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 다시 돌아보는 ‘충격’
‘추억’으로 다시 돌아보는 ‘충격’
  • 이문원
  • 승인 2004.04.0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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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밴드*삐삐롱스타킹 "The Complete Best 1995~1997"
'삐삐밴드'의 첫 등장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팬들, 여전히 많을 것이다. 아직 '모던 록'이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하던 시절에 모던 록의 상징과도 같은 아디다스 트레이닝복 - 물론 이런 '전형성 카피'가 당시 모던록 매니아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 을 입고 나와, 당시까지 존재하던 '노래가사'의 여러 요소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음악구성 형식을 비웃어버린 '안녕하세요'를 불러대던 그들. '시나위'와 'H2O' 등, 당시 록음악을 이끌어가던 밴드에서 이름을 알린 강기영과 박현준, 그리고 무시무시할 정도로 펑키한 모습을 우리에게 선보여 충격을 안겨준 '빨강머리' 이윤정이 모여 만들어진 '삐삐밴드'는, 비록 음악적 완성도 면에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했지만, 적어도 신선한 감각을 지닌 뮤지션이 탄생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이들이 메인스트림 음악계에 첫발을 들이밀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사건'임에 분명했다. 그리고 멤버교체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 정확히 말하자면 '고구마'가 대체투입된 - '삐삐롱스타킹'은, '삐삐밴드'보다 훨씬 더 과격하고 아나키한 성격의 밴드로서, 모던 록의 가벼운 음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보다 더 공격적이고 냉소적이며 풍자적인 요소를 업그레이드시킨 음악을 선보여 음악팬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는데, 이들 또한 '모던록 밴드의 운명과도 같은' 해체의 과정을 거쳐 결국 이 놀라운, 선구적인 밴드는 한국록음악사의 한켠에 조용히 자기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그 생명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삐삐밴드'와 '삐삐롱스타킹'의 마지막으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마침내 1995년부터 시작해 1997년에 마감한 이들의 '전설적인 커리어'를 담아낸 컴플리트 베스트 음반이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유쾌한씨의 껌씹는 방법', '딸기', '바보버스', '아직도 눈이 내려'에 이르는 이들의 흥겨운, 그리고 이제는 '그리움'으로까지 자리잡게 된 명트랙들이 2장의 CD에 고스란히 담겨있고, '충격'마저도 결국은 '추억'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기묘한 감흥을 전해주고 있기도 하다. 지금은 '잊혀져버린' 모던록의 초창기에 대한 하나의 '증거'로서 한번쯤 간직해볼 만한 이번 "The Complete Best 1995~1997" 앨범은, '삐삐밴드'와 '삐삐롱스타킹'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이나, 그들의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이들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을 법한, 우리 음악사 '외곽'에 대한 눈부신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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