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비박 상호 ‘탈당 요구’…당권 투쟁 격화

비박계는 탄핵 가결을 전환점으로 친박계를 당에서 몰아내기 위한 압박수위를 연일 높여가고 있고 더 이상 물러날 곳 없어진 친박계는 이에 맞서 현 지도부를 중심으로 주요 비박계 의원에 대한 출당 조치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양측 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면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더욱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인데, 향후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벌써부터 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권여당의 향방에 집중되고 있다.
◆ 비박 ‘친박 8적’ 지목, 탈당 압박 강화
탄핵안 가결을 계기로 당내 입지 확대에 나선 비박계는 지난 11일 비상시국회의가 이후 친박 지도부를 겨냥해 명확한 퇴진 시점을 내놓으라며 한껏 몰아붙인 데 이어 12일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친박 8적’이란 명단까지 발표해 이들이 당을 나가도록 자진 탈당 압박을 가했다.
실제로 비박계 모임 비상시국회의 대변인 황영철 의원은 12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가진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당 지도부, 친박 지도부의 이정현 대표, 조원진 이장우 최고위원, 친박 주동세력인 서청원, 최경환, 홍문종, 윤상현 의원, 또 국민의 준엄한 촛불민심을 우롱한 김진태 이상 8명은 즉각 당에서 떠나주길 바란다”고 자진 탈당을 요구했다.
다만 황 의원은 당 지도부 인사들 중 정진석 원내대표에 대해선 “정 원내대표는 지금까지 당에서 균형추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보고 친박 지도부와는 구분해야 한다”며 예외로 두는 모습을 보였다.
한 발 더 나아가 황 의원은 정 원내대표가 앞으로 사실상 당 대표직을 수행하게 될 가능성을 내비쳐 정 원내대표를 고리로 현재의 당 지도부에 균열을 일으켰는데 “정 원내대표에 대해선 우리가 그 역할을 더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줘야 한다”며 “지금으로서는 정 원내대표가 당 대표가 하는 여러 가지 역할을 계속 해주길 바란다”고 정 원내대표 쪽에 크게 힘을 실어줬다.
이런 흐름에 부담을 느꼈는지 당사자인 정 원내대표는 12일 이전에 암시한 대로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하겠다고 전격 발표했지만 그렇다고 이미 칼을 뽑아든 비박계로선 친박 지도부 압박을 어떤 형태로든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증명하듯 비박계 황 의원은 궁지에 몰린 친박계가 지난 11일 대규모 회동을 갖고 비박계와 맞서기 위해 ‘혁신과 통합연합’을 출범시키기로 한 데 대해서도 “보수의 재건을 반대하는 수구세력들이 모여 정치 생명을 연장하게 하는 방편으로 당을 사당화하려는 술책”이라며 “새누리당이 국민과 함께 보수의 재건을 이뤄낼 수 있도록 즉각 사퇴하길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한층 몰아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비단 황 의원 뿐 아니라 ‘혁신과 통합 연합’ 모임에 대해선 비박계 대권잠룡인 유승민 의원도 한껏 날을 세웠는데, 12일 오전 비상시국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그는 “(친박계) 그분들이 어제 모인 것은 국민에 대한 저항”이라며 “민심을 거스르고 당 입장에선 상당히 자해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친박계에서 자신을 겨냥한 공세를 펴고 있는 데 대해서도 “저는 당에 그대로 남아 당 개혁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어떤 압력이든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 벼랑 끝 친박, 배수진 치고 반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박계는 탄핵 가결로 불리해진 상황에서 비박계가 탈당 압박까지 하고 있는 데 대해 크게 반발해 그대로 당하고 있지만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는데, 지난 11일 51명의 친박계 의원들은 ‘혁신과 통합 연합’을 오는 13일 출범시키기로 결의한 것은 물론 “보수의 분열을 초래하고 당의 분파 행위에 앞장서며 해당행위를 한 김무성, 유승민 두 의원과는 당을 함께 할 수 없다”고 비박계에 역공을 펼쳤다.
친박계 민경욱 새누리당 대변인은 11일 회동 직후 이같이 전하며 “‘혁신과 통합 연합’의 공동대표는 정갑윤 전 국회 부의장과 이인제 전 최고위원, 김관용 경북 도지사로 정했다”고 자신들이 구상한 새 진용까지 소개했다.
