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거국내각 요구에 野 ‘미적’…비박, ‘지도부 퇴진’ 요구까지

겨우 뜻을 모아 제안한 거국내각 구성 요구는 야당의 거부로 난관에 봉착한 상태고 당내에선 비박계 의원들이 당 지도부에 책임지고 사퇴하라는 목소리를 다시금 높이기 시작하면서 당내외에서 거센 도전을 받게 된 이정현 체제가 혹 좌초되는 건 아닌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거국내각에 ‘선 긋기’ 나선 野에 다급해진 與 ‘발끈’
앞서 새누리당은 지난 30일 거국내각 구성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요청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현 정권의 힘을 뺄 수 있다는 일부의 우려도 있지만 국정운영 주체로 새로운 총리를 내세우는 것 외에 현 사태를 조속히 수습할 방도가 딱히 없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그동안 야권에서 주장하던 거국내각 구성에 동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와 관련해 세부적인 방식은 아직 어떤 것도 정해진 것이 없으며 야권이 생각하는 거국내각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음을 내비치고 있어 사실상 청와대에서 생각하고 있는 ‘거국내각’ 성격의 책임총리제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때문에 여야 합의를 통해 총리와 국무위원을 나누는 거국내각보다는 한 단계 후퇴한, 총리가 국무위원 제청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택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데 박 대통령이 야권도 수긍할 중립적 인사를 총리로 내세우느냐가 핵심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야권에선 대체로 책임총리제 쪽에 기울어있는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은 물론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이 없는 야권까지 자칫 중립내각 구성으로 정부여당과 함께 동반 책임지는 것처럼 비쳐져 책임 문제가 희석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는 만큼 돌연 전략을 수정하면서 거국내각 구성에 까다로운 전제조건을 내걸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3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에서 “국면전환용 카드로 거국내각을 꺼낸 것에 분노한다”며 “여야가 합의 못한 어버이연합 청문회,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에 의한 (최순실) 특검에 합의해 달라. 그러면 태도가 변화했다고 판단하겠다”고 새누리당에 요구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우 원내대표는 “우리는 특별법에 의한 특검에 의해서만이 진상을 규명한다고 생각한다”며 여당의 상설특검법 도입 주장도 거듭 일축했고, “검찰을 바로세우기 위해 공수처를 반드시 이번 정기국회 때 만들어야 한다”고도 덧붙였는데 이 모든 요구들을 여당이 전부 수용하기는 어려운 만큼 사실상 거국내각 요구에 반대를 표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같은 날 비대위에서 “거국중립내각 구성의 선결조건은 최순실 사건의 철저한 조사와 대통령의 눈물어린 반성,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이라며 “중립내각 구성을 위해선 (대통령이) 3당 대표와 협의하고 그 결과의 산물로 내놔야지, 최순실 사건이 검찰에 의해서만 발표되고 인사국면으로 전환시키려하는 전략적인 꼼수정치에 이제 국민이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야권 대선주자들도 거국내각 구성 요구에 대체로 회의적 반응을 내놨는데,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이날 청와대를 겨냥 “짝퉁 거국내각으로 위기를 모면할 심산인가”라며 “박 대통령이 국회에 총리 추천을 정중히 요청해야 한다”고 기 싸움을 벌였고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이날 비대위-국회의원 연석회의 직후 아예 “문 전 대표가 거국내각을 말했을 때 난 그건 가능하지 않다고 그때 판단했다”며 거국내각 자체에 선을 그었다.
이처럼 야권이 모두 거국내각 주장에서 한 발 물러섬에 따라 사태 수습에 나선 새누리당 지도부의 속은 더욱 타들어갔는데, 이 같은 양측의 신경전은 결국 이날 열린 국회의장-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폭발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비공개로 예정된 회동에서 자리에 앉자마자 정세균 의장에게 모두발언을 신청한 뒤 작심한 듯 거국내각 구성에 미온적인 야권을 일일이 비판하며 맹공을 퍼부었다.
정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은 야당이 제안한 거국중립내각안을 대통령께 건의 드렸는데 그 이후 ‘일고의 가치가 없다’‘꼼수다’란 야당의 반응을 보고 참 놀랐다”라며 “특검, 개헌특위, 거국내각 구성 등 야당 측 모든 제안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는데 즉시 걷어 차버린 이유는 뭐냐”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야당도 국가적 위기를 수습하는 데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하야 탄핵 정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냐”라며 “국가적 위기를 볼모로 정치공세적 자세로만 일관해서 되겠나”라고 맹비난한 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하려 했다.
그러자 이를 듣고 격분한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반성은커녕 오자마자 정치공세 한다”고 맞서자 정 원내대표도 퇴장하려다 고개를 돌려 “정치공세? 누가 먼저 했는데? 더 이상 받아들일 내용도 없고 제안할 내용도 없다”고 쏘아붙인 뒤 끝내 떠나버려 회동은 불과 시작 10분 만에 파행을 맞았다.
◆ 당 내부도 비박계의 ‘퇴진’ 공세에 혼돈 치달아
이렇듯 야권과의 관계도 순탄치 않은 가운데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다시금 계파 분열 조짐까지 나타나 당 지도부는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처한 형국인데, 그간 개별적으로 지도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이어오던 비박계 의원들이 드디어 집단행동에 나설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어 여기에도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대부분 비박계로 이뤄진 새누리당 의원 40여명은 31일 김학용 의원 주도 하에 국회의원회관에서 전격 긴급회동에 들어가 이번 최순실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현재의 친박 일색 지도부 역시 사퇴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날 참석자인 황영철 의원에 따르면 그 중에서도 비박계 수장격인 김무성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재창당 수준의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조치를 현실화하기 위해 본격 나서기로 했는지 이날 회동 뒤 이들은 지도부 사퇴를 위한 연판장 서명에 착수했으며 의총 소집까지 요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새누리당 의원 21명은 전날 최순실 파문의 진상 규명과 국정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까지 조직한 가운데 “현 사태를 견제하지 못하고 청와대 눈치만 본 당 지도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즉각 총사퇴해야 한다”며 일부 친박계 의원들까지 함께 ‘이정현 퇴진 성명’을 발표해 당 지도부에 대한 퇴진 압박은 한층 거세졌다.
특히 김 전 대표의 최측근이자 최고위 내 유일한 비박계 최고위원인 강석호 의원까지 이날 최고위에서 친박계 지도부를 앞에 두고 “오늘 아침 많은 의원들은 현재의 지도부를 갖고선 이 사태를 수습하기 매우 힘들다는 것이 대다수 여론”이라며 퇴진 압박에 나서는 등 당내 지도부 사퇴 요구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당내 소수인 비박계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당내 주도권을 탈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박 대통령에 이어 이제는 당까지 통제권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힌 친박계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뾰족한 수는 없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혹 당 기강을 세운다고 지도부에서 강력하게 맞대응에 나섰다간 그 반작용으로 ‘최순실 사태’ 문책론이 더 확산될 것으로 판단해 이 대표를 비롯한 퇴진 요구를 받은 당사자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당의 이 같은 분열 조짐에 야당까지 뛰어들어 사태는 더욱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주승용 국민의당 비대위원은 이날 비대위 연석회의에서 “친박계는 다 어디로 갔느냐. 대통령과 함께 동반책임을 져야 함을 잊어선 안 된다”면서 비박계와 마찬가지로 친박 압박에 가세했다.
이렇듯 최순실 사태를 기점으로 친박계를 흔들려는 움직임이 점점 구체적이고 명확해져가는 가운데 이에 대한 당 지도부의 침묵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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