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매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이에 비례해 소비자의 불만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제품 하자를 둘러싼 소비자와 업체간 신경전이 이어지고 계약 조건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러나 수입차 관련 제조물책임(PL)센터의 설립이 늦어지고 있고, 많은 수입차들이 소유주가 ‘법인’ 으로 등록되는 리스를 통해 판매되고 있어 개인 소유만을 다루는 한국소비자보호원에서도 피해 구제 방법이 없다. 또한 값비싼 수비비도 소비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오죽하면 수입차를 모는 운전자들은 ‘다른 차들이 알아서 피한다’고도 말하고 있다.
◆외제차 고치려면 서울로
지난 4월 BMW 승용차를 구입한 이모(54)씨는 산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부터 주행 중 시동이 꺼져 버려 골치를 앓고 있다. AS센터에 맡겨봐도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만 되풀이해서 듣고 있다. 이씨의 교환 요구에 판매사측은 문제점을 파악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제조사의 심의가 확정되어야 가능하다며 차일피일 교환을 미루고 있다. 이씨는 “지금까지 큰 사고는 없었지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 아니냐”며 “차의 결함이 분명한데도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판매사를 비난했다. 벤츠 500을 지난해 1월 리스를 통해 구매한 임모(50)씨는 고속으로 차를 몰거나 장시간 운행을 하면 엔진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와 지금까지 열 번 정도 정비공장에서 수리를 받아야만 했다.
임씨측은 “대구에서 수리가 안 돼 서울로 와 한 달째 맡겼지만 제대로 원인파악을 못 하고 있다”며 “계약서에는 기계결함의 경우 차량교환 등 조치를 취하도록 돼있지만 판매사는 차량이 문제 없으니 그냥 타라고 해 울화통이 터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판매사는“차량에서 아무런 문제점을 확인할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판매 이후 발생하는 품질상의 결함뿐 아니라 계약 단계에서의 불만도 속출하고 있다. 송모(48·여)씨는 지난 해 3월 수입차 구매 계약을 맺고 선금 3000만원을 지불했다. 15일 안에 인도받기로 하는 조건이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송씨는 차를 받을 수 없었다. 급기야 송씨는 환불을 요구, 승낙을 받아냈지만 환불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일시불이 아닌 매달 조금씩 돌려받은 것이다. 결국 계약을 맺은 지 1년이 넘은 올해 5월에서야 송씨는 3000만원을 전부 돌려받을 수 있었다. 송씨는 “속이 터질 것 같아 여러 차례 연락을 하고 불만을 제기했지만 전화 통화조차 피한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수입차의 불만 사항을 접수 중인 자동차10년타기시민운동연합 강동윤 실장은 “불만을 해소할 만한 제도적인 통로가 없다 보니 문제 해결은 소비자 개인에게 전가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지금으로서는 여러 가지 불만을 모아 수입차 업계를 압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수리비 거품은 없나
경기도에서 수입차 전문 수리를 하는 M사 S상무는 "수입차 AS센터에 들렀다가 견적이 너무 높게 나와서 우리 업소에 오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M사는 수입차 부품을 직접 수입해 교체하거나 부품을 고쳐서 다시 쓰는 방법으로 보다 저렴하게 수입차를 수리하는 업체다. 공식 AS센터가 아닌 한국의 동네 정비업소와 비슷한 시스템인 셈. S상무는 "수입차의 공식 AS센터는 부품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수리를 하지만 우리 같은 정비업소는 수리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사용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평균 30~50% 저렴한 가격에 수입차 정비를 할 수 있다"고도 했다. M사처럼 수입차를 전문적으로 정비하는 업소는 수도권에 20여 개가 있다. 5000만~1억원대 수입차의 앞문이 찌그러졌을 때 이를 교체하면 150만~200만원이 들지만 판금기술로 펼 경우 70만~80만원에 수리할 수 있다는 것. 보험회사에서 책정하는 시간당 공임도 이들 정비업소의 경우 1만8000~1만9000원인 데 반해 수입차 AS센터의 공임은 3만원이 넘는다.
◆국산차 부품값의 네 배 넘어
보험개발원은 지난해 말 자동차보험으로 처리되는 수입차의 부품값과 수리 비용을 국산차와 비교했다. 국산차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지급되는 보험금 때문이었다. 보험개발원은 수입차 수리비로 보험료가 많이 지급되는 만큼 국산차 소유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고 지적한다. 보험개발원 산하 자동차기술연구소의 조사 결과 지난해 손해보험사가 수입차에 지급한 건당 수리비 평균은 208만원으로 국산차의 2.7배 수준이었다. BMW.벤츠.렉서스.볼보.아우디의 수리비로 청구된 부품가격.공임.도장비를 에쿠스VS450과 비교 분석한 결과 부품은 평균 네 배, 공임은 1.6배, 도장비 1.8배였다. 신차 가격이 약 7310만원인 에쿠스VS450의 앞범퍼 커버 가격은 9만9000원이었지만 볼보S80 2.9(차량 가격 7042만원)는 87만4600원으로 8.8배에 이른다.
◆비싼 수리비 어쩔 수 없나
수입차 업계 C씨는 "수입차 부품 가격과 수리비가 국산차에 비해 비싸긴 하지만 소비자가 고품질의 완벽한 서비스를 원한다면 공식 AS센터를 이용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엔진이나 조향.제동 장치 등 중요 부품의 경우 차를 제대로 아는 전문가들이 고쳐야 소비자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수입차 시장이 아직도 크지 않기 때문에 부품 공급 등 수리 시스템은 여전히 투자 단계"라며 "수리비가 비싸다고 폭리를 취하는 상황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시장 규모가 국산차만큼 커지지 않으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자동차10년타기 임기상 대표는 "국산차의 순정 부품을 역조립할 경우 차값의 두 배가 나오는 반면 수입차를 순정 부품으로 역조립하면 네 배가 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며 "수입차 업계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