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칼바람에 근로자만 눈물 생채기만 남겨

성장률을 끌어올릴 마땅한 호재도 없어 내수침체는 장기화되고 수년간 한국 경제를 떠받친 주력산업 부진이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올해 산업계는 조선업의 대규모 구조조정과 해운업계 1,2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좌초하면서 동반 몰락을 가져왔다.
조선업을 기반으로 한 지역 경제는 조선사의 대규모 인력구조조정으로 침체 길을 걸으면서 지역경제가 더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해운업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엇갈린 지원 행태에 업계 1위인 한진해운이 청산절차를 밟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맞이했다. 올 한해 산업계에서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은 조선업과 해운업의 동반 몰락과 해체를 겪은 과정을 들여다본다.
◆수주절벽에 구조조정…지역경제 타격
올 한해 조선업은 한파를 겪었다. 해양플랜트에 집중한 게 화근으로 수주절벽에 따른 해양플랜트 수주물량이 급감하면서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수조원대 부실을 안겨주었다. 이에 따라 조선 3사는 자산매각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10조원 규모의 자구계획안을 확정했다.
우선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이사회를 열고 핵심축인 조선·해양·엔진 사업부문을 제외한 비(非)조선부문 사업인 전기전자·건설장비·그린에너지·로봇·서비스 등 5개 부문으로 분리하는 분사를 통해 독립경영 체제로 나선 상황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 12일 현대중공업은 선박 관련 통합 AS를 전담할 ‘현대글로벌서비스’를 부산에 출범시키고, 그린에너지는 충북 음성으로, 현대로보틱스는 대구로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내년 상반기에 현대중공업을 6개사로 분사하고 3곳은 타 지역으로 이전한다. 사측의 이같은 분사는 현대중공업 노조의 극심한 반대를 불러오고 있다. 당시 노조는 사측이 분사를 발표한 이후 “분사를 통한 구조조정을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측은 분사를 통해 현대중공업 부채비율을 낮추고 재무구조도 개선된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과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냈지만 올해 혹독한 구조조정의 성과로 2012년 이후 4년만에 영업이익 1조원 클럽에 가입한다. 현대중공업은 2000여명의 희망퇴직으로 인건비와 자재비를 줄여 조선3사 중 유일하게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수주절벽으로 도크가 폐쇄되면서 근로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분사까지 겹치면서 본사를 둔 울산의 지역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울산뿐만 아니라 군산조선소도 폐쇄 기로에 놓여있다. 현대중공업은 군산조선소 존폐 여부에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군산조선소가 가동을 중단하면 협력업체 임직원을 포함 4천500여명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군산시 관계자에 따르면 군산조선소가 폐쇄되면 근로자들 외에 식구들까지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군산조선소 인근 음식점 및 상가에 직접적 타격으로 소비 절벽으로 이어져 경제 대란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삼성중공업은 총 1조5천억의 자구계획 중 자산 매각과 인력 감축, 경영합리화 등을 통해 6천억원을 이행했다. 1500여명 희망퇴직을 단행하고 과장급 이상 간부들의 임금 반납과 사원아파트 400여채, 화성사업장, 당진공장 등의 자산을 매각했다. 1조 1000억원의 유상 증자를 추진하는 한편 2018년까지 5천명의 인력 감축에 나선다.
조선3사 중 가장 심각한 곳은 대우조선해양으로 올해 상반기 1조1894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 자본잠식상태고, 7000%가 넘는 부채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대우조선은 1500여명 희망퇴직으로 인건비 절감에 나선 한편, 2018년까지 인건비 45%를 낮춘다는 계획이다.
무엇보다 산업은행이 부담하는 1조8000억원은 대우조선이 갖고 있던 빚을 주식으로 전환하고 수출입은행이 대우조선이 발행하는 채권 1조원을 사주는 방식으로 자본확충에 나서면서 경영정상화의 물꼬를 턴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정부는 자산매각, 희망퇴직과 분사 등 인력 구조조정으로 비용절감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천문학적인 자금을 붓고도 회생가능성이 높지 않으면서 밑 빠진 독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난골 드릴쉽 인도 지연 문제와 내년 만기를 맞는 회사채가 9400억원 등이 겹치면서 경영정상화가 쉽지 않다는 관측이 여전하다.
◆정부의 지원 실책에 해운몰락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동반 몰락한 것은 해운업계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몰락의 중심에는 이들 기업의 부실 경영이 한몫했지만 그 이면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이 엇박자를낸 것이 컸다.

자산가치 및 브랜드 파워 면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현대상선에 자금을 지원해준 반면 한진해운엔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청산절차를 밟기까지 자금지원을 중단한 정부의 정책이다. 특히 세계 7위 업황 능력을 갖고 있는 한진해운의 청산은 물류대란으로 이어지면서 관련 산업 등 피해규모만 7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20조원 이상 추산되고 있다. 한진해운의 몰락은 감원 후폭풍에 직면 수백명의 선원이 길거리에 내몰렸다.
해운업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금융권이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해운업 몰락은 예견된 일이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8월 한진해운 자금 지원 중단 결정을 내리면서 한진해운과 자금지원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 협상이 이어졌다. 이미 한진그룹이 수조원에 달하는 지원에도 불구하고 법정관리행 열차를 탔다. 결국 한진해운은 회생하지 못하고 청산 절차를 밟게 됐다. 정부는 물류대란이 지속되는 가운데도 이렇다 할 수습책을 내놓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렀다.
정부가 국적해운사로 키우려고 했던 현대상선이 기존 한진해운이 실어나르던 물량을 유럽 및 중국 선사들이 가져갔다. 문제는 해운동맹 가입이다. 현대상선은 2M과 ‘2M+H Strategic Cooperation’ 얼라이언스 협상을 타결했다고 지난 11일 발표했지만 1단계 협약이라는 점에서 3년간 현대상선의 재무구조와 유동성 개선여부에 따라 재계약을 통해 2M멤버가 될 수 있을지 판가름 난다.
한진해운이 몰락한 상황에서 어찌됐든 현대상선이 국적해운사로 발돋움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 현대상선은 ‘2021년까지 시장점유율 5%, 영업이익률 5% 달성’을 통해 글로벌 선도 해운사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해운업 불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번 협상은 국내 해운사 몰락에서 다시 재도약하는 시간을 번 셈이다. 유창근 대표는 “해운업계의 치킨게임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인 데다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면서 “앞으로 2~3년간 내실을 다지며 질적 성장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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