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초리 대신 '덕벌','지벌' 교실이 달라졌다
과잉 체벌이 사회문제화되는 상황에서 매가 아닌 ‘덕벌(德罰)’과 ‘지벌(知罰)’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체벌에 비해 교실 분위기도 좋고 교육효과도 높다는 것이 이들 교사의 한결같은 평가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팔달공고 서미향(43·여) 학생부장은 지벌 찬양론자다. 여교사로는 드물게 공고 학생부장을 맡은 서 교사는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체벌 대신 시를 외는 벌을 준다. 윤동주의 ‘서시’나 조지훈의 ‘승무’는 서 교사가 내리는 지벌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시다. 서 교사는 10일 “실업계의 경우 이미 가정이나 중학교에서 체벌경험을 가진 학생들이 많아 교내에서 체벌을 금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매 맞는 대신 시를 외며 반성과 함께 감수성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원 숙지중학교 1학년 3반 담임 이숙현(29·여) 교사는 교단에서 덕벌을 실천한다. 1학년 3반 학생들은 한 달에 한 번 무기명 투표로 ‘칭찬왕’과 ‘개선해야할 학생’을 뽑는다. 선생님의 매 대신 친구들의 한 표 한 표가 잘못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김수현(13·가명)군은 “지난 3월 투표에서 개선 대상 학생으로 15표를 받고 눈물이 핑 돌았다”면서 “선생님의 매나 꾸중보다 친구들의 평가가 더 무서워 나 자신의 태도를 가다듬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 교사는 “개선 대상 1위를 차지한 학생이 몇달 뒤 칭찬왕이 됐을 때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서울 신길동 대영중 2학년 11반의 급훈은 특이하다. ‘세계에서 일등이 되려면 자신이 먼저 명품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학생들 스스로 벌을 정한 ‘명품반 십계명’이 있다. 교실에서 싸운 학생은 서로 코를 맞대고 10분간 서 있어야 한다. 조금 전까지 주먹질이 오갔지만 코를 맞대고 있다보면 어느새 친구에게 미안해지고 서로 웃으며 감정이 풀린다. 지각생은 주번을 맡아야 하고 떠든 학생은 종례 시간에 친구들 앞에서 공개 사과를 해야 한다.
담임 김덕경(45·여) 교사는 “아이들 스스로 벌을 정한 만큼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며 “지난 학기 매를 든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서울 면목고 역시 체벌 없는 학교로 유명하다. 2학년 전체 학생 중심으로 교칙을 바꾼 뒤 지각과 흡연문제가 크게 줄었다. ‘두발 3점,지각 1점,수업 불성실 2점,수업 중 휴대폰 사용 5점’식의 학교생활평가제(벌점제)를 운영한다. 일정 점수 이상 벌점이 누적되면 ‘바른생활교실’로 이동,학교가 별도로 마련한 1일 선도수업을 받아야 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재갑 대변인은 “학생들에게 주는 벌도 사회 흐름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면서 “덕벌·지벌이야말로 학생들에게 잘못을 깨닫게 하고 바른 인성을 갖추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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