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전실 해체 이후 이사회 독립성이 관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전실 해체를 전격 지시함에 따라 계열사별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재계 일각에선 이번 이 부회장의 선택이 삼성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로 읽히고 있다.
따라서 이번 미전실 해체와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 시대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반면 미전실 해체로 인해 미전실이 주도했던 신사업 및 인수합병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이 지연되거나 일부 계열사간 중복투자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또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이 정착하려면 투명한 이사회 구성이 필요한데 계열사별 이사회 구성이 그룹 총수 거수기 역할에 그칠 수 있다는 부정적 전망 등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우려도 해결해야 한다.
◆미전실 해체…전자, 물산, 생명 3각축 거론
삼성이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을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이유는 창립 이후 삼성이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때문이다. 삼성은 16개 상장사를 포함 59개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조직 삼성을 이끌어 가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으로 컨트롤타워 역할로 미전실을 운영했다.
삼성 미전실의 역사는 고 이병철 선대회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 회장 시절 삼성물산에 비서실을 설치하며 소규모 조직으로 출발하다 1970년대 조직이 커진 이후 1997년 외한위기를 맞자 구조조정본부로 개편됐다.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이학수 전 삼성물산 고문이 구조조정본부를 맡았다.
이후 2006년 구조조정본부는 전략기획실로 축소된 이후 2008년 삼성 특검 결과로 이건희 회장은 전략기획실 해체 및 그룹경영에서 손을 떼는 경영쇄신안을 내놨다. 해체된 전략기획실은 업무지원실로 축소되다 미래전략실로 부활했지만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에 삼성이 연루되면서 미래전략실이 전격 해체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미래전략실에 부정적 시각이 있다면 해체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뇌물공여)로 구속 기소되며 미전실 해체를 전격 단행했다. 결국 58년 만에 미전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그동안 미전실이 담당했던 인수합병, 신사업 선정 및 투자, 인사, 감사, 홍보 등 경영전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미전실이 담당했던 역할을 각 계열사로 이관되고 미전실 직원들은 원 소속 계열사로 복귀 수순을 밟게 된다.
이제는 삼성이 그룹 건트롤타워가 사라진 만큼 각 계열사들이 미전실의 역할을 얼마나 이행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삼성이 발표한 쇄신안에는 각 계열사별 대표이사와 이사회 중심 자율 경영 체제로 바뀌게 되면서 이사회의 권한이 커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 시점에선 독자경영이 쉽게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보니 재계 안팎에선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3각 축으로 계열사별 공통 현안에 대한 의견 조율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SDI·삼성전기 등으로부터 소재·부품을 집중 공급받는 수직계열화 체제라 이들 계열사의 조정 기능 없이 독립적인 경영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삼성물산(의 건설부문) 등이 과잉설비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독립적인 이사회 중심 경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삼성생명 중심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시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 금융계열사들의 독자경영도 수월해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삼성 안팎에선 3개 주력 계열사를 중심으로 ‘미니 컨트롤타워’가 구성돼 미전실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에 경제개혁연대는 최근 논평에서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 해체는 컨트롤타워 기능을 완전히 없앤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미래전략실 기능을 일부 축소하고 부분적으로 분할하여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등의 핵심 계열사 내부로 이전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며 “그룹 전체의 시너지 효과를 위한 컨트롤타워 기능은 유지하면서도 각 계열사 및 그 이해관계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조직구조를 투명하게 밝히고 시장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율경영, 이사회 독립성 관건
그럼에도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을 선포한 만큼 이사회에서 사장·임원 등의 인사와 투자, 채용 등을 결정하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실제 2일 삼성전자는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직속 조직으로 글로벌품질혁신실을 신설하고, 삼성중공업 생산부문장인 김종호 사장을 실장에 위촉했다. 이번 인사는 권 부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부회장은 이사회 산하 경영위원회에 속해 있다. 경영위원회는 사내이사로만 구성돼 있으며 권오현 부회장, 윤부근 사장, 신종균 사장 등 3명이 위원이다. 경영위원회는 경영방침과 전략, 구조조정, 해외업체와 전략적 제휴·협력 추진, 신규 시설투자 등을 심의·결의한다.
문제는 심의 의결하는 과정에서 사외이사들의 역할이다. 시민단체에선 이 부분을 우려하고 있다.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삼성의 ‘이사회 순혈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배주주와 내부 경영진이 선임한 ‘거수기 사외이사’로만 채워져서는 각 계열사 이사회의 자율적 판단을 신뢰할 수 없다”며 “각 계열사 내부에서 견제와 감시 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면, 그룹 전체의 컨트롤타워는 불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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