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총리 지명 철회’, 국정 정상화 물꼬 틀까
朴 대통령 ‘총리 지명 철회’, 국정 정상화 물꼬 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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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정 6일 만에 野 요구 수용해 김병준 국무총리 지명 자진 철회
▲ [시사포커스 / 고경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기 위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로 들어서고 있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8일 국회를 전격 방문해 야권의 요구대로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겠다면서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를 임명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회를 전격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13분간의 짧은 회동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국정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가장 큰 책무”라며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에 좋은 분을 추천해 주신다면 그분을 총리로 임명해서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혀 지난 2일 내정했던 김 총리 후보 지명을 사실상 거둬들였다.
 
이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박 대통령의 일방적인 총리 지명에 반발해 청와대 영수회담에도 불참할 뜻을 보이고 있어 이대로라면 결국 김 총리후보를 임명키 어려울 것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이날 회동을 통해 한 발 물러나 총리 지명 권한을 국회로 넘기면서 야권도 마냥 박 대통령에 압박 일변도로 나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 朴 대통령, 이례적 ‘일보 후퇴’, 대응전략 변화?
 
‘최순실 파문’ 이후 야권의 요구를 일축한 채 개각까지 일사천리로 일방적 행보를 보이며 정면 돌파를 시도해오던 박 대통령이 8일 국회까지 찾아와 정치권에서 추천한 인사를 총리로 임명하겠다고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 이목을 끌고 있다.
 
그동안 악화된 여론을 진정시키고자 박 대통령은 두 차례의 대국민사과와 청와대 비서진 개편, 개각 등 청와대 주도로 잇따라 후속조치에 나섰지만 사태가 수습되기는커녕 일방적인 불통 행보라는 비판만 일어난 데 이어 여당 내에서조차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비판을 불식시키고자 박 대통령은 이날 자신에게 호의적인 기류가 흐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국회를 직접 방문하는 행보를 보였는데, 청와대 측은 당초 정세균 의장과 만나기로 예정됐던 이번 회동에 여야 대표까지 함께 참석했으면 한다는 의사를 전해왔지만 정작 야당 대표들은 박 대통령과 정 의장이 면담한다는 소식조차 회동 당일에야 처음 접했다며 이날 국회 방문을 여야 영수회담 자리로 만들고자 하는 데엔 응하지 않았다.
 
▲ [시사포커스 / 고경수 기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하기 전 “국민의 명령이다 박근혜 대통령 국정에서 손 떼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약속한 대로 이날 국회를 찾아와 정 의장과 면담을 가졌는데, 국회에 입장해 의장실로 가는 과정에서 대통령 하야나 퇴진 등을 요구하며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야당 의원들과 마주쳤으나 이를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정 의장과의 면담에서도 하야와 관련해선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지난 주말 시위에 이어 오는 12일에도 대규모 하야 촉구 시위가 예정되어 있는데다 검찰도 최순실게이트 관련해 이르면 내주 중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에 들어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점점 높아지고 있는 대내외의 퇴진 압박을 완화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공을 포기하고 한 발 물러나는 듯한 우회 전략을 택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 朴 대통령 제안에 野 ‘총리 권한 범위’ 쟁점화
 
특히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높이 평가한 여당과 달리 야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소통의 진정성을 보이겠다면서 직접 국회까지 방문했으면서도 정 의장과 고작 13분간 회동한 데 그쳤다는 점을 꼬집어 혹평했는데,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어렵게 발걸음 하셨는데 하신 말씀은 달랑 세 문장이었다. 90초 사과, 9분 재사과의 재판일 뿐”이라며 “자기 말과 요구만 일방적으로 쏟아놓고 돌아서버리는 대통령의 뒷모습에 또 한 번 절망한다”고 비판했다.
 
이 뿐 아니라 기 대변인은 국회에서 추천한 총리 추천 주장을 수용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총리에 전권을 이양할 것인지에 여부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대통령의 말씀은 모호했다. 실제로 총리에게 조각권을 주고 일체 간섭하지 않겠다는 건지, 국회가 추천한 총리에게 조각권과 운영권한을 주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국민의당 역시 이용호 원내대변인을 통해 민주당과 비슷한 반응을 내놨는데 “국가적 혼란의 엄중함에 비해 13분의 만남은 너무 짧았다. 보여주기식 행차로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 보는 것 아닌가”라며 “총리의 내각 통할은 헌법에 나와 있는 내용이고, 국회 추천 총리의 권한을 명확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의 총리 추천만으로 민심이 수그러들지는 의문”이라고 회의적 반응을 내놨다.
 
