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길이 ‘수단’이라면 드라이브 여행에서는 ‘길’이 곧 목적지가 된다. 목적지가 길이므로, 따로 가닿아야 할 곳이나 여행의 내용 따위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드라이브여행은 곧 ‘자유’다. 어느 곳이건 마음에 들면 차를 멈추고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쉬는 여유. 가을의 초입에 서있는 지금!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무작정 지도하나 들고 떠나보는 건 어떨까.
지금도 좋고, 가을이 더 무르익을 때도 좋다. 이 길도 좋고, 꼭 이 길이 아니어도 좋다. 다가오는 가을에 길이 목적인 여행에서 곧 ‘자유’를 만끽한다면 그뿐이다.
◆ 75번국도, 강원 화천군 사창리까지
아름다운 폭포를 감춰놓고 단풍의 축제를 준비하는 길, 이 길은 단풍이 물드는 가을에 가장 아름답다. 경기 가평군 목동에서 해발 1500m를 넘나드는 명지산을 왼쪽에, 화악산을 오른쪽에 끼고 달리는 길. 명지산 단풍의 명성이야 말할 것도 없고, 화악산의 붉게 물든 단풍도 이에 빠지지 않는다. 해발 1000m를 봉우리들 사이로 돌아설 때마다 육중한 산이 압도하며 도무지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으면서도, 산과 산 사이의 계곡을 타고 넘으며 절묘하게 길은 이어진다.
도로변 아무 곳이나 차를 세워놓고 물가로 내려가면 자연이 그려놓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난다. 이 길이 숨겨놓은 가장 손꼽히는 절경이 바로 ‘용소폭포’인데 조무락골을 지나 도마치고개에 이르기 전 왼쪽 계단 길로 내려가면 용소폭포를 만난다. 그러나 폭포보다는, 하늘이 안보일 정도로 울창한 원시림이 훨씬 더 감동적이다.
◆ 5번국도, 평화의 댐까지
카페리호에 차를 싣고 파로호의 물길을 따라가는 길, 곡운구곡을 벗어나면 화천 쪽으로 이어진 5번국도를 만난다. 버드나무가 휘청휘청 서있는 붕어섬의 전경과 함께 느릿느릿 흘러가는 북한강의 정취가 눈길을 잡는 이 길은 가을이 깊어갈수록 물안개까지 짙어져 낭만적이다. 여기서 구만대교를 건너면 파로호에 닿는다. 이곳에서 461번 지방도와 46번 국도를 타고 간동이며 오음리를 지나 소양호까지 이어진 길도 좋지만, 그보다 평화의 댐으로 가는 뱃길을 따라가 보는 것이 더 운치 있다. 파로호에는 오는 9월 중순부터 카페리호가 운항한다. 내륙의 호수에서 카페리가 운항하는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되돌아오는 길은 금강송이 쭉쭉 뻗어 있는 해산을 넘어가는 460 번 지방도로를 타고 나오는 것도 괜찮고, 내친 김에 양구와 인제를 지나 설악산까지 내닫는 것도 좋다. 단풍에 물든 굽이굽이 계곡길과 강변길, 그리고 뱃길을 따라가다가 동해의 시퍼런 바다까지 도달하는 여행은 오래오래 아름다움과 마주할 수 있는 길일테니 말이다.
◆ 1024번도로, 남면 해안도로
아는 이가 적어 조용한 이 도로엔 천년고찰과 청명한 숲, 바닷가 해안마을 같은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남해대교를 지나 1024번도로를 타면 처음 만나는 목적지는 화방사. 화방사 경내로 들어서면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연꽃이 미소를 보내고 계곡 물소리를 따라 불경소리가 흘러나온다. 화방사에서 돌아 나와 바닷가 마을을 따라가면 3그루의 소나무를 만난다. 가직대사 삼송으로 이름 붙은 이 소나무엔 마치 영험한 기운이라도 서려있는 듯 느껴진다. 도로를 계속 타면 남해 최고의 절경이라는 가천마을에 도착한다. 바닷가 절벽을 따라 계단마냥 층층이 자리 잡은 다랑논(다랭이 논)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난했던 우리네 민중들의 땀과 눈물이 어린 곳이기에 그 아름다움의 가치가 더해진다.
고즈넉한 해수욕장과 가을 들녘 가천마을을 지나면 해안도로는 더욱 조용해진다. 바닷가 들녘의 인사를 끝으로 저 멀리 창선·삼천포 대교가 모습을 드러내면 아름다운 가을 드라이브의 종착점에 다다른다. 남부럽지 않은 초가을 여행 추억, 그 낭만으로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