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안철수 ‘사면 설전’ 속 보수후보들까지 가세해 ‘대혼전’

최근 안 전 대표의 급격한 상승세를 경계하는 대선 선두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를 놓고 2일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자마자 바로 사면이니 용서니 이런 말이 나온다는 건 참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곧바로 포문을 열었으며 같은 당 이재명 후보 측까지 여기에 뛰어들어 “대선후보들이 박근혜 사면 불가를 약속하라”고 한 발 더 나아가면서 논란은 점점 증폭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경남지사,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 등 보수정당 후보들까지 야권에서 시작된 박 전 대통령 사면 논란에 제각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이 채 시작되기도 전부터 사면 문제는 대선판의 또 다른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모양새다.
◆ ‘朴 사면’ 한 마디에 대선판부터 각 당까지 요동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당내 경선에서의 파죽지세 승리에 한껏 고무되던 와중에 돌연 지난달 31일 경기 하남 신장시장을 찾은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도 사면위원회에서 검토할 여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국민들의 요구가 있으면 위원회에서 다룰 내용”이라고 답해 정치권에 적잖은 파장이 일어났다.
진보진영인 민주당과 정의당은 물론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 이르기까지 각 당의 대선후보들이 대체로 안 전 대표의 이 같은 발언에 한 목소리로 부정적 논평을 내놨다.
대선주자들 중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가장 먼저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 막 법의 심판대에 오른 피의자들에 대해 사면을 들먹이는 건 법치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국민들을 개돼지로 보는 발상”이라고 안 전 대표의 발언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데 이어 2일엔 아예 국회에서 안 전 대표를 겨냥 “구구한 변명을 할 필요가 없다. 박 전 대통령을 절대 사면하지 않겠다고 똑 부러지게 입장을 밝혀주시면 좋겠다”고 한껏 몰아붙였다.
심 대표에 이어 민주당의 문 전 대표 역시 같은 날 안 전 대표에 “사면이니 용서니 이런 말이 나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침을 가했으며 한국당의 홍준표 지사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안 전 대표를 겨냥 “박 전 대통령 끌어내리는데 앞장서고 구속까지 밀어붙였던 좌파와 얼치기 좌파 세력들이 우파들의 동정표를 노리고 박 대통령의 사면을 운운하고 있다”며 “유죄확정이 돼야 사면여부를 검토하는 것인데 급하긴 되게 급한가 보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홍 지사는 “5월9일 우파 신정부가 들어서야 박 전 대통령을 국민들이 용서한 것”이라며 “민주당에서 가출해 작은집을 지은 국민의당과 본당인 민주당의 호남을 향한 적통경쟁은 때 이른 박 전 대통령 사면도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참으로 가관”이라고 이를 논의하는 야권을 모두 싸잡아 비난했다.
이는 야권 후보인 안 전 대표가 먼저 박 전 대통령의 사면에 대해 거론한 자체가 보수 표심을 얻으려는 외연 확장 시도라고 본 데 따른 대응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또 다른 보수정당인 바른정당의 대선후보인 유승민 의원까지 같은 날 오후 경북 상주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면은 법적 심판이 끝나고 난 다음 국민적 요구가 있으면 그때 가서 검토할 문제”라며 안 전 대표의 이번 발언은 시기상조라는 비판적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당시 안 전 대표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사면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위원회를 만들어 국민들 뜻을 모으고 투명하게 진행하겠다는 발언을 한 데 이어 덧붙인 답변이다 보니 정치권에서 일어난 예상을 넘는 격한 반응에 당황스러웠는지 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저는 사면권 남용이 안 된다고 말한 것인데,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에선 김영주 최고위원이 3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안 전 대표를 향해 “주말 사이 난데없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논란이 있었는데 실언을 하거나 오해를 불러오는 말을 하면 솔직히 해명하고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대선주자 뿐 아니라 당 차원에서까지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 안철수의 ‘사면’ 언급, 文-安 구도 위한 계산된 발언?

이렇듯 확전 양상을 띠자 국민의당에서도 같은 날 박지원 대표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사면위에서 검토해야지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사면)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말을 한 것”이라고 선을 그은 뒤 “문 전 대표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저하면서 ‘명예로운 퇴진을 보장하겠다’고 한 것은 얘기하지 않더라”면서 “안 전 대표가 2~3%포인트의 오차범위로 문 전 대표와 대결하고 있으니 물고 늘어지는 것”이라고 맞불을 놨다.
한 발 더 나아가 같은 당 문병호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에서 안 전 대표에 대한 민주당 측 공세를 꼬집어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공격하는 것은 초조함의 발로이고 문재인 대세론이 뿌리째 흔들린다는 방증”이라며 “문 전 대표의 추락, 안 전 대표의 상승바람은 (대선 승리를) 빼앗기는 기분일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처럼 나흘째 양측이 이 문제를 놓고 설전을 이어가면서 일단 그간 ‘문재인 대세론’에 힘입어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일관해온 문 전 대표를 안 전 대표 측이 일부 움직이게 하는 데에는 성공한 듯 보인다.
앞서 국민의당은 문 전 대표 아들 취업 특혜 의혹을 들어 문 전 대표 측에 적극 공세를 펼쳤으나 보수정당과 별 다를 게 없는 목소리를 낸데다 새로운 소재도 아니다 보니 문 전 대표의 반응을 크게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았는데, 오히려 스스로 논란거리를 던지는 ‘노이즈마케팅’ 전략을 취함으로써 문 전 대표 측과 사실상 일대일 설전을 벌이는 구도를 이뤄냈다.
자당에 유리한 이런 구도를 한층 확실하게 굳히려는지 박 대표는 3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아예 “우리 대변인들에게 홍준표나 유승민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등에 대해서 가급적 논평이나 발언을 하지 마라, 이런 지시를 했다”며 다른 정당에서 나오는 안 전 대표에 대한 비판을 무시하겠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선 안 전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이 당초 기대한 육참골단(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이 아니라 자칫 상승세를 주춤하게 만드는 자충수가 되지 않겠느냐는 견해도 내놓고 있는데,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3일 오전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대선 유력후보에게 똑같이 질문했는데 다른 분들이 다 지금은 말할 단계가 아니라고 피해갔는데요”라며 “(안 전 대표가) 즉흥적으로 대답한 거면 정치적으로 미숙한 대응이었고 보수 표 지지를 위해 의도된 반응이었다면 소탐대실”이라고 혹평한 바 있다.
그렇지만 아직 안 전 대표의 상승세는 여전히 꺾일 줄 모르는지 내일신문이 ‘사면 거론’ 이후인 지난 2일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전국 17개 시도의 만19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으로 실시해 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95% 신뢰수준±3.1%P, 응답률 13.5%)에 따르면 문재인-안철수 양자 가상대결 시 안 전 대표가 43.6%, 문 전 대표가 36.4%를 기록하며 안 전 대표가 오차범위를 넘는 수준으로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 전 대표가 문 전 대표를 앞선다는 첫 여론조사 결과인 만큼 문 전 대표 측 박광온 수석대변인은 이날 즉각 “양자구도는 상식적이지 않다”며 “선관위에 조사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혀 이를 놓고 양측 간 2차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장기간 유지되어온 문 전 대표 대세론에 변수가 일어날 조짐이 눈에 띄면서 내달 초 예정된 대선일까지 남은 한 달여간 어떤 식으로 공방이 전개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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