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들은 지방 의회 의원으로서 응당 자신이 해야 하는 예산 심의란 본연의 업무를 도리어 무기 삼아 자신의 지역구 사업을 위한 쪽지예산을 수용토록 시청이나 구청 등의 집행부에 압력을 넣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직권남용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이 같은 행위의 원인이 되고 있는 소위 이 ‘쪽지예산’이 집행부의 예산처럼 최소한 내부적으로 적정성 검토나 조정 과정을 조금이라도 거쳤다면 그나마 용인될 여지라도 있겠지만 실상 대부분의 쪽지예산은 개략적인 구상 몇 줄이 담긴 게 전부인 글자 그대로 ‘쪽지’ 수준의 허술한 계획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애당초 이들 지자체 의원들이 제출한 쪽지예산을 필요로 하는 사업 대부분이 지역주민들로부터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거나 사업효과분석 등의 정상적인 검증 절차를 거쳐 나온 게 아니라 의원 개인 의견 혹은 표에 영향을 주는 일부 이익단체들의 의사만 반영된 채 졸속 추진되다보니 부실한 계획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하다.
문제는 이처럼 타당성 검토조차 거치지 않은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의원들이 요구한 쪽지예산에 대해 광역단체의 각 실과가 기초단체에 추진 의사를 타진하게 되면 기초단체 담당자들은 비록 금시초문일지라도 의원들을 의식해 이를 과감히 끊어내지 못하고 불과 한 두 시간 만에 몇십억, 몇백억 원에 이르는 사업까지 수용하는 방향으로 결정해서 졸속이나마 사업계획서까지 제출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초자치단체가 광역의회 의원의 기대에 부응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한다고 해도 이것이 광역자치단체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일단 초기 단계부터 제대로 검토조차 거치지 않은 요구들을 받아주는 모양새를 취하다 보니 의원들은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채 상임위에서 삭감한 집행부 예산을 회생시켜주겠다는 것을 조건으로 예결위에서 광역자치단체와 정치적 거래까지 하려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 광역의회 의원은 아무리 형식뿐일지언정 이렇게 기초자치단체를 거치는 과정이라도 있어 그럭저럭 사업계획서를 갖춘 형태로 쪽지예산을 요청하고 있는데 반해 그 어떤 것도 없는 기초의회 의원의 경우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그 수준이 처참하다.
대체로 기초의회 의원의 경우 지역주민의 의사가 반영된 선출이라기 보다는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공천 여부가 크게 작용된 인물이 당선되다보니 개중엔 예산에 대한 기초지식조차 전무한 수준미달의 인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초의회의 경우엔 ‘이의 있습니까’-‘없습니다’-‘그러면 원안대로 통과하겠습니다’라는 식으로 제대로 검증도 않고 예산을 심의하는 경우가 많아 필히 예·결산 심사 등을 포함한 직무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겨우 이런 수준의 기초의원들이 한 술 더 떠서 자신이 내세웠던 선심성 공약 등을 이행하겠다고 이른바 ‘쪽지예산’까지 요구하고 있어 문제는 더욱 커지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혹자는 자치단체의 예산은 눈 먼 돈,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라는 우스갯소리까지 할 정도다.
또 기초단체든 광역단체든 예외 없이 지방의회 의원들의 요구에 단호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도 이 같은 예산 낭비 행태를 한층 심화시키고 있는 원인으로 꼽히는데, 특히 광역단체의 경우엔 삭감된 예산을 조금이라도 살려내고자 불수용 결정을 내린 광역의회 의원들의 쪽지예산을 일부 받아주는 형태로 타협하다보니 이제는 이런 거래가 아예 관행처럼 굳어져 버렸다.
무엇보다 이 타협 과정마저 해당 사업의 필요성이나 사업효과, 자치구 간 형평성 등에 대해선 일말의 고려조차 되지 않은 채 오로지 의원의 정치적 위치나 역량에 따라 좌우되다 보니 영향력 있는 다선 의원의 경우 이를 부조리로 인식치 못하고 도리어 일종의 능력이나 특혜 정도로 여기고 있어 이 폐단을 하루아침에 뿌리 뽑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예산이 행정관리 비용이나 중앙정부의 정책에 따른 복지비용으로 지출될 뿐 정작 꼭 필요한 지역개발비 등에는 실질적으로 지출되는 규모가 극히 미미한 상황인데, 이런 쪽지예산으로까지 국민혈세가 줄줄 새어나간다면 향후 구멍 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는 악순환만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라도 이 적폐를 해결하려면 지자체와 지자체 의원 간 정치적 거래가 이뤄질 수 없도록 어떤 예산이든 지역주민에 필요한지 사업효과가 있는지 등을 우선요소로 검토할 외부 감사기구를 지자체가 아닌 국가 산하로 별도 설치해 쪽지예산이 파고들 여지를 사전 차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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