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은 결국 ‘탐정’의 길을 걷는다?
‘전문직’은 결국 ‘탐정’의 길을 걷는다?
  • 이문원
  • 승인 2004.04.10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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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상황 배치로 공감대를 확보하는 ‘전문직 탐정 코믹’의 세계를 알아보자
'탐정 코믹'은 더 말할 것도 없이 현재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장르 중 하나이다. 이미 "소년탐정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과 같은, 수천만부 단위의 거대 히트작을 등장시킨 바 있고, 이에 힘입어 수많은 아류 '탐정 코믹'이 시장에 넘쳐나는 상황을 유도한 이 '트렌드'는,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현대화' 되었다기보다 고전 탐정소설의 영향을 그대로 이어받은 느낌으로, 결국 '명석한 탐정 캐릭터'의 구축이 '캐릭터화'의 전부였던 것이 사실. 이런 '거리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전문직 탐정 코믹' 장르이다. '전문직 탐정 코믹'에는 '탐정'이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탐정'이라는 직업 자체가 모종의 가상성을 띠고 있는 상황이기에, 현실과의 밀착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직 탐정 코믹'은 의사, 검사, 변호사, 검시관 등의 다양한 전문직 종사자들을 다루며, 이들이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탐정 행위'를 하게 된다는 설정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는 것. 이번에는 이들 '전문직 탐정 코믹'의 세계를 살펴보며, 새로운 탄생된 트렌드의 분석과 함께, '생활 속에서 가능한 추리'의 흥미진진한 세계를 탐방해보기로 하자 다직종 캐릭터의 대활극, 우라사와 나오키의 "마스터 키튼" 전문직 탐정 장르의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라면 단연 "마스터 키튼"의 주인공 '히라가 다이치 키튼'을 꼽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문직 특유의 지식과 감각으로 일을 해결하는 주인공이라서가 아니라 가장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캐릭터이기에 얻을 수 있는 찬사일텐데, 사실 키튼은 '전문직' 종사자라기 보다 '다직종 종사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이치 키튼은 기본적으로 '보험조사원'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고고학자'로 분류해주길 원하고 있으며, 실제로 몇몇 대학에서 고고학 강의도 하고, 고대문명에 대한 대담한 학설을 발표하려는 꿈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런 반면 키튼은, 영국의 특수부대인 SAS의 전요원이라는 희한한 경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런 여러 가지 직종군의 요소가 복합되어 여러 가지 사건들에 적용되는 것이 "마스터 키튼"의 세계이다. 가령, 사건을 '취득'하게 되는 것은 '보험조사원'의 입장에서 비롯되며, 직면한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는 SAS 전요원으로서의 기지와 전략이 이용되고, 이 모든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탐정'으로서의 역할은 '고고학자'로서의 지식이 동원되어 이루어진다는 식이다. '탐정'으로서의 요소가 강조되기 보다는 '대활극'으로서의 요소가 더 부각되어 있는 "마스터 키튼"은, 또한 '전문직 코믹'의 기능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직 탐정 코믹'의 첫 단계로서 손꼽아야 하는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그 이른 탄생시점과 앞서 언급한 대중적 인지도, 그리고 '생활 속에서 해답을 찾는' 전문직 탐정 코믹의 기본요소가 어느 정도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검사'는 기본적으로 '탐정'이어야 한다, 타카타 야스히코의 "검사 마루쵸" 어떤 종류의 전문직은 그 기본성격 자체가 '탐정'적인 요소를 띠고 있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경찰'과 '법조계'의 다양한 직업군일텐데, 바로 '사건의 진실'을 파악해야만 하는 것이 직업의 대표속성이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과장하지 않고 정직하게 다루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탐정물'이 되어버리는 것. 타카타 야스히코의 "검사 마루쵸"는 '법조계' 중에서도 '탐정'적 성격에 가장 가까운 직종인 '검사'의 일을 다루고 있는데, 피고의 표정변화나 말투, 야릇한 분위기만을 보고서 '뭔가 더 깊은 비밀'이 있음을 감지, 이후 다양한 배경조사를 통해 '피고인의 진실'을 파악해 나가는 과정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런 순차적이고 정석적인 '추리'와 '정탐'의 과정은 그대로 조금은 소프트한 - 현실을 바탕으로 했기에 이렇다할 '트릭'을 밝혀내는 과정 따위는 물론 등장하지 않는다 - 탐정물의 전형이라 할 수 있지만, 여기에 '검사'로서의 입장, 즉 법을 수호하고, 피의자를 보호하며, 결국 모두가 '행복'해지는 상황보다는 '정의'를 구현해야만 하는 입장이 추가전제로 작용하면서 "검사 마루쵸"는 비로소 개별적인 '전문직 코믹'의 요소를 강하게 띠게 된다. 그러나 "검사 마루쵸"가 대중에게 쉽게 접근하고, 또 캐릭터의 폭을 넓히기 위해 차용한 '방편'도 물론 존재하는데, 정석적인 검사의 이야기만으로는 다소 딱딱한 이야기가 될 수 있기에, 작가는 주인공 우시오 타다시에게 '어깨부상으로 야구선수의 길을 접었으며', '굳이 법조인을 목표로 하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수식구를 붙여주고 있다. 이런 복합적 배경은 "마스터 키튼"이 보여준 '다직종 캐릭터의 다면성'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서, 이후 여러 '전문직 코믹'의 기본 설정으로서 자주 이용되었다. '마음의 미스테리'를 파헤치는 정신과의사, 아기 타다시, 마토바 켄의 "사이코 닥터" "사이코 닥터"는 여러 종류의 미스테리 중 가장 신비스럽고 섬뜩한 '마음의 미스테리'를 다루는 정신과 의사, 카이 쿄오스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직종이 직종인 만치, 마음의 비밀을 하나하나, 찬찬히 파헤쳐 내려가는, 마치 "다섯번째 샐리", "24인의 싸이코" 등으로 유명한 다니엘 키스의 '정신과 환자 관찰기'를 보는 듯한 전율과 흥미를 전해주는 것이 바로 이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인데, "사이코 닥터"는 여기서 더 나아가 - 어쩌면 더 '통속화'되어 - '마음의 사건'이 실제 물리적인 범죄와 직결되는 과정을 다뤄내고 있다. 그러나 카이 쿄오스케가 보여주는 마음의 세계는 실로 기기묘묘하며, 이런 확장적 설정에 일정부분 설득력을 확보해내고 있다. 모든 종류의 '버릇'에는 어릴 적에 겪었던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작용하고 있으며, 뭔가를 기피하는 모습, 심지어 한 사물에 대한 반응 - 이야기 중의 '코인록커'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 까지도 모두 '마음 속에 묻어둔 사건'의 비틀린 표현이라는 것. 이런 과정을 통해 '작은 사건'이라 여겼던 일도 '범죄'로 확장될 수 있고, 그리고 그 범죄는 오직 '마음의 미스테리'를 풀어내야만 해결된다는 '공식'으로 "사이코 닥터"는 지금껏 전혀 보지 못했던 종류의 '변종 탐정극'을 형성해내고 있다. 어찌보면, '전문직 탐정' 장르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여겨질 수 있는 "사이코 닥터"는 많은 전문직 탐정 장르가 '원하고 있는' 두 갈래 독자층의 확보, 즉 "사이코 닥터"의 경우 '의료 코믹'과 '탐정 코믹'의 합성으로서 양쪽 장르에 각각 흥미를 가지고 있는 독자층을 모두 아우르겠다는 면밀한 계산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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