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들만의 사전' 이 따로
십장생하면 거북이, 사슴, 학 등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수(長壽)의 상징이 되었던 동물들을 떠 올릴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십장생은 복(福)을 표현하는 단어가 아니라 각박해지기만 하는 세태를 풍자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IMF이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놈 소리를 듣는다는 뜻. 경쟁이 치열해지고 정년도 갈수록 짧아지면서 나온 시대상에 대한 자조적인 표현)란 말이 회자되면서 암울한 시대상이 반영되었다.
이후 오륙도는 진화를 거듭해 삼팔선(38세가 되면 회사에서 퇴출당한다는 뜻)과 이태백(20대의 태반이 백수라는 뜻)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그러더니 급기야 십장생이란 신조어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10대들만의 사전’에 적혀있는 십장생이란 의미는 십대부터 장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라 한다.
네티즌들은 ‘십장생’이란 신조어가 만들어 진 것에 대해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10대들의 사고에 투영된 것 같아 씁쓸하다는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착한가격(서민적이고 저렴한 가격, 또는 적당히 싼 가격)이나 안쓰(안구에 쓰나미가 밀려오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슬프다는 뜻)등이 단적인 예라고. ‘안쓰’는 ‘안습’(안구에 습기찬다는 뜻으로 안타까울 때나 유감일 때 쓰는말 ) 의 업그레이드 된 단어이다.
쓰나미의 위력을 실감한 10대들이 ‘물’보다는 ‘해일’을 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받는 충격을 표하기 위해선 눈물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심리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10대들의 은어가 슬프거나 쓰디쓴 미소를 짓게 하는 단어만 있는 건 아니다.
안구웰빙(잘생긴 사람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는 뜻)이나 닭질(흔히 멍청한 사람을 닭머리에서 비유하는 것에서 유래. 아둔한 행동을 할 때 일컫는 말), 팩이(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박찬호 선수의 애칭. 박씨의 영문 표기를 ‘Pak 혹은 Park’이라고 하는 것에서 유래) 등은 10대만의 톡톡 튀는 센스를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한바탕 유쾌한 웃음을 짓게 한다.
10대의 기발한 상상력이 바탕이 된 신조어들은 패러디와 줄임말로 이뤄지기 때문에, 종종 코미디의 주요 소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SBS 웃찾사 인기 코너인 ‘나몰라 패밀리’와 KBS 상상플러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박지성을 훈남(못생겼지만 정이가는 남자)이라 일컬으며 그만의 매력을 찾는 것 또한 10대의 긍정적인 사고가 투영된 것.
아이는 어른들의 거울이란 말이 있듯. 10대들이 만들어낸 신조어 속에는 우리사회의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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