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조기 전대 접고 조기 사퇴 가능성 열어

이들이 당내 비주류 인사들이었던 만큼 친박계에선 이번 탈당이 당을 뒤흔들 연쇄탈당의 전조로까지 보고 있지는 않고 있지만 현재의 친박 지도부 사퇴를 촉구했던 이들이 혹여 추가적인 탈당자가 나온다면 분위기가 반전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비박계에서도 남 지사나 김 의원처럼 공공연히 탈당 의사를 내비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고심 중인 인물들은 일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동참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인사도 나오는 등 친박 지도부에 대한 압박 수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 때문인지 내년 1월 21일 열릴 조기 전당대회를 내세워 내달 20일 퇴진하겠다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비대위 전환을 요구하는 비박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보다 일찍 사퇴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이날 내놓으면서 당 내홍이 어느 정도 해소될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남경필·김용태 탈당, 與 흔들 신호탄 될까
그동안 현재 새누리당의 친박 지도부가 사퇴하지 않으면 탈당하겠다고 계속 경고해왔던 남 지사와 김 의원이 끝내 탈당을 선언하고 신당 창당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현 새누리당 지도부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당내 비박 지도부인 ‘비상시국위원회’가 결성된 데에 족하지 않고 새로운 대안 정당을 통해 이정현 체제를 몰아붙이겠다는 것인데, 남 지사는 이날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탈당을 고민하는 의원들이) 많이들 있다. 얼마나 걸릴지 잘 모르겠지만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자신 외에도 탈당 가능성이 있는 의원들이 상당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단 또 다른 비박계 대권잠룡인 유승민 의원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재선 의원 주최로 열린 토론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저는 당에 남아서 당 개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자신의 탈당 가능성엔 분명히 선을 그으면서도 “오늘 탈당이 시작되고 있는데 당이 급속히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위기감이 있다”며 ‘연쇄탈당’ 가능성을 시사했다.
유 의원은 이어 “하루라도 빨리 당 지도부가 사퇴하고 비대위 체제로 가는 게 맞다”며 “당이 하루하루 망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친박 지도부를 거세게 압박했다.
이밖에 당내 또 다른 대권주자이자 비박계 수장격인 김무성 전 대표도 이날 오전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1주기 추모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남 지사와 김 의원의 탈당 선언에 대해 “우리 당에 있으면서 당을 새로운 당으로 만들 수 없다는 좌절감을 갖고 탈당하는 것 같아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김 전 의원 역시 유 의원과 마찬가지로 “현 지도부는 아무런 조건 없이 내년 1월 21일 전대를 취소하고, 비대위로 모든 권한을 넘겨야 한다”며 ‘지도부 사퇴’ 주장에 한 목소리를 냈다.
이 뿐 아니라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서도 “현재까지 나온 내용을 놓고 볼 때 탄핵받는 것이 마땅하다”며 “탄핵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다만 김 전 대표는 아직 탈당 문제에는 신중한 입장인지 비주류 의원들의 연쇄 탈당 가능성에 대해 질문 받자 “그건 지금 얘기하지 않겠다”고 답변을 유보했는데, 유 의원처럼 명확하게 일축하지 않아 여지를 남겼다.
그러자 이날 탈당 선언했던 김 의원은 여의도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새누리당 탈당 변곡점은 3개로 보고, 그 중 하나가 김 전 대표의 탈당”이라며 “김 전 대표가 결심하면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재차 결단을 촉구했다.
또 그는 연쇄 탈당에 영향을 줄 두 번째 요소로는 이번 주말의 촛불 집회를, 세 번째 요소로는 유승민 의원의 탈당 여부를 꼽았는데, 유 의원이 이미 탈당 거부 입장을 내놓은 데 대해선 “유 의원은 지난 비상시국회의에서 박 대통령 탄핵과 대통령의 윤리위 회부를 통한 출당, 거국내각 구성을 주장했는데 가장 쉽다는 윤리위 회부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어 계속 그런 입장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자신들의 탈당이 그저 새로운 정치적 입지를 모색하려는 데에 방점을 둔 건 아니란 점을 확실히 하려는 듯 “신당 창당이 문제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건 대통령의 직무 정지”라며 “늦어도 3주 이내에는 (대통령) 탈당 관련 문제가 정리돼야 하고 탄핵안을 가결시켜 연내에는 직무 정지를 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미 분명하게 탄핵 국면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탄핵’을 거론한 김 의원의 발언이 일견 새로워 보이진 않지만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탄핵안 의결정족수 충족이 분명해진 시점이어야만 본회의에 부치겠다는 입장이다 보니 최대한 여권 내에서도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분명히 밝힐 의원들이 늘어나도록 우회적으로 촉구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박완주 민주당 원내수석은 같은 날 탄핵안 찬성 의사를 공표한 여권 측 인물로 김무성 전 대표, 황영철 의원, 김용태 의원 세 사람 정도만 언급했던 만큼 여전히 비박계 인사들의 탄핵안 찬성에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어서 최대한 조속히 탄핵안을 처리하기 위해선 일단 새누리당에서 ‘탄핵 커밍아웃’이라도 일어나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듯 김 의원이 박 대통령 탄핵을 급선무로 내세우며 여권 내부를 뒤흔들었다면 이날 함께 탈당한 남 지사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에 날을 세웠다.
