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클랩튼의 "Me & Mr. Johnson"
에릭 클랩튼의 지난 10여년 간은 그의 전체 커리어 중 가장 끔찍스런 것이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가 1960년대, 1970년대에 보여주었던 날카로움, 정교한 테크닉과 과감한 변용성의 향연은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자취를 감춰버리고, 대신 그의 '대히트곡'인 'Tears in Heaven'에서와 같이 대중성에의 표피적 결합만이 불완전한 형태로 드러나 많은 팬들을 꾸준히 실망시켜 왔는데, 이렇듯 얄팍한 대중주의로 영합해버린 클랩튼의 '작가적 발로'란 것 또한 기이한 것이어서, 바로 지난 10여년 간 'The Cradle'이라던가 'B.B. 킹'과 같은 전설적인 블루스 뮤지션과의 협연 또는 오마쥬 앨범으로서 자신이 블루스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음을 증명해내는 일에 몰두했던 것. 여러모로 보았을 때 그닥 창조적이지만은 않은 이 작업은, 분명 B.B. 킹과의 협연 앨범인 "Riding With the King"에서는 어느 정도 안정되고 그럴듯한 사운드를 창조해내었지만, 그의 새 앨범이자, '악마에게 혼을 판' 전설적인 블루스 뮤지션인 로버트 존슨에의 오마쥬 앨범인 "Me & Mr. Johnson"에서는 그의 이런, 안일하다면 안일한 행보가 '가장 우려했던 방향'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Me & Mr. Johnson"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에릭 클랩튼'이라는 또하나의 전설적 기타리스트의 스타일이 거의 드러나있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엔지니어의 문제인지, 아니면 계속해서 귀를 거슬리게 만드는 키보드의 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앨범에는 '에릭 클랩튼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로버트 존슨'의 입장 대신, 오직 '로버트 존슨을 존경하는 에릭 클랩튼'의 향취만이 배어 들어가 있는 것. 그러나 "Me & Mr. Johnson"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 클랩튼'이라는 기타계의 '신화'를 다시 한번 입증시켜 주는 묘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별다른 수식구를 붙일 필요도 없이, 이 정도로 '타인의 곡'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기타리스트는 현재에도 보기 드물며, 그의 절묘한 핑거링 테크닉과 호흡구조, 음의 길이를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며 음의 복합구조를 만들어내는 그만의 장기들이 총동원되어 펼쳐지는 이 '로버트 존슨에의 절대적 헌사'는, 과연 우리가 그동안 이 '엄청난' 기타리스트를 그 방향성만 보고서 얼마나 '무시'해 왔는가에 대해 '반성'을 하게끔 만들어주고 있다. 씁쓸함과 경탄감이 동시에 밀려오는, 독특하지만 그닥 즐거운 경험만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에릭 클랩튼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앨범으로서, 특히 그의 매니아층에게는 강력히 권하고픈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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