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회현동 여관으로...
가자! 회현동 여관으로...
  • 김윤재
  • 승인 2006.09.0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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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도 꿈틀대는 욕망
지방으로 출장을 갈 때 자주 이용하는 것이 여관이다. 물론 호텔이나 모텔이 있지만 이 곳은 가격이 좀 비씬 이유로 서민들은 허름하지만 하룻밤 쉽게 잠을 청할 수 있는 여관을 찾는다. 그러나 꼭 잠자는 것만이 목적이 아닌 여관도 있다. 바로 회현동의 여관 밀집지역이다.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에서 주인공이 당시 이 곳에 있었던 ‘미쓰코씨’ 백화점 옥상에서 건너편에 있는 ‘매음굴’을 바라보는 장면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가 바라보던 매움굴이 현재의 회현동 일대의 일명 ‘여관발이’ 골목이다. 미쓰코시 백화점이 신세계 백화점으로 바뀌었고, 매음굴이 여관촌으로 변했을 뿐,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상품'을, 다른 쪽에서는 '여자'를 사는 모습은 그대로다. 그런 회현동 여관촌 골목이 드디어 재개발 바람에 의해 일대 변환을 맞고 있다. 기존의 여관발이 골목은 철거 대상으로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대신 여관촌은 남산 쪽을 향해 더 올라가고 있다. 서울역 앞 '매춘의 역사'는 그야말로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는 셈이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 1번 출구를 나와 R호텔로 향하는 길은 욕망의 배설구로 가는 비상구였다. '여관발이' 골목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여관발이'란 여관 등 숙박업소에서 매매춘 행위를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청량리 미아리, 용산, 영등포 등 대부분의 전통적인 윤락촌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유독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만큼은 변함없는 흥행을 자랑해 왔다. ◆철거직전의 회현동 여관 골목
하지만 변화의 물결이 이 곳 회현동 일대를 강타하고 있다. 회현동 일대가 재개발로 인해 철거가 본격화 됐기 때문이다. 회현동 여관발이를 대표하고 있던 C업소를 중심으로 남성들을 유혹했던 여관들은 이미 비워지거나 문이 굳게 닫혔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안’에 의거해 이제 이곳에는 허름한 여관을 대신해 웅장하고 화려한 주상복합 건물이 세워질 계획이다. 회현동에서 성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여관들은 남산 쪽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을 중심으로 좌우에 포진돼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유명세를 떨친 업소는 약 세 군데 정도다. 여관발이 골목에 들어가는 입구에 있어 이미 철거지역에 포함된 C업소와 언덕길 우측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는 S업소, 그리고 언덕 끝에 낭만적인 간판을 내걸고 불쑥 솟아있는 Y업소 등이 회현동 시대의 절정을 장식했던 곳이다. 일찌감치 이 곳이 개발이 된다는 사실을 안 회현동 일대의 여관 업주들은 그다지 당황하지 않고 나름대로 대책을 세워 놓고 있다. 회현동은 비록 여관발이 방식의 성매매를 하고 있지만 다른 집장촌들과는 달리 진작부터 기업화를 이루고 있다. 여관 부지와 건물 그리고 화대를 밑천으로 삼고 있었기에 자본력에서만큼은 여느 집장촌과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개발의 핵펀치가 이 곳에 덥치면서 이들 세 업소는 회현동에 독과점을 형성했다. 이들은 이 곳 일대에 성매매를 독점하기 위해 신규진입을 철저하게 방어해왔다. 특히 여관업이라는 특수성은 관계당국의 단속으로부터 다른 집장촌들 보다는 훨씬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생존방식을 몸으로 익혀온 이들 업주들이 재개발에 전통의 간판을 낼릴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회현동 초입에 몰려있던 전통의 거리를 남산 쪽을 향해 보다 위쪽으로 올라가서 새로운 여관촌을 형성하려 하고 있다. 재개발이 회현동의 유흥지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대낮부터 꿈틀대는 욕망 회현동의 욕망은 대낮부터 꿈틀대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유흥가가 낮을 지나 밤이 되면 불야성을 이루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회현동은 벌건 대낮에도 그 욕망을 달구고 있다. 회사원 박 모씨는 점심시간에 가끔씩 회현동을 찾는다고 밝혔다. ‘대낮부터 그곳을 찾는 사람들도 있는가’라는 질문에 박씨는 “낮부터 회현동 일대 여관은 문전성시다. 