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과 17일, ‘SBS 스페셜: 환경 호르몬의 습격’이 방송된 이후, 환경 호르몬에 대한 우려가 커지?있다.
사실 환경 호르몬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이옥신 파동, PVC랩 파동 등으로 여러 차례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1999년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다이옥신 파동은 벨기에의 정권을 교체시킬 정도로 소란스러웠으며, 2005년 PVC랩의 안정성 논란을 한·중·일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뻔했다.
플라스틱은 환경 호르몬의 원흉으로 알려져 있다. 플라스틱 성분 중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에 열을 가하면 비스페놀A라는 환경 호르몬이 배출된다. 비스페놀A는 플라스틱 소재뿐 아니라, 캔음료의 내부 코팅제, 상수도관 내장 코팅제로도 쓰이고 있다. 플라스틱 소재를 피한다고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마찬가지로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소제 프탈레이트는 남성을 여성화시키고 여아를 성조숙증에 걸리게 한다고 한다. ‘SBS 스페셜’에 따르면, 프탈레이트에 노출된 산모의 남아는 성기 길이가 짧았으며, 성조숙증에 걸린 여아들에게서 정상아동의 10배에 가까운 프탈레이트가 검출됐다. 그러나 환경부의 2004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매년 국내에서만 145톤의 프탈레이트가 대기에 배출되고 있다. 플라스틱 제품보다 대기에 의한 프탈레이트 신체 유입이 훨씬 많다는 뜻이다.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거부감은 강화유리 밀폐용기의 인기로도 이어졌다. 삼광유리가 만든 ‘글라스락’은 유통사에 따라 40%~150%의 판매율 증가를 방송 한 주 동안 최소 8억원 이상의 매출고를 올렸다. 하지만 이 제품의 뚜껑은 플라스틱이라 뚜껑을 닫거나 PVC랩으로 감싸서 전자렌지에 넣으면 어차피 마찬가지라는 소비자 반응도 있다.
플라스틱 화학기술의 발달이 환경 호르몬을 대처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화학회사 바스프는 물에 녹지 않고 플라스틱에서 쉽게 분리되지 않는 가소제 헥사몰을 개발했다. 고밀도 폴리에틸렌은 자연상태에서는 환경 호르몬이 플라스틱에서 분리되지 않으며, 음료수 페트병의 소재인 폴리에틸렌 프탈레이트는 인체에 흡수되지 않는다. 가소제를 쓰지 않는 폴리에틸렌이나 폴리프로필렌은 이번 방송에서 다루어진 환경 호르몬을 함유하지 않는 플라스틱 소재들이다.
환경 호르몬에 대한 거부 반응이 과민 반응이라는 주장도 있다. 통계적인 선후관계만이 있을 뿐이지, 명백한 인과관계가 입증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체외에서 유입된 플라스틱 환경 호르몬은 자연 호르몬에 비해 양이 훨씬 적고 신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향력도 수백, 수천 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연 호르몬보다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환경 호르몬은 자연 상태의 플라스틱이 아니라, 농약·대기 등 다른 경로를 통해 인체에 유입된다.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질병을 손쉽게 ‘환경 호르몬’이라는 유령에 돌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위험하건 위험하지 않건, 일단 위험해 보이는 것이 있다면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현대생활에 플라스틱 제품을 배척하기는 어렵고, 내막을 알고 보면 위험한 플라스틱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을 충분히 구별해낼 수 있다. 공포에 사로잡혀 호들갑을 떨지 말고, 가능하면 환경 호르몬이 없는 제품을 쓰고 특별히 예민한 사람이나 어린이는 조심하는 정도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