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법 분주해진 정치권, ‘개헌’인가 ‘개혁’인가
셈법 분주해진 정치권, ‘개헌’인가 ‘개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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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국민의당 ‘개혁입법’ 한 목소리…개헌엔 ‘反文’ 연대 가능성
▲ 새누리당의 분당으로 야권의 원내 장악력이 한층 커지면서 이들 사이에서 차기 대선을 의식해 개헌과 개혁입법 처리 등을 내세워 서로 주도권 장악에 나서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시사포커스 / 김민규 기자] 조기 대선 가능성에 대선주자들의 발걸음이 한층 빨라지는 가운데 또 다시 개헌론이 화두로 오르며 정치권을 달구기 시작했다.
 
대선 전 개헌은 어렵다고 단언할 정도로 개헌에 가장 미온적 태도를 보여 온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다시금 개헌론에 이목이 쏠리는 데 부담스러워 하는 모양새지만 국민의당과 개혁보수신당은 물론 민주당 내 비주류 세력까지 개헌 필요성을 역설하며 친문 세력 견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는 개혁입법을 내세워 화제를 돌리면서도 국민의당과 한 목소리로 개혁보수신당에 개혁입법 처리 협조를 요구하며 개헌론으로 자신에게 향했던 화살을 새누리당에 집중시켜 놓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표와 경쟁 중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개헌론에 힘을 실은 데다 당내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 등 개헌론자들도 문 전 대표에게 개헌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일단 대선을 목전에 두고 내년 초 출범할 36명 규모의 개헌특위에서 어떤 식으로 개헌 논의가 이뤄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대선구도 뒤흔들 ‘개헌’ 화두 재부상
 
내달 귀국을 앞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이종배 경대수, 박덕흠 등 충청권 출신의 친박계 새누리당 의원들의 요청으로 미국 뉴욕에서 약 2시간 회동한 가운데 개헌에 대해 “국민이 원한다면 개헌을 안 할 수 없다”며 개헌에 동의한 것으로 27일 알려져 문 전 대표 측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날 이종배 의원에 따르면 반 총장은 내각제 개헌을 위해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데 대해서도 “임기를 맞춰야 하니 그렇게 해야 하지 않나”라고 선뜻 수용한 데 이어 “대선이 조기에 이뤄진다면 개헌할 시간이 없으니 차기 정부 초기에 개헌이 돼야 한다”고 적극 개헌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야권에서도 같은 날 민주당과 국민의당 내 개헌파 의원 69명이 모여 대권잠룡인 김부겸 민주당 의원의 주최 하에 ‘미완의 촛불 시민혁명, 어떻게 완결할 것인가’ 토론회를 열어 개헌 분위기를 한껏 북돋웠는데, 여기에 참석한 35명의 민주당 의원들은 당내 친문재인계와는 거리가 있는 비주류 출신이다 보니 문 전 대표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강경한 개헌론자로서 그간 문 전 대표를 압박해 온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이날 토론회 축사에서 문 전 대표를 겨냥 “(대선 전엔) 시간이 없으니 안 하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할 수 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3년 임기에서 해결 못하는 대통령은 2년을 더 줘 봐야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는 개헌파의 계속된 압박에 ‘대선 후 개헌’이란 타협안을 내놓으면서도 정작 정확한 개헌 시점이나 대통령 임기 단축에 대해선 답을 내놓지 않고 있는 문 전 대표의 태도에 진정성이 없다고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의 개헌 찬성과 맞물려 당내에서까지 자신에 대한 압박수위가 높아지자 문 전 대표도 같은 날 가진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먼저 반 총장을 겨냥해 “저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이고 그분은 아마 세상이 바뀌지 않길 바라는 사람”이라며 정권교체를 바라는 민심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는 인물로 규정했다.
 
