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비박 탈당 선언’, 정치지형 변화 일으킬까
‘與 비박 탈당 선언’, 정치지형 변화 일으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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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당 첫 분당 현실화…반기문 영입 여부가 ‘최대 변수’
▲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비주류 의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탈당을 선언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비대위원장직을 놓고 친박계와 신경전을 벌여오던 비박계 의원들이 21일 결국 새누리당을 탈당해 새 길을 모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비박계 의원들은 오는 27일 최소 30여명 규모의 집단 탈당이 결행될 것이라 예고했는데, 헌정사상 처음으로 보수정당이 분당 사태를 맞게 됐다는 정치사적 의미도 있지만 일단 이들이 교섭단체 자격을 갖춘 신당 창당 쪽에 무게를 실고 있어 지난 1990년 이후 26년 만에 ‘4당 체제’가 재현될 수 있게 됐다는 점에 보다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4당체제’란 다자구도로 정계개편이 이뤄질 경우 국민의당이 일종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왔던 현재의 3당 구도보다 한층 더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전개될 소지가 다분한데 여기에 차기 유력대선주자로 꼽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까지 내달 귀국하게 되면 대선판도에서도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비박, ‘與 연쇄 탈당’·‘潘 영입’ 여부에 성패 갈릴 듯

 
이미 20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일찌감치 내홍을 빚어왔던 새누리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란 미증유의 정치 스캔들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까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격화된 내분을 끝내 봉합하지 못하고 이날 비박계가 갈라서는 형태로 분당 수순을 밟게 됐다.
 
당초 비박계에선 탈당파와 잔류파로 의견이 나뉘어 있었지만 앞서 지난 16일 원내대표 경선에서 정우택 의원이 당선돼 원내지도부를 친박계가 장악한 데 이어 당 주도권을 잡을 마지막 기회인 비대위원장직마저 ‘인적 청산 불가’ 등 친박계에서 여러 전제조건을 내걸자 그간 당 잔류를 주장해온 일부 비박계 의원들까지 결국 탈당으로 입장을 급선회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비박계가 그간 탈당을 주저해온 된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보수의 대표성’을 놓고 벌써부터 친박계와 비박계 간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는데, 비박계는 먼저 21일 황영철 의원이 낭독한 분당 결의문을 통해 “가짜 보수와 결별하고 진정한 보수정치의 중심을 세우고자 새로운 길로 가겠다”며 친박계가 장악한 현재의 새누리당을 가짜 보수로 규정했다.
 
반면 친박계 정우택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박계 핵심인사인 유승민 의원을 정조준해 “보수는 인륜을 강조하는데 유 의원은 탄핵 등의 과정에서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했다는 말이 있다”며 “포장된 가짜보수란 이미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양 계파는 이번 탈당 결의를 칭하는 데 있어서도 그 표현이 상이했는데, 일찍이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은 지난 20일 오후 국회에서 “분당은 분당이냐, 탈당해서 당을 만들면 되는 것”이라고 ‘분당’이 아닌 ‘탈당’임을 강조한 데 반해 비박계는 21일 발표문에서 “탈당이란 표현보다 분당이 맞는 것 같다”며 새누리당에서 밀려나가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명분을 갖고 보수 적통을 계승하려는 의도에서 결단을 내렸다는 인상을 주려고 했다.
 
이는 보수정당이란 성격만큼이나 그 지지층 역시 지지 정당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보수적 특성이 있어 누가 ‘정통성’을 갖고 있느냐는 점을 확실히 유권자들에게 인지시키는 데에 보수정당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보기 때문인데, 이런 유권자 성향을 보여주듯 이날 확실히 탈당 의사를 밝힌 의원들 중 보수적 색채가 강한 지역구 의원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당초 알려진 35명의 탈당 의원들 중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이 지역구인 강석호 의원은 비박계 중진으로 분류되는 인물임에도 친박 지지세가 높은 지역민심을 의식했는지 탈당하지 않겠다고 확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나머지 34명에서도 친박 지지층이 상당한 TK(대구·경북) 지역구 출신 의원은 고작 2명에 불과한 반면 민심이 유동적인 수도권 출신은 무려 17명(서울 9, 경기 8)으로 절반에나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점에 비쳐 비박계가 20명 이상을 요건으로 하는 원내교섭단체 자격을 아무리 갖춘다 해도 보수적통을 이을 수 있다는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내년 대선국면에 돌입한 뒤엔 야당의 집권을 저지하려는 보수 유권자의 전략적 투표로 인해 자칫 94명으로 여전히 다수를 점할 친박계의 새누리당에 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적어도 친박계보다는 다수를 이뤄 원내에서 비박계가 보수정당을 대표한다는 것을 증명하든지, 아니면 보수가 재집권할 수 있다는 수권능력을 유권자에 확실히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전자를 위해선 현재의 탈당 기류를 최대한 새누리당 내에 확산시켜 ‘연쇄 탈당’을 일으킬 필요가 있고, 후자를 이뤄내기 위해선 어떻게든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를 영입해야만 한다.
 
