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사태, ‘양비론’ 내세운 국민의당…그 속내는?
회고록 사태, ‘양비론’ 내세운 국민의당…그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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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엔 ‘색깔론 그만하라’…문재인에겐 ‘말 바꾸나’ 공세
▲ [시사포커스 원명국 기자]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송민순 회고록이 정국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가운데 제3당인 국민의당은 이번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양측을 모두 비판하는 전략으로 나와 그 배경을 놓고 뭇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그동안 최순실게이트 등 여러 면에서 야권 공조를 유지해왔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 악재가 일어나자 곧바로 거리를 둔 것은 물론 오히려 여당과 한 목소리를 내며 압박을 가하고 있어 왜 국민의당이 이 같은 이중적 행태를 띠고 있는 것인지, 또 야권 공조를 이대로 파기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국민의당, ‘문재인 낙마’로 대선 ‘반사이익’ 노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 더불어민주당과의 공조를 공고히 유지하던 지난 13일에도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4대 대기업 경제연구소장들과 간담회를 갖는다고 하자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시기적으로 부적절하기에 취소했으면 한다”며 사실상 문 전 대표를 비판한 바 있다.
 
이런 흐름에 비추어 보면 문 전 대표에게 있어 최악의 상황인 ‘송민순 회고록’ 사태가 일어났을 때 박 위원장이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첫 반응으로 “유감스러운 것은 (문 전 대표가) 서거하신 노무현 대통령님께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발언”이라며 “삼가는 게 옳다”고 문 전 대표에 일침을 가했던 것은 이상할 게 없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박 위원장은 하루 뒤인 17일 오전 열린 비대위에서도 “문 전 대표께서 명확한 얘기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가졌다”고 계속 압박한 데 이어 비대위 직후에도 기자들에게 “‘통보할 것도 아니고 통보할 필요도 없다’는 그런 스탠스가 맞았는데 왜 또 꼬이게 만들고 구실을 만들어주는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다”고 명확한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이 같은 발언은 일견 어떤 입장을 취하든 이번 사태로 타격이 불가피해 즉답을 피하고 있는 문 전 대표에게 출구 전략을 일러주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문 전 대표가 박 위원장이 제시한 ‘확정적’ 스탠스를 취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정확히 간파한 압박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문 전 대표는 스스로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보다 지난 16일엔 페이스북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언제나 토론을 모두 경청한 후 최종 결단을 내렸다”며 최종 결정을 내린 노 전 대통령에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해석 가능한 입장을 표하더니 17일엔 돌연 “기억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18일엔 아예 “그 질문은 안 하기로 했죠”라며 기자들의 질문조차 받지 않는 등 당사자이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방어적 자세만을 취했다.
 
이런 문 전 대표의 행태에 대해 박 위원장은 18일 한층 공세수위를 높였는데,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그는 이전까지 압박만 주던 자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문 전 대표가 이 문제에 대해 계속 3일간 말씀이 바뀌고 있는 게 문제다. 일구삼언”이라며 ‘말 바꾸기’ 태도에 직격탄을 날렸다.
 
▲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18일 서울디지텍고에서 기자들에게 “문 전 대표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압박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여기에 그간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아온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까지 같은 날 서울디지텍고에서 기자들에게 “문 전 대표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진실을 밝혀서 빨리 정리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압박 대열에 가세해 문 전 대표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안 전 대표는 이번 사태가 정쟁으로 비화되는 데 대해 “지금 현재 정치권에서 현안 문제가 많은데 정쟁에 휩싸이는 건 옳지 않다”면서도 “인권과 사회적 약자 보호는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는 숭고한 가치란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아 저는 당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선 한국 정부는 찬성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기권’ 의혹이 일고 있는 문 전 대표와는 분명히 차별화된 입장을 부각시켰다.
 
침묵을 깨고 갑작스럽게 내놓은 그의 발언은 야권 내 대선 경쟁자로서 여태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을 따라잡기는커녕 두 자릿수 지지율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던 자신의 입지를 이번 사태를 전기로 삼아 대폭 반등시키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이번 사태를 확산시키려는 새누리당에는 도리어 자제를 촉구하며 수위 조절에 나서고 있어 ‘송민순 회고록’ 사태가 이들에게 마냥 호재로만 볼 수도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국민의당, 文 압박 나선 ‘與 발목’ 왜 잡을까
 
즉, 이번 사안은 현 정세상 상대적으로 야권에 불리한 ‘안보·대북정책’과 연관이 깊다 보니 그간 수세에 몰려왔던 여당이 이 사태를 기회로 여소야대 국면을 무력화시키고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그 이전인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같은 유화책을 계승한 만큼 깊이 파고들수록 결국 김 전 대통령 측 호남 인사들이 다수 포진한 국민의당에도 자칫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의당, 그 중에서도 당내 박지원 비대위원장 등 과거 김대중 정부 관련 인사들은 이번 사태로 문 전 대표의 지지율만 떨어뜨리면서도 새누리당이 사안을 과거 정권의 대북정책 전반을 검증하려는 움직임으로 확대하려는 데에는 상당한 경계심을 내비치고 있다.
 
