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을 받게 해주겠다며 식품가공업체들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농림부 공무원 등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5일 허위로 공적조서 등을 꾸며 정부포상을 받게 하거나 업무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업체들로부터 뇌물 등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로 이모(50·5급)씨 등 농림부 공무원 15명과 이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H식품협회 회장 이모(47)씨 등 3명을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 허위 사업을 발주해 받은 추가예산으로 농림부 공무원들에게 향응을 제공한 혐의(뇌물 공여)로 농수산물유통공사 김모(55)부장 등 5명도 함께 불구속 입건했다.
지금까지 정부포상 대상자 선정을 놓고 정부기관 내부 공무원들 사이에서 불만과 불평이 새어나오는 등의 부분적인 잡음이 일어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업체를 상대로 노골적으로 ‘포상’을 미끼로 거액의 뇌물이 일어난 적은 처음 있는 일이다. 농림부 식품산업과 직원들은 억대의 돈을 받고 ‘전통식품 선발대회’의 심사기준과 심사위원 명단 등을 관련기업에 넘겨주었고 이 업체 대표는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을 각각 수상을 했다. 정부포상을 받은 한과업체는 이후 매출이 약 3배로 뛰었다. 농림부는 이들에 대해 ‘결과를 지켜 보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뇌물 받고 허위공적서 꾸며
농림부 이모(50·5급)사무관은 2002년 친구에게 2억원을 빌려주고 받았던 경기 평택의 토지가 기존 대출금 11억원 때문에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먼저 H식품협회장 이모(47)씨와 B복분자 대표 임모(41)씨에게 접근해 평택 땅을 11억원에 자신이 친구로부터 받을 2억을 더해 13억원에 매입해줄 것으로 부탁했다. 하지만 이씨 등이 이를 거부하자 이 사무관은 ‘우수농산물 BEST5 선발대회’에서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도록 해주겠다고 제안해 13억원에 매매계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이 사무관은 이후 심사위원 명단은 물론 맛·포장용기·디자인 등 심사기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이씨 등이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도록 도와줬다.
이 사무관은 또 2003년 모 전통한과업체 대표 김모(50)씨로부터 석탑산업훈장을 받게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3700만원을 받았다. 이 사무관은 이 업체가 산업재해율이 17.5%로 업계 평균(2%)을 훨씬 웃돌아 포상자격이 없는데도 산하기관인 농수산물유통공사에 추천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농림부 산하기관이어서 평소 농림부 공무원들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는 농수산물유통공사 직원들의 약점을 악용한 셈이다. 이 사무관은 추천 과정에서 산업재해율을 누락시킨 것은 물론 이 업체가 2000년 30만달러어치 한과를 수출한 것처럼 허위로 공적조서를 작성해 농림부 부이사관 김모(57·3급)씨에게 통보했다. 김 부이사관도 이러한 사실을 묵인하고 행정자치부에 통보해 이 업체가 석탑산업훈장을 받도록 했다.
◆전과 사실 누락, 뇌물 제공하기도
농림부 공무원들은 상훈대상자의 전과사실을 고의로 누락시키기도 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농림부 상훈담당인 김모(39·5급) 사무관 등은 2002년 10월 우수농업경영인 포상대상자 선발시 허위 공적 조서를 만들어 H식품협회장 이씨가 석탑산업훈장을 받도록 도와줬다. 김 사무관 등은 이씨가 1999년 농림부 국고보조금을 허위 신청했다가 처벌받은 사실을 고의적으로 누락시킨 공적조서를 심사위원회에 제출, 신청업체들 중 평가점수 100점으로 최고점수를 얻어 훈장을 받도록 했다.
또한 농림부 최모(51) 서기관 등은 이씨가 2004년과 2005년 농림부로부터 전통식품 개발 용도로 지원된 국고보조금 19억5000만원을 땅 투기 등에 쓴 사실을 눈감아 주고 1500만원 상당의 향응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최씨 등은 또 농림부의 산하기관인 농수산유통공사 식품산업팀 직원들로부터 업무편의 제공 대가로 100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한편 김모 씨 등 농수산유통공사 직원 5명은 2004~2005년 추석 때 개설한 직거래 장터에서 홍보용 시설을 허위 발주해 3500여 만원의 예산을 추가로 타낸 뒤 이중 1000여만원을 최씨 등의 접대에 사용하기도 했다.
◆당사자들 억울하다 입장
농림부는 5일 서울경찰청 수사과가 훈장수여를 미끼로 뇌물 등을 받은 혐의로 농림부 공무원 15명을 불구속 입건한 것과 관련,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며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검찰 수사나 법원의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농림부 입장을 밝힐 단계가 아니다"면서 "사건 진행 상황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3월 초 최초로 의혹이 제기된 뒤 해당 직원들에 대해 자체적으로 사실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일부 1∼2건의 의혹 외에는 대부분 별다른 혐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에 의해 뇌물 2억1천7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농림부 사무관 이모 씨의 경우 경찰 수사 결과를 강하게 부인하며 명예훼손 등에 의한 법적 소송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무관은 언론에 배포한 해명자료를 통해 "경찰은 친구에게 빌려줬다 받은 돈 2억원을 뇌물이라고 주장하는 등 짜맞추기 수사를 하고 있다"면서 "뇌물을 받기 위해서 제3자와의 복잡한 매매계약을 할 이유가 없고 온라인으로 2억원이 넘는 돈을 뇌물로 주고받는다는 것 자체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