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퇴진안 수용’해 정면돌파?…與 ‘자유투표’ 방침, 탄핵 가부 변수될까

지난 3차례에 걸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도 불구하고 민심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도리어 하야에서 탄핵으로 수위만 한층 높아진 상황인데, 이에 따라 각자 계산에 몰두해 그간 주춤했던 정치권도 민심에 떠밀려 다시 탄핵 표결 쪽으로 중의를 모아가고 있다.
심지어 친박계 일부에서도 탄핵 찬성 의사를 표하고 있다든지 표결 당일 불참할 게 아니라 모두 참석해 자유투표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어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이제 거스르기 힘들 정도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치권이 이 같은 분위기에 휩싸이자 청와대 측도 의외의 전개에 상당히 당황한 듯 5일 오전 청와대 정례 브리핑조차 전격 취소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일단 이날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출석한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은 퇴진 시기와 관련해 “곧 결단을 내릴 것”이라 밝혀 청와대가 어떤 반응을 내놓을 것인지 벌써부터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촛불민심 압박에 정치권, 탄핵시계 ‘초읽기’ 돌입
지난 3일 열렸던 6차 촛불집회는 주최 측이나 경찰 측 어느 쪽으로 추산하든 역대 최대 규모를 과시한데다 청와대만 향해왔던 성난 민심이 이제는 탄핵안을 놓고 지지부진하고 있는 정치권으로도 옮겨 붙어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처음으로 규탄 집회가 열리는 등 최순실 사태의 불똥이 국회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특히 이전과 달리 새누리당사 앞에서 열린 집회에선 시위대가 항의의 의미로 당사에 달걀을 투척하는 등 일부 과격 양상도 나타나고 있어 오는 9일 본회의에서 탄핵안 처리가 부결될 경우 그 후폭풍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를 의식했는지 앞서 탄핵이 아닌 4월 퇴진 쪽으로 어느 정도 입장을 정리했던 비박계도 다음날인 4일 오후 급히 비상시국회의 총회를 열어 장장 4시간 30분에 걸친 격론을 벌인 끝에 탄핵 표결 참여로 다시금 돌아섰다.
당시 비상시국위 간사 격으로 참석한 비박계 황영철 의원은 회동 직후 기자들에게 “청와대에서 공식적인 면담 요청을 하더라도 이 만남은 적절치 않다고 결론 내렸다”고 발언할 정도로 더는 재고의 여지없이 탄핵에 동참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렇듯 야권만 추진해 부결 가능성이 높았던 탄핵안이 전격적인 비박계의 합류로 반전 가능성을 열게 되면서 허를 찔린 친박계는 어느 누구보다 당혹스러워 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미 비박계까지 탄핵 국면으로 접어든 이상 박 대통령의 ‘불명예 퇴진’을 막기 위해서라도 마지막 남은 카드인 ‘조기 하야’를 대통령에 촉구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성원 새누리당 대변인은 5일 오전 최고위 결과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의 4월 퇴진, 6월 대선에 대해 청와대가 즉각적이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입장 표명을 요구하기로 했다. 자진사임에 대해 정확한 타임스케줄을 얘기해 달란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2선 후퇴선언 요구도) 포함돼 있다”고 청와대를 압박할 뜻을 내비쳤다.