이런 불안감을 드러내 듯 이들은 문 전 대표에 대한 공세 못지않게 새누리당에도 날을 세웠는데, 박 위원장은 지난 16일엔 새누리당을 겨냥해 “틈만 생기면 색깔론 구태를 재현하며 북과 내통했다는 등의 공격은 지양해야 한다”며 “국면전환을 위해 고장난 유성기는 이제 끝내라. 과연 새누리당 지도부가 대통령께 미르, 우병우, 최순실 등 현안에 대해 한마디라도 진언했나”라고 정부여당의 약점인 ‘미르 의혹’ 등을 들먹였다.
 
뒤이어 17일에는 그가 심지어 “청와대와 새누리당에서 문 전 대표에게 ‘북과 내통했다’, ‘앞으로 정부에서 일을 못하게 하겠다’는 막말을 쏟아냈다”며 “미르, 우병우, 차은택, 최순실 등 이런 의혹·비리에 대해 TF를 구성해봤느냐. 청와대와 여당이 이런 건 스탑해야 한다”고 마치 문 전 대표를 두둔하는 듯한 모양새까지 취했는데,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그만큼 새누리당을 견제하려는 데에도 국민의당이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문 전 대표를 겨냥해선 짤막한 비난에 그치는 데 비해 새누리당에 대한 공세는 일관되게 구체적이고 강한 어조를 계속 견지하고 있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는데, 같은 날 박 위원장은 비대위에서 문 전 대표에겐 그저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면 정부여당을 겨냥해선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는 정유라, 2위는 최순실”이라고 상당히 자극적인 발언을 내놨다는 점 역시 이를 증명하는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박 위원장은 유력 대선주자가 위기에 처해 이에 대응하기도 바쁜 민주당에 비해 여당의 직접적인 표적이 아니다보니 새누리당에 대해 시종일관 강공을 펼치는 데에도 부담이 적었는데, 야권의 대여 공세에 있어 그간 민주당이 쥐고 있던 주도권을 이번 기회에 국민의당이 가져오겠다는 목적도 내심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박 위원장은 “독일로 정유라가 말을 타러 가는데 K스포츠에서 10명씩 따라가서 목장을 샀느니 말을 샀느니, 이게 도대체 나라 꼴이 뭐냐”라며 ‘K스포츠 독일 출장 의혹’을 구체적으로 거론한 데 이어 “이대 총장은 뭐냐. 정유라를 위해 학칙을 개정하고 F학점 나올 학생을 B학전 주고 이대를 완전히 망치고 있다”면서 ‘이화여대 특례입학·학칙개정’ 의혹까지 상세하게 언급하는 등 여론의 관심을 ‘최순실게이트’로 유도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면서도 새누리당에 견제구를 던지는 것은 절대 잊지 않았는데, 여당이 국정조사와 특검, 청문회, 대통령기록물 열람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야당이 집권했던 지난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구체적 사실을 검증하려 들자 자칫 국민의당에게까지 불똥이 튈 것을 의식했는지 박 위원장은 같은 날 “전 국민의 정부에서 박근혜 당시 야당 대표가 평양에 가서 김정일과 나눈 대화 내용을 잘 알고 있다”며 경고성 ‘역색깔론’으로 맞불을 놨다.
 
이 뿐 아니라 박 위원장은 “특히 박 대통령은 (2002년 방북 이후) 상암구장에서 남북 축구팀이 시합할 때 태극기를 흔드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왜 태극기를 흔드느냐, 한반도기를 흔들어야 한다’고 화도 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태극기 흔들지 말게 한 박 대통령에게 색깔론을 제기해야 하느냐”고 몰아세우면서 새누리당이 추진하려는 ‘송민순 회고록’ 특검 등에 대해선 “불필요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렇듯 박 대통령의 과거 북한 방문 당시 이야기까지 꺼내며 박 위원장이 맹공을 펴자 긴급의총까지 열면서 이날 ‘회고록 파문’ 확산에 나서려던 새누리당은 일단 주춤하는 분위기인데, 대신 화살을 이제 문 전 대표 외에 박 위원장에게도 돌려 “김대중 정부 당시 4억5,000만 달러 대북 불법송금 사건과 관련해 자신이 왜 감옥에 가서 실형을 살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고 맞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정작 이번 논란의 시발점인 ‘회고록’을 공개했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장관조차 이날 “새누리당이 대북정책을 뭘 잘했다고 과거를 뒤집는 데 초점을 맞춰서야 되겠느냐”며 여당의 움직임에 반감을 드러내 여당의 의도대로 흘러갈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당이 두 거대 정당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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