤 “신공항 용역 과정 및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문제점은 추후 국회 차원에서 되짚어 볼 것”이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당은 김경록 대변인을 통해 “정치적 선동으로 심각한 사회분열을 초래한 정부여당과 더민주는 모두 정치적 책임을 지고 국민 앞에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가운데 이번 정부 결정에 가장 환영한다는 뜻을 내놓은 정의당은 한창민 대변인을 통해 “우리당은 환경과 비용 수요예측 등 다양한 측면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신공항 문제의 해답은 김해공항 확장이라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며 “정부가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이와 같이 결론 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지만 참으로 다행”이라고 전했다.
이번 결정은 영남권 분열이란 최악의 상황까지 가진 않았다는 데에서 고심 끝에 나온 결론이라 볼 수 있겠지만 해당 지역의 일부 지자체장이 여전히 독자적으로 신공항 추진 의지를 다지고 있는데다 야권에서 여권의 텃밭인 영남을 뒤흔들기 위해 이번 용역 결과에 대한 국회 차원의 검토를 추후 요구할 여지도 있어 후폭풍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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