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후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결과적으로 100% 완벽한 모범답안 외 별다른 소득이 없다는 평가다.
물론, ‘좌파신자유주의’ 정부는 보수 측을 겨냥해 추진하는 한미FTA체결과 진보 측을 겨냥해 완성하려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환수 등에 대해서는 든든한 미국의 지원을 받은 셈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향후 정국운영에 어느 정도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 결과가 거꾸로 ‘부메랑 효과’를 가져와 참여정부로 화살이 돌아갈 공산도 커 보인다. 즉 한미FTA를 반대하는 측과 전작권 환수를 반대하는 측은 분명히 성향이 상반된다는 점이다. 정치권의 입장에서 볼 때, 전자를 반대하는 측은 민주노동당이고, 후자를 반대하는 측은 한나라당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사안을 달리하는 가운데 양측의 협공에 정부는 그대로 노출돼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열린 한미정상회담의 주요의제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북핵 및 미사일 관련 사안, 한미동맹 및 전작권 환수 문제, 한미FTA 체결에 관한 것 등이다. 현 정국에서 가장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는 문제들을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정부가 해법을 찾으려는 복안이 적지 않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100% 완벽한 모범답안
하지만 그 결과는 별로 소득이 없다는 것이다. 확실한 설득적 논리나 대안이 나오지 못했고, 원론적인 합의나 기존 회담의 입장만을 되풀이하는 수준이었다는 평가다. 오히려 원론적인 합의에 그친 이번 정상회담 결과가 부메랑이 되어 정부를 압박하는 수순이 펼쳐질수도 있다는 시각마저 나오고 있다.
물론,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그리 실패한 회담은 아니란 게 정가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얻은 소득은 무엇인가.
먼저 북핵·미사일 사태와 관련해, 6자 회담을 통한 평화·외교적 해결방식이란 원칙을 재확인 한 것이다. 더욱 강경한 미국 내 네오콘들의 공격에서 기존의 입장의 재확인 차원이긴 하나 강경일변도의 확대를 막은 점은 이득이라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한미FTA 체결의지 확인이다. 양국 정상은 “체결 시간보다는 내용이 더욱 중요하지만,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체결한다는 원칙 하에 협상하자”고 같은 목소리를 냈다. 이는 정부의 경제관련 역점사업에 대해 미국의 지지를 전폭적으로 얻어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전작권 환수 문제는 부시대통령이 직접 “정치적 논리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둘러싼 ‘청와대·참여정부 VS 한나라당 및 보수단체'간 대립국면에서 대통령의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번 정상회담이 참여정부에 유리한 국면으로 지쳐지고 있지만 정국기류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정치적 현안으로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즉, 이번 정상회담이 사실상 구체적인 내용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북핵사태에 대해 양국은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 방안은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실행계획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세부 내용은 추후 외교라인 실무협의를 통해 만들어가도록 해 지금 평가를 내릴 수가 없다. 때문에 이 방안을 두고 한국사회는 기대와 의혹의 눈초리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북한과 미국은 6자회담 복귀를 두고 팽팽히 맞서고 있는 양상이다. 북한은 먼저 금융제재를 풀어야 복귀한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그 반대다. 따라서 이 접근방안이 양국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절충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반면 한미간 조율이 힘든 대북관련 문제를 두고 양국의 정상이 ‘외교적 수사’를 통해 이를 빠져나가려는 행태로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남북관계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집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부시 대통령은 미국 강경파인 네오콘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나온 미봉책이란 소리다.
이런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미사일을 무기 삼아 미국과 협상하려는 북한은 전방위적 ‘금융제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이 지난해 9월 ‘북한이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을 통해 위조 달러 지폐를 유통시키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 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시킴과 동시에 세계 금융기관에 북한과의 거래금지 내용을 담은 경고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이로 인해 현재 BDA은행에 묶인 액수가 2천 4만 달러다. 이런 제재는 자본이나 물자가 일국에 머무를 수 없는 지구화 시대에, 자본주의적 선순환 구조가 미작동하는 북한에게는 ’사형선고‘나 진배없다.