이는 탄핵 가결 이후로 당 주도권을 쥐려는 비박계 지도부인 비상시국회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피력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비박계에 밀리지 않고 끝까지 주도권 경쟁을 벌이겠다는 듯 “‘혁신과 통합 연합’은 대선을 앞둔 시점에 앞으로 비대위원회 구성 등 당과 제 보수 세력을 추스르기 위한 로드맵을 만들어나가는 등 책임 있는 보수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탄핵 사태로 항로를 잃은 보수의 대통합을 위한 제 세력의 적극적 동참을 촉구한다”고 적극 세 불리기에 나섰다.

이에 그치지 않고 친박계는 그 중에서도 비박계 핵심 인사인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겨냥해 원색적으로 비난을 퍼부었는데, 이장우 최고위원은 12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피해자인 척 코스프레 하는 배신과 배반의 아이콘인 김 전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는 한마디로 적반하장에 후안무치”라며 “국민은 김무성, 유승민의 검은 속내를 다 알고 있다. 현 정부의 탄생의 1등 공신이자 배반과 역린의 주인공”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특히 이 최고위원은 김 전 대표에 대해선 지난 2012년 ‘박근혜 극찬 발언’을 비롯한 그간의 친박 전력을 꼬집었고, 유 의원에 대해서도 지난 2007년 ‘최태민 방탄 발언’ 등을 포함한 이전의 친박 경력을 언급하며 ‘배신 이미지’ 굳히기에 열을 올렸다.
이 뿐 아니라 이들은 비박계에서 전날 현 지도부와 친박계 핵심 인사들에게 “최순실의 남자들은 당을 떠나라”라고 탈당을 촉구한 데 대해서도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라며 “당을 편 가르기 하고 분열시키고 당을 파괴한 주동자가 있는 비상시국위원회가 지도부를 보고 즉각 퇴진하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단번에 일축했다.
오히려 이 최고위원은 최고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 김 전 대표와 유 의원이 탈당하지 않는다면 당에서 출당시키는 수밖에 없다며 출당 조치까지 검토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이 같은 이 최고위원의 발언대로 친박일색인 현 지도부가 사퇴할 가능성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비쳐지는데, 이를 확인해주듯 12일 기자간담회를 연 이정현 대표도 당초 1월 조기 전대 개최를 감안해 오는 21일까지 지도부가 사퇴한다고 했던 약속은 “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따라 조원진, 이장우, 최연혜 등 친박계 최고위원들은 오는 21일 이후에도 여전히 지도부에 잔류할 것으로 보이는데, 비박계에 순순히 당권을 넘기지 않겠다는 의미여서 당 내홍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 野 “친박 상대 안 해”…與 탈당파 “친·비박 모두 반성 못해”
이렇듯 친박과 비박 간 일대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새누리당의 내분을 지켜보는 당외 세력들은 각자의 계산에 따라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일단 박 대통령에 대한 압박 기조를 이어가려는 야권에선 친박계에 각을 세우는 모양새인데,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일부에선 이정현과 정진석 동반사퇴 이후 친박 성향 원내대표를 세우겠단 계획을 짠 것으로 알려졌다”며 “만약 친박 원내대표가 들어서면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겠다”고 친박계를 대화상대로 인정치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우 원내대표는 즉각 사퇴하지 않고 있는 이 대표를 향해서도 “새누리당의 최고당원(박 대통령)이 탄핵됐는데 그 당 대표가 장을 지키기는커녕 물러나지도 않는 모습이 의아하다”며 “기득권과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계산에만 몰두하고 있는 친박 정치권이 만약 이런 식으로 나오면 국민심판이 친박 정치세력에게 향할 것이라 경고한다”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역시 12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상대로 해서 무엇을 논의하고 대화하지 않겠다”며 “이는 김동철 비대위원장이나 저나 같다”고 못 박아 친박 지도부와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렇게 야권이 친박 고립 전략을 펴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에서 탈당했던 김용태 무소속 의원이나 남경필 경기지사 등 탈당파는 탄핵 이후에도 새누리당으로의 복당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심지어 탈당 전까지 자신들이 속했던 비박계를 겨냥해서도 “비상시국회의 몇 사람이 ‘재창당’ 수준이란 말을 하는데 어림없는 얘기”라고 비판해 새누리당이 아닌 자신들이 창당할 신당을 보수세력의 새 대안정당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이처럼 새누리당의 내분이 점점 격화됨에 따라 이 일전의 결과가 정국에 어떤 파장을 미칠 것인지 벌써부터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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