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억 들인 ‘밀실’ 국정교과서에 쏟아진 ‘빨간펜’
44억 들인 ‘밀실’ 국정교과서에 쏟아진 ‘빨간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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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연대회의 “최종본에도 653건 오류, 교육부는 빨리 포기하라”
▲ 논란의 대상인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이 지난달 31일 공개됐지만, 공개된 지 사흘만에 오류가 653건이나 지적됐다. 사진은 이영 교육부 차관이 지난달 3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룸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을 발표하는 모습. ⓒ뉴시스
[시사포커스/고승은 기자] 논란의 대상인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이 지난달 31일 공개됐지만, 기존 현장검토본과 바뀐 내용은 극히 소수였다. 또한 가장 큰 논란거리였던 ‘1948년 8월 15일=대한민국 수립’ 표현이 그대로 쓰였고, ‘박정희 미화’ 부분도 거의 그대로 수록됐다.
 
또한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 12명의 명단도 뒤늦게 공개됐으나. 역시나 대다수가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이었다.
 
게다가 최종본이 공개된지 사흘만에 또다시 오류가 쏟아졌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만 총 653건의 오류가 발견된 것이다. 교육부가 중‧고교 교과서를 합쳐 760건을 수정했다고 했음에도 여전히 오류가 넘쳐난 것이다. 총 44억의 예산을 들였지만 헛돈만 썼다는 지적과 함께, 현장의 외면을 받고 사실상 폐기처분된 ‘교학사 교과서’의 시즌2가 된 셈이다.
 
“모든 것은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던 약속을 깨고, ‘밀실’에서 강행한 국정교과서는 결국 막대한 사회적 비용만 낭비한 셈이다.
 
◆ 고쳤다면서, 한 페이지 당 오류 ‘2개’
 
전국역사교사모임, 민족문제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역사교육연대회의는 3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교과서 최종본의 오류 내역을 공개했다. 이들의 집계 결과, ▲부적절한 서술 328건 ▲명백한 사실 오류 195건 ▲편향 서술 113건 ▲비문 17건 등이다. 국정교과서 한 페이지당 오류가 평균 2건 정도 있는 셈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부분이 총 224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현대사 부분도 103건이나 됐다. 역사교육연대회의는 보도자료에서 오류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명백한 사실 오류’ 예로는 국정교과서 80쪽에 ‘후삼국 통일 이후 태조는 조세감면을 실시하여 농민의 부담을 줄였다’고 서술된 부분이다. 연대회의는 “고려 태조가 조세감면을 한 것은 건국(918) 직후부터”라고 지적했다.
 
또 212쪽에 “임시정부가 김규식을 전권대사로 임명했다”고 서술된 부분에 대해서도 “임명됐다는 자료가 없다”고 지적했다. 251쪽에 “미국은 10월 유엔총회에 한반도 문제를 상정했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도 “유엔총회는 10월이 아닌 9월”이라고 꼬집었다.
▲ 역사교육연대회의가 지적한 오류는 부적절한 서술 328건, 명백한 사실 오류 195건, 편향 서술 113건, 비문 17건 등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부분에서 지적된 오류가 총 224건으로 가장 많았다. ⓒ뉴시스
‘부적절한 서술’ 예로는 조선시대의 세금인 ‘대동세’ 부분이 있다. 국정교과서는 140쪽에 “농민도 대동세를 내기 위해선 생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 했다”고 서술돼 있으나, 연대회의는 “이해가 되지 않는 설명”이라며 “대동세는 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농촌에서 토산현물을 구하기 어려운 농민들의 과세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토지세로 전환한 세금인 만큼, 대동세를 잘 이해하지 못한 서술”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조선 정조 때 편찬된 법전인 ‘대전통편’에 대해 국정교과서 137쪽에는 “법령과 법전이 따로 나뉘어 이용이 불편했으므로, 이를 통합해 대전통편을 간행했다”고 서술됐지만, 연대회의는 “대전통편은 법령과 법전을 통합한 것이 아닌 속대전을 보완한 법전”이라고 지적했다.
 
◆ ‘부정선거’ 이승만은 책임면제 논리. 박정희는 아예 제외
 
‘편향된 서술’ 예로는 훈민정음 부분이 지적됐다. 국정교과서 121쪽에 “왕실로부터 양반 사대부, 여성, 심지어 노비에 이르기까지 훈민정음을 사용했다”고 서술했지만, 연대회의는 “양반사대부들이 훈민정음을 널리 사용했다는 견해는 통설과 매우 다르다”고 지적했다.
 
또 212쪽에는 “임시정부는 외교활동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서술돼 있지만, 연대회의는 “외교활동이 사실상 실패로 귀결됐다는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승만 정권이 일으킨 3.15 부정선거에 대해서도, 국정교과서가 ‘이승만 책임론’을 지우려고 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국정교과서 261쪽에는 "1960년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병사하자 이승만은 단독 후보로서 당선이 확실시되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는 대통령 유고 시 승계권을 가진 부통령에 자유당 이기붕 후보를 당선시키고자 공권력을 동원하여 3.15 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고 기술돼 있다.
 
연대회의는 이에 “3.15 부정선거에서 이승만 책임을 면제시키고 이승만을 옹호하는 대표적 논리"라며 ”이승만은 조병옥 후보가 병사하기 전인 1959년 3월 최인규를 내무장관에 임명하고, 6월 전당대회에서 후보를 지명토록 지시했고, 12월에 조기 선거 담화를 발표해 최인규가 3월 15일 선거를 발표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조병옥 후보 사망을 대신하는 대통령 후보를 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3·15부정선거 계획이 조 후보 병사 훨씬 이전인 1959년 12월에 내무부·경찰이 진행하고 있었으며, 이승만은 1956년 선거에서의 치욕을 씻기 위해 국민이 절대적으로 자신을 지지한다는 득표를 원했고, 그것이 개표에서 89% (이기붕은 79%)로 발표됐다”며 명백한 주동자임을 지목했다.
 
또한 박정희 정권이 일으킨 대대적인 부정선거도 국정교과서에는 언급되지 않았음이 지적됐다. 국정교과서 264쪽에는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윤보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연대회의는 “이 선거는 관권동원, 밀가루 대량살포 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역대 대선 중 15만표라는 가장 적은 표차였다”고 지적했다.
 
◆ “교육부의 빨간펜 될 수 없다”
 
연대회의는 이같은 오류들을 줄줄이 지적하며 “반드시 수정해야할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은 수정흉내만 냈다. ‘광주민주화운동’ ‘4.3 사건’ ‘박정희 서술’등이 그렇다”라며 “국정교과서 최종본은 자라나는 학생들이 역사교과서로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오류와 편향, 부적절한 문장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혹평했다.
▲ 역사교육연대회의는 “고등학교 한국사만 분석했는데도 653개의 오류가 발견됐다”면서도 “안타깝게도 연대회의는 분석결과 모두를 공개할 수 없다. 국민 대부분이 반대하는 국정교과서를 포기하지 않는 교육부의 빨간펜이 될 수 없다”고 개탄했다. 사진/고승은 기자
그러면서 “고등학교 한국사만 분석했는데도 653개의 오류가 발견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연대회의는 분석결과 모두를 공개할 수 없다. 국민 대부분이 반대하는 국정교과서를 포기하지 않는 교육부의 빨간펜이 될 수 없다”고 개탄했다.
 
연대회의는 교육부에 “국·검정교과서 혼용 추진 방침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며 “올해는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을 새롭게 마련하고, 내년부터 2년동안 검정교과서를 충실히 만들어 편향과 오류가 없는 좋은 교과서로 학생들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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