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반대’ 밀양 할배·할매들에 또 가혹한 유죄선고
‘송전탑 반대’ 밀양 할배·할매들에 또 가혹한 유죄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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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엔 꼼짝 못하더니, 생존권 지키는 주민들은 무참히 짓밟나” 울분
▲ 밀양송전탑 설치를 반대했던 주민 15명에 대해 항소심에서도 유죄를 선고한 1심의 결과를 그대로 인용했다. 모두 징역형과 벌금형이 선고됐다. 사진은 재판결과가 나온 뒤 울분을 토하는 주민들의 모습 ⓒ 밀양765kvout 페이스북
[시사포커스/고승은 기자] 밀양송전탑 설치를 반대했던 주민 15명에 대해 항소심에서도 유죄를 선고한 1심의 결과를 그대로 인용했다.
 
2일 창원지방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성금석 부장판사)는 밀양송전탑을 반대하다 기소된 67명 중 15명에 대해 1심과 똑같이 유죄를 선고했다.
 
윤모씨(79)씨 등 9명에겐 징역 6월~1년에 집행유예 1~2년, 백모씨(65) 등 6명에겐 벌금 200만원씩이 선고됐다. 특히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들은 대다수가 6~70대 고령층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주민들이 주장하는 시민불복종은 민주사회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방어권의 표현임에는 마땅하나, 이것이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표현돼야 한다”며 “주민들이 이번 사건 과정에서 경찰과 찬성 주민들에게 행사한 불법적인 행위는 허용되지 아니한다”면서 주민들의 항소를 기각했다.
 
일부 주민들은 “최순실한테는 꼼짝도 못하면서 생존권 지키는 주민들은 이리도 무참하게 짓밟는다”고 울분을 토하며 정부와 한국전력, 재판부에 분노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키로 했다.
 
밀양송전탑 사건과 관련, 형사고발된 주민과 활동가들은 67명에 달한다. 이들에겐 특수공무집행방해, 공무집행방해, 상해, 모욕, 업무방해, 명예훼손, 재물손괴죄 등 아주 다양한 혐의가 가혹할 정도로 적용됐다.
▲ 검찰은 지난 2015년 8월 1심 결심공판에서 기소된 15명에게 각 3~4년 형량 등 모두 합해 징역 28년4월형을, 3명에게 총 벌금 1천300만원을 구형한 바 있다. 사진은 주민들에게 집행유예-벌금형을 선고한 1심판결을 규탄하는 주민들의 기자회견 모습 ⓒ뉴시스
특히 주민들을 향한 검찰의 가혹한 기소는 비난여론의 대상이었다. 지난 2015년 8월, 검찰은 1심 결심공판에서 기소된 15명에게 각 3~4년 형량 등 모두 합해 징역 28년4월형을, 3명에게 총 벌금 1천300만원을 구형해 파장이 일었다. 주민들 대다수가 6~70대 고령인데다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운 이들에게 이토록 가혹한 처사를 내릴 수 있느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당시 이석현 국회부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원 55명이 주민들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1심 재판부에 제출했지만, 결국 징역형-벌금형이 떨어졌다.
 
◆ 그날의 ‘아비규환’
 
밀양 송전탑 인근 주민들은 지난 2005년부터 한전의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공사에 반대하며 싸워왔다.
 
특히 지난 2014년 6월, 밀양시는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농성장 5곳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 당시 공무원 200명, 경찰 20개 중대 2천명, 한전 직원 250명이 대규모로 동원됐다. 당시 주민들은 스크럼 농성, 목에 쇠줄 감기 등으로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주민들과 연대하던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끌려나갔다.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실신하는 등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 지난 2014년 6월, 밀양시는 송전탑 반대 주민들 농성장 5곳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 당시 공무원 200명, 경찰 20개 중대 2천명, 한전 직원 250명이 대규모로 동원됐으며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뉴시스
이처럼 분명한 과잉진압이 있었는데도 경찰 측에선 집회를 진압했던 경찰관들에 무더기로 표창장을 수여한 사실이 알려지며 파장을 키웠다.
 
농성장이 철거된 뒤, 한전은 지난 2014년 12월경 송전탑 161개 건설을 완료했다. 이 중 69개가 밀양에 심어졌다.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들 200여명은 현재 완공된 송전선로로 송전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전의 보상금 수령을 거부하며 밀양송전탑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송전탑 철거 등을 외치고 있다.
 
◆ “우리는 물러설 데도, 물러설 수도 없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는 2심 재판이 발표된 직후 성명서를 통해 “이 투쟁으로 병을 얻어 지금도 투병 중임에도 재판정에 서야 했던 주민들의 사정, 또 이미 논리적으로도 밝혀진 바와 같이 밀양송전선로 공사가 잘못된 전력 정책의 부산물이자, 전형적인 국가 폭력이라는 사실에 기반하여 판결 속에 조금이라도 반영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실정법을 위반한 폭력’이라는 이유로 간단히 무시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밀양송전탑 저항 과정에서 이미 주민들은 만신창이가 됐다. 철탑은 모두 들어서서 전기가 흐르고 있고, 재산권은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마을 공동체는 여전히 찬성과 반대의 분열 속에서 이를 부추기는 한전의 책동, 선물과 공짜 여행과 찬성 주민들의 조롱으로 심신이 말할 수 없이 지쳐 있다. 그 사이 발병하여 투병중인 주민들도 적지 않다.”며 참담한 주민들의 상태를 언급했다.
 
대책위는 “이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지켜보듯, 법에 의한 지배가 얼마나 허울에 불과한지를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러나, 잘못된 정책에 저항하는 고령 노인들의 절망적인 저항은 무참하게 짓밟혔다”며 “검찰의 황당한 기소 남발과 달리, 공권력 남용에 대해선 아무런 단죄도 참작도 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대책위는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이러한 참담한 상황을 2년 이상 견뎌오면서 경찰, 검찰, 법원을 1인당 수십차례씩 드나들어야 했고 대부분 집행유예 벌금형 등 유죄를 선고받게 되었다”고 개탄하면서도 “우리는 더 이상 멈출 수 없다. 밀양 송전탑 투쟁 과정에서 주민들이 입어야 했던 인격적 모멸과 생존권 침탈의 실상에 대해 언젠가 국가가 나서서 그 진상을 밝히고 사죄할 때까지 조금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고 물러설 수도 없다”고 굳센 의지를 전했다.
 
대책위는 <송전탑 건설로 인한 마을 공동체 파괴 실상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임을 밝히며, 정부와 한전의 폭력 진상을 밝히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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