이 같은 요구를 청와대에 전달할 것으로 알려진 이정현 대표 역시 같은 날 “청와대가 그 부분을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대신 이 경우 탄핵은 불필요하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 靑, ‘4월 퇴진 수용’ 카드로 판 뒤집기 성공할까
여기에 화답하듯 거취 문제를 국회로 넘겼던 청와대 측도 같은 날 오후 허원제 정무수석이 ‘최순실 국조특위’ 전체회의에서 “대통령은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당론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말했다”고 해 사실상 탄핵보다 ‘4월 퇴진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허 수석 뿐 아니라 한광옥 비서실장도 마찬가지로 “(퇴진) 날짜에 대해서는 당에서도 지금 요구하고 있는 것도 있지 않나, 대통령은 당원이니 그런 의미에서 여러 가지로 참고를 해달라”며 대통령이 ‘당원’임을 강조해 ‘4월 퇴진’ 쪽으로 입장을 내놓을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는 7일 오후 6시까지 ‘4월 퇴진안’ 수용 여부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표명하라고 최후통첩 했던 지난 주 비박계의 요구에도 여전히 침묵하던 청와대가 갑작스런 정국 변화에 다급해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한편 어떻게든 비박 일부의 마음을 되돌려 탄핵안을 부결시키려는 의도가 포함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는데, 일단 비박계도 이미 탄핵 표결 동참 쪽으로 입장을 번복한 이상 청와대의 뒤늦은 러브콜에 또 다시 입장을 선회하는 부담을 감수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다만 표결이 있을 9일 이전에 박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4월 퇴진 등 조기 하야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대국민담화를 한 차례 열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 여당 지도부에선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과 별개로 탄핵 표결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순으로 접어든 만큼 차라리 친박계 의원들도 모두 당일 자유투표 형식으로 표결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진석 원내대표는 5일 오전 기자들에게 “(이정현 대표도) 동의했다”면서 “9일 예정대로 탄핵 절차에 돌입하게 되면 저희 당 의원들도 다 참여를 해서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만큼 양심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 옳다. 이것이 제 일관된 생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與野, 탄핵 표결 전부터 ‘부결 역풍’ 경계
정 원내대표의 말대로 만일 친박계까지 참석해 자유투표를 치른다면 2가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무기명 투표로 치러지는 특성상 친박계 의원들도 표결에 참여하면 비박계 의원들 중 일부가 혹 탄핵 반대표를 던질 부담을 한층 덜게 될 수 있다는 점이 있으며 친박계는 친박계대로 탄핵 표결에 참석해 일부가 찬성표를 행사했다는 주장을 펼쳐 계파 전체에 대한 여론의 비난을 완화시킬 수 있다.
즉, 앞서 비박계 황영철 의원이 5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친박계에도 탄핵에 찬성하는 의원이 3명 이상”이라고 밝혔던 점에 비쳐 탄핵 표결 당일 무기명 투표로 진행되면 친박계 의원들 중 누가 탄핵에 동조한 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섣불리 여론도 친박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기 어려워진다는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여기에 황 의원이 “저희들은 가결 정족수를 충실하게 지켜낼 만한 숫자는 확보하고 있다. 문제는 야당”이라고 강조한 부분도 친박계 못지않게 비박계조차 탄핵안 부결 시 후폭풍이 온전히 여당에만 집중될 가능성을 어떻게든 최소화하려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은 여당의 이 같은 자유투표 방침에 별 다른 반발은 하지 않고 있는데,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5일 정 원내대표의 ‘자유투표’ 발언에 대해 “보이콧하지 않고 표결을 자유투표에 맡긴 건 비교적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오히려 극찬했다.
이는 비록 친박계가 반대표를 행사할지언정 함께 표결에 동참했다는 자체가 9일 탄핵 표결의 대표성이나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만에 하나 탄핵안이 끝내 부결된다고 해도 그 역풍이 본회의 표결에 참석했던 야권 및 비박계에만 쏠리는 게 아니라 반대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친박계에 먼저 쏠릴 것이란 계산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비박계에서 탄핵 의결정족수를 확보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부결될 경우 그 책임이 야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의식한 듯 우 원내대표는 가급적 가결을 장담하는 모습은 지양했는데, 그는 “탄핵안이 부결된다면 당마다 강도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민주당의 책임이 면탈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어제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이 모여 긍정적 결정을 내렸지만 지난번 서명한 40명 의원 전원이 그 결정에 구속된 건 아니다”라고 말해 혹시 있을 부결 책임을 분산시키려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면서도 탄핵 부결은 야권이 박 대통령 거취에 더 이상 어떤 영향을 줄 수 없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한다는 절박감을 염두에 둔 듯 대선주자도 나서서 탄핵 가결을 목표로 앞장서 배수진을 치고 나왔는데,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이날 자신의 SNS에 “야당은 전원이 의원직을 사퇴할 각오로 탄핵가결에 나서야 한다”며 한층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이처럼 탄핵 후폭풍에만 관심을 둘 뿐 탄핵 가결 이후 정국 로드맵을 마련하는 데에는 정작 소홀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은데, 당장 오는 9일 탄핵안이 가결될 경우 박 대통령의 직무정지와 동시에 출범할 황교안 국무총리 체제를 그대로 받아들일지 여부와 관련해서도 야권은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일각에선 대책 없이 탄핵만 밀어붙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내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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