이 뿐 아니라 그는 김 전 비대위 대표에게도 “그분 영입은 아주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끝까지 함께 가면서 다음 대선에도 힘을 모으길 바랐는데 걱정”이라며 “근래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조금 우리 당 입장하고 다른 생각을 말씀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도 문 전 대표는 자신에게 집중된 정치권의 압박이 부담스러웠는지 “결선투표 뿐 아니라 경선 룰에 대해선 그냥 하자는 대로 다하겠다”고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실은 개헌이 아닌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는 수준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해온 국민의당을 회유해 민주당 내 비주류와의 개헌연대를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비주류 출신 대권주자들의 불만도 일부 해소해 개헌파를 결국 분열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당내에서 비주류를 중심으로 한 개헌 분위기를 주도하며 개헌에 소극적인 문재인 전 대표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사진 / 시사포커스DB

그래서인지 김 전 대표도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토론회에서 또 다시 문 전 대표에 역공을 퍼부었는데, 우선 문 전 대표가 자신의 최근 발언이 당 입장과 달라 걱정이라고 지적한 데 대해 “나는 민주당이 패권정당이란 비판을 받을 때 살려달라고 해서 온 사람인데 내가 무슨 특별하게 얘기했다고 걱정한다고 하나”라고 맞받아쳤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개헌을 고리로 정계개편을 주장하는 개헌파에 대해 문 전 대표가 ‘정략적’이라고 평한데 대해서도 “정략적이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며 “개헌을 안 하겠다는 논리가 명확하지 않다”고 오히려 문 전 대표를 몰아세웠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당 역시 ‘결선투표제’를 수용하겠다던 문 전 대표의 회유에도 아랑곳 않고 28일 박지원 원내대표가 같은 날 중진의원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임기단축 등 개헌을 위해선 뭐든 열린 자세로 임하는 게 필요하지 자기 생각만 고집하면 개헌은 되지 않는다”며 문 전 대표에 날선 비판을 가했다.
 
반면 박 원내대표는 개헌 찬성 의사를 보인 반 총장을 향해선 “개헌에 긍정적 입장을 밝힌 것을 환영한다”며 문 전 대표에게 보인 것과는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한 발 더 나아가 박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을 탈당해 새로이 출범한 개혁보수신당에도 야권의 개헌 연대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데, “다양한 정책연대를 통해 진정한 정치의 묘를 발휘할 것을 기대한다”며 “먼저 개헌에 대한 타협부터 시작되길 소망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민주당-국민의당, ‘개혁입법 처리’엔 오월동주
 
다만 국민의당은 적어도 개혁입법에 대해선 민주당과 한 목소리를 냈는데, 비박계의 탈당으로 새누리당이 심지어 개헌 저지선인 100석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면서 이젠 야권끼리만 협력하면 어떤 안건이든 여당 동의가 없더라도 처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의 반대로 처리하지 못한 이른바 ‘개혁입법안’도 야권이 뭉치면 17개 상임위 중 16곳에서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해 통과시킬 길이 열려 민주당에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일명 공수처 설치법), 언론장악방지 패키지법(방송법 개정안), 세월호 등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특별법, 경제민주화 관련 상법 개정안 등을, 국민의당에선 비선실세 부정축재 환수4법, 공정거래법, 전관예우 방지법(변호사법 개정안) 등을 내놓으며 개혁입법 처리를 목표로 적극 연대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야권은 비박계의 개혁보수신당에게도 새누리당과 이제 선을 그었다는 증표로 이들 법안의 통과에 협조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인데,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2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개혁보수신당을 겨냥 “안보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 보수표를 위한 이분법적 셈법은 안 된다”면서 “2월 임시국회에서 개혁입법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하게 압박했다.
 
아울러 국민의당에선 유일한 호남 출신 대선후보인 천정배 전 공동대표가 같은 날 개혁보수신당을 향해 “우리 국민의당을 비롯한 야당과 협력, 국회에 제출돼 있는 검찰개혁법안-세월호특별법안 등 여러 개혁 법안에 나섬으로써 개혁보수세력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길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요구가 계속되자 주호영 개혁보수신당 원내대표는 같은 날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공수처 법안이라든지 경제민주화 법안 이런 것들을 저희는 좀 더 점진적으로 개혁적으로 다루겠다”며 일단 긍정적 반응을 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변화된 원내 구도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지 일부 개혁입법안은 시작부터 여당의 격한 반발로 처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일례로 여야가 가장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는 방송법 개정안에는 야3당과 무소속 의원 등 162명이 공동발의 했지만 정작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위원장을 여당이 차지하고 있다 보니 28일 야당 의원들의 지속적인 개회 요구에도 새누리당의 반대로 끝내 열리지 못하면서 파행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개헌과 개혁입법 처리 모두 어느 하나 쉽지 않은 가운데 새로운 4당 체제 속에서 정치권이 어떻게 접점을 찾아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인지 모두의 시선이 국회로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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