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이어, ‘캐스팅보트’ 한국투신도 수백억 손실에도 합병 찬성

국민연금의 손실까지 감수하면서 합병에 찬성해 삼성에게 수천억원의 이득을 안겨준 대신, 국민노후연금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청와대(최순실)의 압박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결국 삼성이 최순실씨 측에 수백억의 자금을 지원한 대가로 수천억원의 이득을 얻었다는 셈이다.
또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 외에도 기관투자가들도 적극 거들었다는 논란도 제기되며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그러면서 삼성 측의 ‘전방위 로비’ 의혹이 제기된다.
◆ “투자자 이익이 최우선이어야는데…”
29일 국회와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7일 삼성물산 임시주총에서 50개 기관투자가가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들이 의결권을 행사한 주식의 양은 삼성물산 주식 1천77만주(6.9%)였다. 이 가운데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자산운용(0.697%, 109만주)을 뺀 49개 기관투자가들이 찬성표(6.2%, 968만주)를 던졌다.
삼성 측에서 제시한 합병비율이 불리하다며 반대를 권고했지만, 반대표를 행사한 국내 기관투자가는 하나도 없었다. 특히 50개 업체 중 삼성물산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던 (2.85%, 445만9천598주) 한국투자신탁도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한국투신이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면, 출석주주의 66.2%만 찬성하게 되어 의결정족수에 0.4%p가 부족해 합병이 성사되지 않아 사실상 합병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한국투신이 찬성표를 던지며 합병은 가까스로 성사됐다.
한국투신이 보유했던 삼성물산 지분율은 제일모직(0.9%)보다 세 배 이상 높았다.
이와 관련,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도자료에서 “삼성물산 지분이 세 배 이상 많은 한국투신의 경우 합병비율이 높을수록 절대적으로 유리했다”며 실제 합병비율 1:0.35(삼성물산 1주→제일모직 0.35주로 교환)과 국민연금이 산정한 적정비율 1:0.46(삼성물산 1주→제일모직 0.46주로 교환)을 비교하면 한국투신이 358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설명했다.

제윤경 의원은 “어떻게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이 전부 반대의견을 제시했는데 투자자이익이 최우선이어야 할 기관투자가들이 찬성 몰표를 던질 수 있느냐”라고 지적하며 한국투신에 대해선 “합병 찬성으로 투자자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은 국민을 버리고 한국투신은 투자자를 버렸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제 의원은 “당시 합병 찬성을 종용한 삼성 측의 로비가 (기관투자자들에)엄청났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 “하나같이 재벌들, 특히 삼성 눈치를 보니까…”
당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 삼성물산 주식을 가진 국내투자가 중 유일하게 반대했던 곳은 한화투자증권이었다. 당시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삼성물산에게 불리한 합병비율을 문제 삼으며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삼성물산에 불리한 조건 합병이다”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발간토록 했다.
주진형 전 사장은 지난 25일 MBC <신동호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리포트를 쓴 것과 관련 “당시 삼성물산의 가격은 지나치게 저평가됐고, 제일모직은 지나치게 고평가된 상태에서 주식을 교환한 방식으로 합병을 한다는 것이 삼성물산 주주들한테 너무 불리한 조건으로 합병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화투자증권을 제외한 증권사들이 합병에 긍정의견을 낸 데 대해선 “우리나라 증권사 리서치는 사실 객관성이나 공정성에서 굉장히 문제가 많다”라며 “외국 증권사들은 거의 하나 같이 다 삼성물산이 저평가됐다는 식의 부정적인 리포트를 썼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하나 같이 재벌들 쪽을, 특히 삼성 눈치를 보니까 그렇게 찬성하는 그런 보고서들을 다 썼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삼성이)전방위 로비를 했다는 거 자체는 어떻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의견으로 듣고 독립적으로 판단해서 결정을 했다면 상관없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외국인 투자가들은 대부분 반대를 했고,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다 찬성을 했다”며 “이는 독립적으로 판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심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주 전 사장은 또 청와대 개입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저도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으로부터 얘기 들은 게 자기도 이상해서 물어보니까 청와대 뜻이었다. 그 당시 그렇게 얘기를 했다는 것”이라며 “그때는 청와대가 보통 이런 것에 끼지 않는데 왜 무리한 일에 개입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라고 하는지 이상하게 생각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본부장이 독자적으로 그렇게 판단을 했는지, 아니면 그 당시 제가 들은 대로 청와대 그리고 안종범 수석한테 지시가 왔다고 하면 안종범 씨는 왜 그렇게 했는지, 안종범 씨는 누구한테 그 얘기를 들은 것인지를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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