그런 연유로 일단 비박계 황영철 의원은 이날 탈당 선언에서 즉각적인 탈당이 아니라 오는 27일 탈당하겠다고 미뤄뒀는데, 이 때로 날짜를 잡은 이유에 대해 그는 “더 많은 의원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의미고, 또 하나는 의원들이 지역으로 내려가서 당원과 지역주민에게 뜻을 전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직접 설명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여 세를 불리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려는 듯 김무성 전 대표의 최측근인 김성태 의원도 ‘남경필 지사, 김용태 의원 등 기존 탈당 의원들과 합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용태 의원이 함께 하자는 뜻을 전해왔다”며 논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 내달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행보에 따라 대선판도 역시 요동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엔본부

아울러 차기 대선을 1년 남짓 남긴 상황에서 ‘세 불리기’보다 신당의 성패에 한층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권능력을 증명하는 부분에 있어선 그동안 여권의 유력 대선후보로 꼽혀온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영입하느냐 여부가 최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본래 친박계에서 내세우려던 후보를 영입하려 한다는 지적을 우려한 듯 비박계는 반 총장과 함께 할 수 있다면서도 무조건적인 옹립은 없으며 당내 경선을 거쳐야 한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그럼에도 반 총장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 특파원단과 가진 마지막 기자회견을 통해 “제 경험이 필요하면 몸 사리지 않고 할 용의가 있다”며 사실상 대선출마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만큼 내년 귀국을 앞둔 그가 어디를 통해 출마할지에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인데, “정당이 뭐가 중요하겠는가”라면서도 “정치라는 것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점에 비쳐 이전처럼 새누리당으로 출마하기보다는 제3지대나 비박 신당으로 향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이런 변화된 분위기를 반증하듯 친박계 정우택 원내대표는 반 총장과 같은 충청권 출신임에도 21일 오전 YTN라디오에 출연해 “반 총장이 다음에 대통령이 된다거나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유일한 후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평가절하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반해 여당 내 또 다른 충청권 의원으로 아직 자신의 거취를 고민 중인 정진석 전 원내대표는 같은 날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우택 원내대표의 견해와 달리 “반 총장이 유일한 대안”이라며 “반 총장 귀국 후 행보에 따라 나도 진로를 고민할 것”이라고 밝혀 반 총장이 단순히 유력 대선주자란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친박계의 새누리당에서 추가 탈당까지 일으킬 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 野, 비박 신당 출현 가능성에 반응 엇갈려

 
한편 만일의 경우 반 총장이 비박 신당으로 합류하고 이로 인해 새누리당에서 연쇄 탈당까지 일어난다면 현재 38석으로 제3당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국민의당은 원내 입지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데, 지지율 난조 속에 ‘홍보비 리베이트’ 논란과 관련해 최근 박선숙, 김수민 등 소속의원 두 명까지 실형을 구형받은 위태로운 상황이어서 그런지 김동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이날 비박 신당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반 총장에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당 대선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의 지지율이 현재의 당 지지율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지 못하면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따라잡는 것은 고사하고 민주당의 이재명 성남시장에도 추월당하는 등 국면전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 이를 돌파하기 위해 비박 신당보다 더 절박하게 반 총장을 필요로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서도 국민의당은 비박 신당의 출현을 마냥 경계하기보다 현재 문 전 대표가 선두를 굳힌 야권 대선구도에 어떻게든 변수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우선 “대단히 잘 된 일”이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는데, 김동철 비대위원장은 21일 “새누리당에서 시작된 계파패권주의 청산이 다른 당으로도 확산됐으면 좋겠다”며 비박계의 탈당 사건을 통해 민주당의 친문패권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이 같은 변수의 출현에 문 전 대표는 같은 날 기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새누리당의 분당이나 정계개편 등에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며 짐짓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 반 총장의 귀국일자가 점차 다가오면서 북한 방문 선언 등을 비롯해 고정 지지층을 의식한 발언을 이어가고 하루 전엔 조기 대선 때를 대비한 섀도 캐비닛(예비내각)까지 거론했던 점에 비쳐본다면 사실 초조한 심경을 감추기 위한 가장된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렇다 해도 일단 표면상이나마 문 전 대표는 비박 신당이 창당한다 해도 그다지 의식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모든 키를 쥔 반 총장이 비박 신당으로 향해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경우 현재의 대선구도를 비롯한 정치판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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