때로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냥 돌아올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곳을 다녀갔던 사람들은 회현동 여관의 특징을 크게 세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 가격 경쟁력이다. 박씨에 따르면 회현동 일대 '여관발이'의 경우, 서비스 봉사료가 6만원 내외. 박씨는 “청량리나 영등포 같은 집창촌 화대보다 저렴하다”며 주머니 가벼운 직장인에게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가격이 싸면 질이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회현동은 그렇지도 않다는 점이 또한 가장 큰 경쟁력이란다. 다른 집장촌이나 안마 등에서 일하는 아가씨들보다 나으면 낫았지 못하지는 않는다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밝혔다. 회현동 '여관발이'의 두 번째 경쟁력으로 강도 높은 서비스를 들었다. 이 곳 “아가씨들의 '흡입신공'이 장난이 아니다”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애무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다른 집창촌과 달리 성매매특별법에도 끄떡없는 '여관발이'만의 법망 피하기를 들었다. 박씨는 “여관에 들어오는 아가씨들은 일반 사복을 입고 들어온다”며 “만약 경찰이 들이닥치면 여관에서 몸을 파는 성매매 여성이 아니라 여자친구라고 말하면 끝”이라고 웃었다. 박씨는 “최근 재개발 바람으로 일각에서는 회현동 여관촌 골목이 사라진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며 “위치만 좀 위쪽으로 더 올라갔을 뿐 쉽게 사라질 문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제 예전의 회현동을 찾았을 때 이미 그곳에서는 새로운 회현동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서슬 퍼런 성매매특별법도, 재개발이라는 시대의 흐름에도 소멸하지 않는 마치 '그들만의 특별구'를 보는 느낌이었다. 회현동에서 가장 유명세를 치렀던 C업소로 향하는 골목을 찾아보면 그곳은 이미 폐허나 다름없었다. 재개발이 이 곳을 만나면서 철거직전의 건물들만이 보인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빨간 페인트로 휘갈긴 '철거'라는 선명한 두 글자였다. 예전 여관들이 점령하고 있었던 곳이 ‘여관’이라는 간판보다는 ‘철거’라는 새로운 간판이 점령을 하고 있다. 건물 안 집기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진 상태다. 통유리 사이로 보이는 내부는 쓰레기 더미로 가득했다. 마치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흉가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일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입구 카운터에는 의외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2명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쉬었다 갈 거냐”고 묻고는 “여기는 곧 철거예정이니까 새로 지어진 여관으로 찾아가라”며 친절한(?) 안내를 했다. 이처럼 기존의 '여관발이' 골목을 찾는 손님들을 새 여관으로 안내하기 위해 철거촌에 인원을 배치해 놓았던 것이다. C업소가 옮겨간 곳은 남산 쪽으로 3백미터쯤 올라가는 언덕 쪽이었다. 그곳도 역시 과거에 '여관발이' 영업을 했던 숙박업소였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깔끔하게 리모델링을 해서 새 단장을 했다는 점이다. ◆끈질긴 생명력
안내를 받고 올라간 곳에는 예전의 명성이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C여관이 화려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새집 냄새가 채 가시지도 않은 그곳에서는 40대 여성이 카운터에 앉아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찾는 아가씨가 있느냐”고 다소 퉁명스럽게 묻던 그는 “서비스를 받으려면 적어도 1시간 이상 기다려야 된다”고 말했다. 재개발에도 불구하고 회현동의 흥행 기록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회현동 '여관발이' 골목의 이동에 대해 인근 주민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회현동은 집창촌이나 다름없다. 재개발 한다고 해서 이제 없어지나 싶었는데 오히려 더 주택가로 파고들고 있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여관 해서 갑부가 된 업주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재개발해도 떠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이번 기회에 여관을 옮기고 시설을 새로 고치더라”라고 덧붙였다. 회현동 언덕길에서 내려다보이는 낮은 풍경은 이제 곧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면 아마도 남산 밑에 숨어있던 '여관발이'의 풍경은 더 은밀하게 숨어들 것이다. 대로변에서 밀리고 밀려서 남산쪽 주택가로 자꾸 올라가고 있는 여관촌. 회현동 재개발은 그렇게 '여관발이'의 추억은 고스란히 남긴 채 겉만 변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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