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부담감, 쌓이는 일감에 “한가위 두려워”
양성평등이라는 말이 자리 잡은 지도 몇 년이 지났지만 명절 준비는 아직도 여성 몫이다.푸짐한 음식 장만, 설거지까지 모두 여성들이 맡는다. 무슨 음식을 장만해야 뒷말이 안 나올지 고민스럽고, 산더미 같은 일감에 한숨만 나온다.
하물며 명절날 찾아오는 친척들은 “오면 반갑고 빨리 가면 더 반갑다”는 말까지 있다. 기혼여성 커뮤니티 ‘아줌마닷컴’이 주부 64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2.9%가 ‘명절증후군을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남성들도 명절증후군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장거리 운전, 부모님 선물 부담 등에 마음고생·몸고생을 겪는다.
명절이 가까워지면서 소화가 잘 되지 않고 가슴이 답답하며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 잠을 설치는 등 온갖 증세가 나타나는 것을 ‘명절증후군’이라 부른다. 증상으로는 감각 이상, 두통, 발한, 변비, 불감증, 생리불순, 설사, 어지러움, 이유 없는 통증, 피로감 등 소화기계 증상과 각종 신경증이 나타난다.
이러한 명절증후군은 핵가족화된 가정의 주부들이 명절 기간 동안 익숙하지 않은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대가족 제도에 일시적으로 편입되면서 정신적·신체적 부적응 상태를 겪는데서 기인한다. 만성우울증으로 발전할 수도 주부 커뮤니티 ‘드림미즈’에서 1천5백여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는 명절증후군의 해결책으로 37%가 명절 음식을 온 가족이 함께 준비하기를 희망했고, 24%는 간단한 집안일을 남편에게 요구하고 싶어했다.
60%가 넘는 주부들이 명절증후군이 과도한 가사노동에서 온다고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명절증후군은 보통 시댁과의 교류가 충분하지 않은 결혼 초기나 시댁과 갈등이 있는 며느리 사이에서 심한데, 최근에는 며느리뿐 아니라 시부모의 명절증후군도 무시 못한다고 한다.
서울특별시립북부노인병원 정신과의 신영민 원장은 “명절 후 고향에 남아 있는 부모님의 공허함은 며느리 증후군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며 “노인의 경우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우울증을 동반하기 쉽다”고 경고한다. 명절증후군은 명절이 끝나고 일주일 정도 지속되다가 없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며느리건 시부모이건 이러한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될 경우 전문의에게 적절한 치료를 받아 만성적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특히 올 추석은 최고 9일까지 쇠는 경우가 있어 예방대책이 필수다.
명절증후군의 예방을 위해서는 주부 스스로 명절 기간에 짧은 시간만이라도 자주 휴식을 취해 육체적 피로를 풀어야 한다. 마음의 피로는 몸의 피로에서 오기 때문이다. 또한 일을 하는 동안에도 주위 사람들과 가벼운 화제의 대화를 통해 심리적 부담감이나 압박감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한의학에서는 심장과 담이 약한 사람이 명절증후군에 걸리기 쉬운 체질이라고 한다. 입이 쓰거나 잠귀가 밝고 불면증에 잘 걸리며 관절이 자주 아픈 것이 심장과 담이 약한 사람들의 특징.
따라서 명절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심장과 담의 기운을 보충해야 한다. 심장과 담에는 바지락, 매실, 연뿌리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이들의 기운을 보충하는 운동이 있다. 우선 편안하게 바닥에 앉아서 발바닥을 맞대고 머리를 위로 쳐들고 두 손으로 발목을 끌어당겨 3번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한다.
그 다음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들어 허리와 등에 3번씩 힘을 주는 동작을 3번 반복한다. 명절증후군은 당연히 피부에도 해롭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부신에서 코티졸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때 코티졸과 함께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면서 피지선을 자극하고, 피지가 모공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면 염증이나 여드름이 생긴다.
결혼이 늦어진 미혼남녀들이나 취업 못한 젊은이들에게도 명절은 고역이다. 별 뜻 없이 내뱉는 말에 자격지심이 작동해 상처를 받는 것.
‘왜 결혼 안 하냐?’, ‘취업은 언제 할 거냐’ 등의 말은 관심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배려심 부족한 어른들의 의례적인 형식에 불과한 경우가 많으니 패턴화된 답변을 개발해서 자동적으로 맞장구치고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 수법이다.
한편 명절증후군 대책으로 아내의 육체적·심리적 스트레스를 보상하기 위한 각종 선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여성의류·로봇청소기·기능성 화장품 등 일부 백화점이나 홈쇼핑·인터넷 쇼핑몰들은 추석 연휴 대목을 앞두고 아예 ‘명절증후군 퇴치용’ 기획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했으니 립 서비스도 필수다. 시댁 식구들 눈치 보느라 명절 준비에 동참하지 못한 남편이라면 “여보 고생 많았어”, “우리 식구들 잘 참아줘서 고마워”라는 말과 함께 위에서 준비한 선물을 건네고, 마지막으로 ‘포상 휴가’를 주는 것도 좋겠다.
근본적인 대책이라면 여성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우리 명절 문화를 재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년에 2번씩 명절 대이동을 감수하는 모습은 외국인들에게도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다.
젊은이라면 물론이고 집안 어른의 위치에 있는 분이라면 솔선수범해서 의식을 바꾸어고 새롭고 융통성 있는 명절 문화를 고민해보는 것이 좋겠다. 요즘 명절에는 포트럭 파티도 유행되고 있다.
포트럭 파티란 손님들이 각자 간편한 음식들을 장만해 분담하는 방식의 파티를 말한다. 집집마다 미리 송편을 빚고 부침개 거리와 나물, 생선, 육류, 과일들을 준비하는 방식이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해마다 찾아오는 명절. 남편들도 스트레스를 받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더 고생을 하는 것은 아내들이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일을 분담하고, 질병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보살피는 것이 편안한 명절을 즐겁게 보내는 생활의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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