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다에 떠 있었지만, 해경은 다가오지조차 않았다”
“우리가 바다에 떠 있었지만, 해경은 다가오지조차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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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생존학생 “눈앞에서 배가 가라앉는데 ‘전원구조’ 오보, 절망스러웠다” “친구들과 선생님이 왜 죽은지 이유도 모른 채 천일이 흘렀다”
▲ 지난 7일 열린 광화문 촛불집회에선 세월호 생존학생들이 참사 이후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서서 그리운 친구들을 추모하며, 세월호 진실이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사진은 생존학생들 유가족이 서로 끌어안는 모습. ⓒ노컷뉴스 영상
[시사포커스/고승은 기자] 2014년 4월 16일, 304명이 숨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0일째다. 하지만 세월호는 아직 인양되지 못했고 9명의 미수습자는 여전히 차가운 바닷속에 남아있다. 진상규명은 박근혜 정권의 온갖 방해로 제대로 시작하지조차 못했다.
 
지난 7일 저녁 열린 광화문 촛불집회에선 세월호 생존학생들이 참사 이후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서서 그리운 친구들을 추모하며, 세월호 진실이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같은 호소에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9일 오전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선 단원고 생존학생인 김도연씨(당시 2학년 3반)가 출연해 당시 상황과 현재 심경을 증언했다. 이날은 진행자인 김어준씨가 일주일동안 휴가를 떠나면서 패널인 양지열 변호사가 대신 진행했다.
 
김도연씨는 당시 탈출했던 상황에 대해 “다리를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물과 가까운 갑판 쪽에 머물러 있었다. 제가 있던 갑판 쪽에 물이 차는 것을 목격했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거 같아서 물로 뛰어내렸다”고 증언했다.
 
양지열 변호사는 “주말 촛불집회에서도 생존한 다른 친구들이 나와서 ‘우린 구조된 게 아닌 탈출한 것’이라고 얘길 했다. 같은 맥락인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김 씨는 “네, 실제로 해경의 도움으로 배에서 빠져나온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저만 하더라도 배에서 두발로 뛰어내렸고 바다 한가운데서 해경보트까지 직접 수영해서 갔다. 그런 만큼 친구들 모두가 직접 탈출했다는 표현이 적합하지. (해경이)구조했다는 표현을 사용하기엔 적절치 않다”고 동의했다.
 
그러면서 “해경이 저희를 목격했는데도,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들끼리 서로 손잡고 수영해서 간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에 양 변호사는 “(해경이) 배안에 들어가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바다에 학생들이 떠 있어도 다가오지조차 않았다?”고 물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자 김씨는 “저희가 (해경을) 불렀고, (해경이) 저희를 쳐다보지 않은 것도 아니”라며 “아이들이 두발로 직접 뛰어내렸음에도 다른 해경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든지, 다가와 준다든지 그런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김 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 가장 힘들었던 점에 대해선 “저는 지금 대학생인데 친구들은 사진 속 모습 그대로 고등학생이라 굉장히 힘들었다. 또 ‘뭐 먹자. 어디 가자’ 이런 약속을 많이 헀었는데 한 개도 지키지 못했으니까 생활패턴도 많이 달라졌다. 또 새로 만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내 친구를 어디서부터 소개해야할지 겁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일 잠들 때 친구들 모습을 떠올리며 잠이 든다고도 언급했다.
 
그는 1000일을 떠올리면서 “굉장히 큰 시간이라 느껴지는데, 천일이 이렇게 허무하고 빨리 지나갈 수 있구나. 저는 아직 제가 왜 죽을 뻔했는지, 내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모른 채 천일이 너무 빨리 흘러버렸다”고 말했다.
▲ 세월호 생존학생인 김도연씨는 “천일이 이렇게 허무하고 빨리 지나갈 수 있구나. 저는 아직 제가 왜 죽을 뻔했는지, 내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모른 채 천일이 너무 빨리 흘러버렸다”고 심경을 밝혔다. 사진은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상징물. 사진/고승은 기자
김 씨는 세월호 관련 언론보도에 대해선 “어선으로 옮겨타고 나서 실시간으로 배가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네이버와 언론 기사에선 ‘전원구조’라고 뜨더라. 제 주변에는 20명 정도밖에 없었다”라며 “눈앞에서 배가 가라앉고 있었는데 ‘전원구조’라고 나오니 절망스러웠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또 저희가 겪은 사고들에 대해 가볍게 포장하는 듯한 보도 역시 많았다. 그런 보도들은 당시 언론인을 꿈꾸는 저에겐 굉장히 절망스러운 부분이었다”고 개탄했다.
 
그는 최근 사회 분위기에 대해선 “제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사고를 기억해주고 있구나라는 감사함이 들었다”라며 “정말 이제 무언가 함께 할 수 있는 듯한, 다른 분들과 친구들의 죽음에 대해 함께 진상규명할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된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일동안 저희 응원해 주시고 함께 행동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하지만, 세월호는 아직 미수습자들이 남아있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채 죽어간 사건이 2014년 4월 16일날 일어났다는 것을 잊지 않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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