한 발 더 나아가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아예 “대통령은 하실 말씀을 하지 않고, 국회에 공을 던지고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며 그저 국면전환을 위한 행보 정도로 깎아내렸다.
 
여기에 대선후보들도 저마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에 대해 서로 다른 평가를 내놓고 있는데, 일단 여당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하는 데 반해 야권은 부정적 목소리가 높았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여권 내 대권잠룡인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오후 보도자료에서 “대통령의 오늘 발언은 일방적 총리 지명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태 수습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라며 “국민적 요구에 미흡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대통령께서 야당의 주장을 일부 수용한 것”이라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에 반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 원로들과의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 제안은 저와 야당이 제의했던 거국중립내각 취지와 다르고 민심과도 많이 동떨어져 있다”며 총리 추천 못지않게 총리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이 있느냐는 부분도 중요한데 이에 대한 언급이 분명하지 않았던 점을 파고들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문 전 대표는 “지금 박 대통령은 국민들 마음속으로 거의 탄핵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국정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을 빨리 종식시킬 수 있도록 대통령도 마음을 비우고 여야 정치권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종전처럼 박 대통령에 2선으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역시 같은 날 입장자료를 통해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지명을 사실상 철회하고 국회추천 총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표현이 애매하고 분명한 것이 없다. 박 대통령의 지금까지 행보를 볼 때 시간벌기용이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처럼 총리 권한 범위에 대한 설명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야권에서 수용 의사를 드러내지 않자 청와대 측에선 이날 “내각을 통할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새 총리에 드린다는 것”이라며 “신임 총리가 추천·임명되면 그것(내각 구성)이 총리하고 협의가 있어야 되지 않겠냐”라고 적극 해명에 나섰다.
 
또 이 관계자는 총리 외에 개각 인사로 발표됐던 임종룡 경제부총리 후보자와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임명동의안을 우리 생각대로 제출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총리직과 달리 장관직에 대해선 대통령의 임명 강행이 가능한데도 우선 국회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여지를 남겼다.
 
다만 청와대 측은 현재 김병준 총리 후보자의 거취에 대해선 “우리가 요청한 것은 국회에서 (새 총리 후보자를) 추천해주기를 요청한 것으로 지명 철회를 요청한 건 아니다”라며 “국회에서 후보자가 나올 때까지 후보자 신분은 그대로 가게 될 것”이라고 밝혀 모든 건 여야 간 협의에 달렸음을 시사했다.
 
즉, 국회에서 여야 간 총리로 추천할 후보군을 놓고 신경전만 벌이며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할 경우 결국 청와대는 이를 명분삼아 당초 내정했던 김 총리 후보자를 앉힐 의도도 갖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이날 ‘박 대통령이 사실상 총리 지명을 철회했다’는 소식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와중에도 당사자인 김 총리 내정자는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와 사전 교감은 없었다”면서 “자진사퇴는 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해석을 달리했는데, “(대통령이 직접) 지명을 철회한다고 말씀을 하셔야 한다. 지명철회란 단어를 쓴 건 아니지 않나”라면서 “저를 끌어내리는 방법은 여야가 새로운 총리에 빨리 합의를 해서 제가 사라지게 하거나 대통령께서 지명철회를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만 김 총리 후보자는 이 상황에 자진사퇴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선 “집착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정치적 야심이 있었다면 배지를 달아도 여러 번 달았을 것”이라며 “내가 가진 유일한 카드는 내정자 신분이란 사실인데 이걸 갖고 여야의 합의 구도를 이룰 수 있도록 압박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야 3당은 이날 박 대통령의 전향적 결정을 놓고 정세균 국회의장과 원내대표 회동에 들어갔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측에서 총리의 권한과 역할이 뚜렷하지 않아 추가로 확인해봐야 한다면서 일단 총리 추천을 거부해 정국 정상화가 언제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 불분명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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