이와 관련 정상회담 전날 노 대통령과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이 대북금융제대에 대해 의견을 나눈 이후, 회담에서 대북제재와 관련,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각국이 취하고 있는 조치를 또 취하게 되는 것이고, 북핵문제와는 별개로 미국의 국내법에 의해 진행되는 상황은 또 그것대로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문제는 미국의 국내법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BDA금융제재에 대해 용인하고 있다는 것. 그 제재의 발단이 위조달러 문제라 할지라도 그 이면에는 북핵과 관련한 미국의 강경압박 전술의 일환이란 점을 노 대통령은 간과해버린 것이 큰 실수다.
이처럼 북핵사태에 대해 실질적 해법을 찾지 못한 정부에게 다시금 한미FTA와 전작권 환수의 칼날이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노 대통령이 이 두 사안에 대해 미국의 지지를 얻었다고 해서 모든 국민의 지지를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질적 해법 없는 정상회담
우선 한미FTA문제를 본다면, 이미 반(反)FTA 진영에서는 이 협정을 미국에 유리하다고 본다. 때문에 부시의 지지입장은 당연한 소리다. 여기에 덧붙여 현재 한미FTA 졸속 추진과 관련해 민변과 사회단체의 지원을 받은 여?야 의원 23명이 헌재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해 놓은 상황은 결코 노 대통령에게 유리하지 않다.
아울러 ‘전작권 환수’ 문제에서 노 대통령은 분명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환수를 강력히 반대하는 한나라당은 기존의 ‘전작권 환수는 한미동맹의 균열을 불러와 한반도 안보공백을 초래한다’는 주장 대신 향후 결정될 환수시기의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정부를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2009년 환수와 국방부의 2012년 환수의 틈새를 파고들어 냉전적 사고에 기인한 ‘한미균열’을 다시금 들고 나올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만은 없다.
이런 정황을 고려해볼 때, 정부는 이 두 사안에 대해 양측의 전방위 공세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소위 진보그룹은 한미FTA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며, 정보공개와 협상과정의 투명성에 대해 줄기차게 목소리를 낼 것이고, 전작권 환수와 관련해서는 보수그룹이 집단행동으로 대응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이번 회담에 대해 “전작권 환수 논의를 하지 말 것을 주문했지만 노 대통령은 국민적 기대와 열망을 저버렸다”고 말했다. 향후 한나라당은 전시 작통권 문제와 관련해 국회 본회의 긴급현안 질의와 국방위 청문회 개최, 500만명 서명운동 동참 그리고 2차 방미단 파견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한미 FTA에 대한 우려에도 ‘협상을 가속화하겠다’는 양국 정상 합의는 국내·외적인 반발과 비판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제 귀국한 노 대통령은 이러한 공세에 대응전략을 고심해야할 처지에 놓여있다. 몇 가지 방책은 분명히 있다.
한나라당 및 보수단체의 전작권 환수 공세에 맞서 정부는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가의 한 전문가는 “정상회담을 통해 얻은 ‘환수시 미국의 주한미군 지속주둔?유사시 증원’ 약속 등에 대해 대국민적 홍보를 병행해야한다. 한반도 안보의 연장선상에서 북핵사태의 대한 실질적 ‘포괄적 접근방안’의 내용을 구체화해야 한다. ‘국방개혁 2020’에 대한 확고한 진행과 ‘07-11중기계획’에 대한 효과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도 동반해야 함은 필수사항”이라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정치권 및 사회의 논란의 핵으로 급부상 중인 한미FTA협상에 대해, 의원회관 곳곳에서는 추진과정에 전반적인 대수술을 단행해야 한다는 소리가 쏠쏠히 나오고 있다.
여당 한 관계자는 “회담에서 분명히 시간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라며 “조속히 국회차원에서 ‘통상절차법’을 상정?처리하고, 올 연말이나 내년 3월 등의 조속한 목표점을 세우지 말고,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미FTA의 체결은 10여 년 후의 경제 전반을 결정할 중대한 사안이므로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 및 이해단체들과의 긴밀한 사전 조율 등의 활성화된 논의를 거친 후 투명한 협상과정을 만들어가며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정부에 쓴소리를 했다.
여당 내부 잡음 해결도 관건
지난해 11월 경주에서 가진 정상회담 이후 만 10개월만에 열린 한미정상회담 후폭풍의 여파에 정가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