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간의 군생활 마침표를 찍게 되다

전인범 중장은 한의사 아버지와 외교관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7살이 되던 해, 외교관인 어머니를 따라 한국을 떠나 뉴욕 맨해튼에서 5년 간 생활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생활을 하다 육군 사관학교 37기로 입교 해, 1981년 4월 3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지난 1981년 30사단 소대장이었던 전인범 중위(당시)는 1군단장 이기백 중장의 신임을 얻었고 전속 부관으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1983년 10월 아웅 산 묘역으로 향하는 대통령 옆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이기백 중장을 따라 함께 아웅 산 묘역으로 동행 하던 중 테러가 일어났다.
2013년 10월 9일 연합뉴스 TV 인터뷰에 따르면 전인범 중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화약냄새와 피범벅이 된 중상자들을 보니 창피하지만 주체 할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러나 죽더라도 모시던 분하고 같이 죽자 라는 각오와 어머니를 생각하며 뛰어 들어갔다.”고 인터뷰를 했었다.
그리고 그는 여러 보직들을 거치며 군 생활을 이어나가던 중 지난 2013년 10월 특수전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취임 했다. 그리고 그는 특전사의 실질적인 발전을 이뤄낸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헬기 사격과 천리행군 등을 도입해 보여주기 훈련이 아닌 실제 전투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훈련들을 만들어 전투력 향상에 큰 기여를 했다. 또한 그는 과감하게 광학장비 같은 사제 장비의 사용 금지를 폐지시키고 전에 있던 과도한 제제 규정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군복제 규정보다도 임무와 전술향상을 중요시 여기는 진보적이며 유연한 사고를 가진 지휘관이었던 것이다.
실제로도 많은 예비역 간부들이 이를 뒷받침 하듯이 얘기한다. ‘그가 사령관으로 있을 때, 부대는 물론이고 나도 군인으로서 많은 성장을 했다.’ ‘전인범 중장님은 우리에게 임무에 도움이 된다면 전술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사제 장비라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말을 했다.’고 말하는 등 그의 유연한 사고가 군인들의 사기진작과 전투력 향상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됐는지 알 수 있다.
또 특수전사령부와 1군단 사령부에서 전인범 중장의 운전병으로 지냈던 김판수(26) 예비역 병장은 전인범 중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참군인인 전인범 사령관님은 계급이 낮으면 낮을수록 더 힘들고 고된 점을 항상 인지하고 더 잘해주셨으며 잘못된 것은 강하게 지적하시고 잘한 것은 아낌없는 칭찬으로 올바른 군생활을 하게 만들어주신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다."라고 밝혔다.
한편 오는 28일 오후 2시 전인범 중장은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특전사 연병장에서 전역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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