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담뱃값 인상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는 국민건강보험 저출산고령사회대책 등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다음달 정기국회에서 담뱃값 인상을 마무리 짓겠다는 방침이다. 복지부는 올해 담뱃값이 500원 인상될 경우 내년에만 2200여억 원의 추가 재원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요즘 부쩍 바빠졌다. 담뱃값 500원을 올리기 위해 직접 야당 국회의원들을 찾아 설득하고, 기자들과의 브리핑 자리에서도 담뱃값 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유시민 복지부장관은 지난 18일 전재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비공식 방문, 국민연금 개혁안 마련과 함께 담뱃값 인상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유 장관은 “국내 담뱃값이 선진국에 비해 30% 정도밖에 안되고 보건복지 분야의 개혁을 추진하는 데 세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장관의 이런 행보는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담뱃값 인상이 무산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복지부는 2000년 이후 본격적으로 금연운동이 전개되면서 2004년 12월 담뱃값을 500원 올리는 등 지속적으로 담뱃값 인상을 추진중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에 계류 중인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건보재정 10%가 건강증진기금
일단 복지부는 담뱃값 인상의 이유에 대해 금연정책의 확대라는 기본적인 원칙을 제시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2004년 초 담뱃값 인상 뒤 당시 9월 실시된 조사에서는 흡연율이 57.8%였지만 올해 6월말 흡연율은 47.5%로 무려 10.3%포인트나 감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다 큰 이유는 갈수록 늘어나는 건강보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판단이다. 이번에 국회통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은 담배 1갑당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현행 354원에서 558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담뱃값 인상으로 생긴 수익의 대부분이 건강보험재정으로 들어온다는 점에서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복지부로써는 정말 단비와 같은 존재다. 실제로 지난해의 경우 담배 판매로 생긴 건강증진기금 중 9253억원이 건강보험재정의 국고지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 전체 건강증진기금의 86%, 전체 건강보험재정의 10.8%에 이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담뱃값 인상이 실패하면 건강보험재정 악화는 물론이고 저출산·고령화 종합대책과 암정복 10개년 계획, 6세 미만 병의원 무료예방접종 등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며 “이들 사업을 포함해 많은 복지정책이 건강증진기금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히며 담배값 인상에 사할을 걸고 있다.
◆3번째 도전하는 담뱃값 인상
이런 복지부의 담뱃값 인상 시도는 이번이 벌써 3번째다. 복지부는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에 담뱃값 인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다. 그만큼 담뱃값 인상은 불리한 여론과 야당의 반발, 물가상승 부담 등으로 인해 국회라는 산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4년 만에 2000억원 적자로 돌아설 위기에 처한 건보 재정악화와 “담뱃값이 안되면 의료보험료라도 올려야 한다”는 복지부가 주장하고 있는 사항에 조금씩 힘이 실리고 있다. 또한 이번에 담뱃값 인상이 또 다시 무산되면 민노당 현애자 의원이 발의한 무료예방접종도 지금처럼 본인이 내야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조금씩 인상 쪽으로 바꿔가던 민노당이 반발을 하고 있다. 민노당은 정부 부처별 2007년 예산요구안을 작성하면서 보건복지부는 내년 '민간병의원 예방접종비 지원'을 위해 501억원을 이미 요청한 상태이다. 법안 통과 이후 별 반응이 없던 보건복지부가 하루만에 '담배값 인상 없이 무상예방접종 없다'라고 태도가 돌변했다며 강력 반발을 하고 있다. 여기에 여전히 한나라당 의원들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복지부가 담뱃값 인상을 기정사실화 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했을 뿐 아니라 담뱃값 인상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한나라당 측은 “의총에서 논의해보겠지만 인상 반대 여론이 강하다”며 난색을 표명한 상태다.
◆또 다른 복병 법안심사소위
하지만 담뱃값 인상을 위해서는 본회의에 앞서 복지위를 통과해야 한다. 복병은 복지위에도 있다. 민주노동당이 국회 본회의 통과에 있어 캐스팅보트라면 민주당 김효석 의원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복지위를 통과하는데 반드시 거쳐야 하는 법안심사소위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고 있다. 문제는 김 의원이 담뱃값 인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5일 민주당 대표실에서 주최한 정책간담회에서 김 의원은 “건강증진기금의 약 90%가 건보재정에 투입되는 현 구조는 담뱃값 인상과 기금마련의 본래 취지를 벗어난 것”이라며 “당장 건보재정이 없다면 보험급여를 올려야지, 담뱃값을 올려 이를 메우겠다는 발상은 편법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김 의원의 입장이 실제 법안소위에서도 유지될 지는 미지수지만 복지부 입장에서는 분명 ‘비상사태’인 셈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만약 이번에도 담뱃값 인상이 무산되면 내년에는 당초 예상됐던 보험료 인상률 5.6~6.6%보다 2%포인트 오른 7~8%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