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맞바꾼 국민 혈세?

이같은 논란이 증폭됨에 따라, 최순실 일가에 돈을 준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허하기 위해서 국민연금의 손실까지 감수했다는 의혹이 퍼지고 있다. 삼성에 수천억원대의 엄청난 이득을 안겨준 대신 국민 혈세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삼성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한 것을 비롯, 최순실 일가에 별도로 35억원을 송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이 사실일 경우 2백여억원을 기부하고 수천억원을 이득 본 셈이라, 삼성 입장에선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꼴이다. 이에 박근혜 정권과 삼성 간의 정경유착 의혹을 파헤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지난해 7월 10일 투자위원회를 열어 합병에 찬성하기로 결정한 과정을 기록한 회의록이 나와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22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통해 입수한 <기금운용본부 운용전략실> 회의록에 따르면, 의결권 행사 방향을 논의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우선 삼성에서 발표한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 비율 1 대 0.35(삼성물산 1주→제일모직 0.35주로 교환)는 삼성물산 측에 불리하다는 점을 인식하고도 합병에 찬성한 점이 의혹으로 제기된다.
회의록에 따르면, 줄곧 합병 찬성론을 펴왔던 채준규 리서치팀장조차 “우리가 산출한 양사의 적정가치에 기초하여 합병비율을 구해보면 1:0.46(삼성물산 1주→제일모직 0.46주로 교환)이다”라며 “합병비율에 있어서는 삼성물산이 다소 불리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경직 해외증권실장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적정)합병비율 1 대 0.43을 근거로 합병 반대 의견을 권고했다.”면서 “1:0.35와 1:0.46이 큰 차이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지?”라며 합병 반대 입장을 밝혔다.
또다른 의혹은 ‘합병 후 시너지 효과’가 확실치 않았음에도 찬성했다는 점이다. 채준규 리서치팀장은 “삼성이 제시한 합병 비율(1:0.35)일 때 리서치 산정 합병 기준(1:0.46) 이후의 지분율에서 차이가 약 0.44%p 발생한다”며 “이를 상쇄하려면 (합병 후)시너지가 약 2조원 이상 발생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양사의 합병으로 인해 기업가치가 약 6% 증가하는 효과”라며 “합병 발표 이후 양사의 시가총액은 9%정도 상승했다. 장기적으론 보수적으로 보더라도 추가 10% 이상의 성장은 가능할 것이다. 시너지 효과는 2조원 이상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조인식 리스크관리센터장은 “합병 시너지에 대한 향후 전망을 근거로 미래가치를 현재 시점에서 긍정적이라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윤표 운용전략실장도 “주식운용실의 1:0.46의 합병비율이 목표주가 중립 정도인 거 같고, 시너지가 추가되어야 1:0.35가 정당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시너지 효과를 너무 낙관적으로 있는 게 아닌지”라고 지적했다. 채 팀장의 발표는 이해 당사자인 삼성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온 셈이라, 신뢰성에 의문이 나온다.
또 삼성이 내놓은 1:0.35의 비율을 적용할시 국민연금이 자체 산출한 적정 비율(1:0.46)보다 수천억의 손실을 본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합병에 찬성한 점도 의혹으로 제기된다.
별첨자료에 따르면 “삼성물산 합병비율을 높일수록, 제일모직 지분율이 높은 최대주주(이재용 부회장 측)의 지분율은 낮아지는 반면 국민연금 지분율은 높아진다.”고 돼 있다. 합병비율이 낮을수록 이재용 부회장 측에서 이득을 본다. 지난해 6월11일 제일모직 종가 18만원을 기준으로 삼성이 제시한 합병 비율(1:0.35)을 적용할 시와 1:0.45를 적용할 시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3천억 이상 차이가 난다.
또 삼성물산의 주식을 소유한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은 삼성 측에서 제시한 합병 비율을 문제 삼으며 적극적으로 합병을 반대했다.
하지만 사실상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은 삼성 측 의도대로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했다. 당시 자문기구들은 반대로 자문을 했지만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지난해 7월 주주총회를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분 4.06%(약 8조원)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며 경영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 혈세로 운용되는 국민연금은 최소 3천억 이상의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같은 상황과 관련,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5일 보도자료에서 “삼성물산에 대해 1.4% 지분만을 보유했던 이재용 일가는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을 완전히 지배하고 결과적으로 삼성전자의 지배력도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삼성이 아무런 대가없이 최순실 모녀에게 수백억원을 지원했겠냐”라고 반문하며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비율이 적용돼 이재용 일가가 부당하게 이득을 본 지분가치만 수천억원에 달한다. 삼성과 국민연금의 주가조작이나 배임 혐의, 삼성과 최순실 일당과의 부당거래 등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해 국민적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은 이같은 의혹에 대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는 지난 5월 이재용 부회장,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을 업무상 배임과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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