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하게 말해 현애자 의원은 민주노동당의 아홉 의원들 중에 지명도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지역구에서 당선한 의원도 아니고, 방송토론의 단골패널로 활약한 적도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실속이 없는 건 아니다. 보건복지상임위원회를 맡으며 민노당의 간판공약인 무상의료를 책임 있게 추진하고 FTA의 핵심쟁점인 의약품 협상에 대한 이의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이가 바로 현애자 의원이다. ‘전문가들이 쓰는 어려운 말은 잘 모른다’며 소탈하게 기자들을 맞아준 현애자 의원에게 FTA와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에 관해 들어보았다.
◆ 지난 9일 한미FTA 3차협상이 마무리되었다. FTA 협상 진행과정에 대한 평가는
- 협상이 지나치게 미국 위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제안이 실현되면 서민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영향평가 결과를 설명해주지도 않습니다. 반면 한국 쪽 입장에서 의제를 제안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지난 싱가포르에서 열린 의약품 별도협상에서 미국의 의제는 16가지 항목이었고, 우리가 제안한 것은 4가지뿐이었습니다. 협상 기간 내내 미국의 의제 16항목만 다루다가 끝나는 식입니다.
전략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FTA를 통해 나올 성과가 목적이 아니라, 한미FTA 체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협상단들은 FTA의 의제에 대해 대책을 제시하지도 않은 채, 그저 FTA는 대세라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감성적인 홍보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한-칠레FTA나 쌀 협상 때도 그랬듯이, 정부가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도 않은 채 일단 추진해놓고 나서 사후에 국민들이 반발하면 이제는 국가간의 신의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나올 겁니다. 불이익이 크다면 중단하는 게 옳습니다. 민노당은 위헌 소송, 비준 거부, 국민투표 등을 동원해서라도, 이대로 강행되돈?놔두지는 않을 겁니다.
◆ FTA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미국과의 FTA는 대세이며, 외자 유치를 통해 세계경제에 진출할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론이 있다면
- 한미FTA를 통해 국부가 증진할 수도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국부가, 그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가 더 큰 문제입니다. 멕시코의 사례만 봐도 개방을 통해 빈부의 격차가 심해졌습니다. 우리는 한미FTA 이전에도 미국에 대해 이미 높은 수준의 개방이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지금 미국이 이끌어 가는대로 체결된다면 흔히 양극화라고 하는 갈등과 대립이 심화될 겁니다.
예를 들어, 지금 보장된 약제급여조정위원회에는 제약회사 대표들에게 2자리를 내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제약회사가 직접 약가를 조정하는 과정에 개입할 수 있게 보장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은 조정위와는 별도로 또다른 이의신청기구를 FTA에 포함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기존 것과 똑같은 효능의 신약을 내놓으면서 개발비가 얼만큼 들었으므로 그만큼 돈을 더 내라고 주장하면 우리는 그 정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달라는 가격을 다 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약값이 치솟게 될 겁니다.
더 중요한 건 FTA의 주체가 되는 국민들을 돈과 경쟁이 지배하는 세계로 내몰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존엄성, 행복, 공동체 같은 인간적 가치를 부정하고 선택을 강요하는 일입니다.
▲ 현애자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을 평가한다면 어떤가.
- 노무현 대통령은 서민들의 실생활과 고민을 알려고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말로만 서민을 위한 개혁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현장에 나가면 이미 국민들의 마음속에 노 대통령은 없습니다. 시쳇말로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보다 더하고들 해요. 한나라당은 그나마 민원을 들고 찾아가면 앉아서 들어주기라도 하지, 열린우리당은 우리도 다 안다고 말 끊고 돌아서서는 꼭 나중에 뒤통수를 친다고요.
서민을 위한 개혁을 하겠다면 우선 서민들의 생업을 보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복지예산 수준은 그전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김근태 의장, 유시민 장관 등 유력한 인물들이 장관으로 임명되었다고 하지만, 보건복지 정책이 위상이 높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기득권 위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건강보험의 보장 수준이 고작 56%입니다. 우리보다 늦게 건강보험을 도입한 대만의 85%보다 훨씬 적어요. 참여정부가 몰라서 건강보험 수준을 놔두는 게 아닙니다. 개혁을 추진하려면 기득권을 가진 이익집단들의 압력이 들어오고, 참여정부에게도 그런 압력을 돌파할 의지가 없는 까닭입니다.
◆ 내년이 대선인데
- 민심을 얻고 지지를 받으면 집권할 수 있겠지요. 지금 민노당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어렵지 않습니다. 진보정당 최초로 원내에 진출하며 많은 기대를 받았습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치열한 평가의 시간을 거쳤습니다. 민노당에게 전체적인 정책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고 지금 서민경제를 중심으로 한 국가 모델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제 임기도 1년 남았습니다. 저는 원래 농사를 짓던 사람이고 지금도 고향에서 2종의 작물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제가 의원별 제출법안 예산소요 2순위에 올라있다고 합니다. 보건복지상임위라는 게 그렇습니다. 기초생활보장법 재개정안만 5~6조원이 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민·노동자를 기반으로 하는 민노당에게 이 상임위 자리는 더없이 중요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기초생활보장법 재개정을 포함한 3대 법안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놨습니다. 농사를 짓는 마음으로 빈곤층과 서민의 복지 향상의 역점을 두고 의원직에 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