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의 '민망함'의 차이, '유쾌함'과 '졸렬함'의 차이
'어린 소녀'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들은 대개 그 '셀링-포인트'가 분명하다. '소녀적 감수성'이 보여주는 풋풋함과 어리숙함, 그리고 그 사랑의 형성과정이 소녀들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과장된 발상'과 '오해', 그리고 '서툰 방법론'에 기인한 것이기에 얻어질 수 있는 사랑스러움이 바로 그것. 그러나 이런 '셀링-포인트'를 '신봉'하고 있는 듯 보이는 김호준 감독의 "어린 신부"는 이렇듯 유치하고 감상적인 소녀적 감수성에 대해 거리감을 확보하지 못하고 되려 자가중독 현상을 일으켜버린 기괴한 영화이다.
너무나도 많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는 영화이기에 일괄적인 분석마저도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먼저 언급한 '시각'의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지금껏 이 정도로 어이없고 조잡스러우며 무책임하고 단세포적인 시각은 구경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어린 신부"는 최악의 수순을 착실히 밟고 있다. 영화는 17세 소녀가 남자 대학생과 결혼에 이르게 된다는 전제를 마치 1960년대 가족코미디처럼 억지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설득력을 전혀 확보할 수 없는 이런 우악스런 기본 설정도 이어질 흥미롭고 유쾌한 상황을 위한 '필요악'적 요소였다면 그나마 '인정'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신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악화되고 만다. 너저분한 비약으로 연출되는 플롯의 구성점 - 남자주인공은 아버지가 자동차를 야구배트로 부수자 결혼을 결심한다 - 과 조잡스럽기 이를 데 없는 갈등구도의 묘사, 싸구려 웃음을 선사하는 '개그용 조역'의 다발사용에 이르기까지,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픈 전개과정이 영화의 곳곳에서 작열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는 '만인이 참석한 무대'와 '마이크를 들고 펼치는 고백', '관중들의 탄성'이 범벅된, 민망하다 못해 넋이 빠질 정도로 극악스런 엔딩을 들이민다.
분명히 '귀여울 수 있는' 소재를 어째서 민망한 선을 넘기면서까지 싸구려 감수성의 극단으로 치달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소녀들에게 '나만을 생각하는 왕자님'을 선사해주고, 그들의 어설픈 감수성을 액면 그대로 투영시켜 '정서적/이성적 동일화'를 이루려 한 의도였다면, 전설적인 제작자 대릴 F. 재넉이 남긴 명언, 즉 "창작자는 언제나 타겟 관객층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지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멘트를 이에 대한 '대립항'이자 '잠언'으로서 언급해야만 할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화의 구조적인 문제는 이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어린 신부"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영화의 소재가 될 법한' 이야기를 하나의 중심 내러티브 안으로 억지스레 우겨넣고 있다. '여고생과 대학생의 결혼'과 '여고생의 학교에 교생으로 온 남편'의 이야기, 그리고 '남편 몰래 바람피우는 여고생' 이야기가 바로 그것. 이 세 가지 이야기의 설정을 동시에 완료시켜 전개부부터는 이 세 가지 이야기가 얼기설기 엮어지는 구조로 이루어졌더라면 큰 문제가 될 리 없겠지만, 문제는 하나의 이야기가 더 이상의 전개상 아이디어를 찾지 못하고 소멸되는 시점에 또다른 이야기를 이어붙여 버리고, 또다시 이어붙여 버리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하나의 큰 중심 소재에 여러 갈래로 뻗어있는 가지 플롯이라기보다, 차라리 긴 '미니시리즈' 분량의 내러티브를 간략하게 압축시킨 버전 - 마치 일본 TV용 애니메이션들이 자주 그러듯 말이다 - 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나마 잘 '붙지 않은' 이야기구조임에도 군데군데 산발적으로 등장하는 '신혼생활'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간헐적으로만 기능할 뿐 영화의 전체 구조를 흐트러뜨리는 효과를 낳고 있으며, 결국 영화는 상영시간 시간을 '지나치게 체감시키는' 최악의 구성편집 구조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신부"는, 적어도 이 기획 자체가 '통과'될 수 있었던 유일한 포인트, 즉 관객들에게 직격으로 먹힐 법한 '타입-캐스팅'의 위력 면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완벽하게 '귀엽고 깜찍한 무드'를 조성시켜 버리는 문근영의 마네킹적 역할 배정과 "옥탑방 고양이"의 기본 캐릭터 구성을 몇 번씩이나 반복사용함에도 여전히 유들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김래원의 개그감각은 분명 진부하고 얄팍한 상술에 의해 기획된 것임에도 이런 싸구려 의도를 일정부분 상쇄시킬 수 있을 법한 절묘한 화학작용을 발산하여, '영화의 유일한 볼거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어린 신부"는 끔찍스런 영화이다.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해 버리고 싶을 만큼 끔찍스럽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에서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 말하기는 힘든 일인데, 그것이 바로 스타-시스템의 위력이고, 엔터테인먼트 영화 구조가 지니고 있는 '열렬한 대중적 호흡에의 일치 욕구'일 것이다. '그 어떤 소재이든 재미없는 영화를 만든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는 소설가 마리오 푸조의 멘트가 퍼뜩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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