남 지사는 현재 친박 지도부가 ‘버티기’ 전략을 펴는 데에는 막후에 서 의원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서 의원의 정치행태는 밤의 세계에서 조직폭력배들이나 하는 그런 모습”이라며 “몇몇 최고위원들의 발언을 보면 다 조율된 듯한, 짜맞춘 듯한, 편가르기를 하는 것을 보면 (서 의원이) 행동대장처럼 지시하고 뒤에서 회유하고 압박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지난번에 나경원, 정병국 의원에게 ‘한번 해보자는 것이냐’고 한 것이 공개됐다. 조직폭력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 아니겠느냐”면서 “이런 일들이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다. 뒤에 숨어서, 조직적으로 하고 있는 서 의원에게 정계은퇴를 선언하기를 권유한다”고 강하게 몰아붙였다.
이처럼 탈당 선언으로 한층 자유로워진 남 지사와 김 의원이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고 투트랙으로 여당 지도부에 맹공을 퍼부은 데 이어 탄핵 찬성 의사를 밝혔던 황영철 의원도 이날 비상시국위원회 대변인으로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박 지도부는 온몸을 바쳐 지켜온 새누리당을 떠나는 두 분의 고뇌를 무겁게 받아 들이고 당을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즉각 물러나기 바란다”고 지원사격에 나섰다.
◆ ‘탈당 불사’에 놀란 친박, “비대위 수용 가능” 선회

이렇게 거세지는 압박을 더는 외면하기 힘겨웠는지 이정현 대표는 결국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비상대책위원회든 다른 대안이든 초·재선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제시하면 최고위원회의에서 얼마든지 의안으로 채택할 용의가 있다”며 조기 전대만 고수하던 그간의 입장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이 대표는 거듭 “최고위에서 현재 논의된 부분(1월 조기 전대안)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다른 안건으로 최고위 의안을 채택할 용의가 있다”면서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본격 논의해서 가져온다면 제로 그라운드에서 최고의원들께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자고 제안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그는 엄포에 그칠 줄 알았던 남 지사와 김 의원의 탈당이 실제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연쇄 탈당’ 분위기가 확산될 것을 우려했는지 추가 탈당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에 대해선 들은 바가 없다”고 일축한 뒤 “공동책임지고 국민들에게 함께 사죄하고 극복하고 요인을 고쳐나가는 게 정당에서 함께 일하는 동지”라고 강조했다.
반면 탈당 인사들의 ‘당 흔들기’에 맞서 이 대표는 “함께 하는 무리가 정당인데 그 무리 중 어떤 일이 있어 곤경과 어려움에 부닥친다고 해서 마치 조직원이 아닌 것처럼, 자신은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사람인 것처럼, 자기만 이슬 먹고 큰 사람처럼 그런 식으로 아닌 척한다고 해서 국민이 아닌 것으로 본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맞불을 놓은 뒤 남 지사가 제기한 ‘서청원 막후조종설’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닌 내용”이라고 극구 부인했다.
한편 이 대표가 바로 기존의 입장을 뒤집고 일종의 타협 여지를 보인 것은 물론 일일이 탈당 인사들의 발언에 신경쓸 정도로 남 지사와 김 의원의 이번 탈당은 향후 어느 정도의 여파를 미칠지를 떠나 우선 친박 지도부에 적잖은 충격을 준 것으로 비쳐지는데, 비록 ‘연쇄 탈당’의 기폭제가 될 것인지는 예단할 수 없더라도 친박의 ‘버티기 전략’에 균열을 일으킨 점은 분명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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