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떨고 있니?"추석 두려운 20대
"나 떨고 있니?"추석 두려운 20대
  • 박수진
  • 승인 2006.10.09 0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박받느니 차라리 공부를...
통계청이 지난해에 비해 올 전체 실업자가 6.4% 줄었다고 발표했지만 대졸 실업자는 2002년부터 꾸준히 증가, 올 추석 연휴에도 이 땅의 청년 실업자들은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 "요즘 뭐하고 지내니?" "아직도 취직 못 하고 놀고 있니?"라며 한마디씩 던질 게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보름달처럼 환한 인생의 불을 켜진 못할 망정 우중충한 모습을 들키긴 죽어도 싫다. 반면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청춘들도 많다. 여기, 적어도 내년 추석에는 고개 빳빳이 들고 친척들을 맞겠다며 이를 앙다무는 20대들이 있다. ▲ 이젠 변명거리도 없다. 차라리 안 가! 올 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 강모씨(28)는 요즘 유난히 초조하다. 졸업 직전인 지난 설 연휴 한 친척이 던진 한 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 입맛이 쓰다."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으니 좋은데 취직하겠네"라며 졸업과 동시에 취직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데 아직도 '백수'라고 할 자신이 없다. 강씨는 "올해도 다 지나가는데 어른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걱정이다.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인 건 알지만 솔직히 만나기 두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방송국 엔지니어를 준비 중인 김모씨(27)는 요즘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사는 게 버겁다. 서울·지방·케이블 방송국 등 20여 군데에 지원했지만 연락이 온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졸업한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부모님께 용돈을 타 쓰는 신세다. 친구들과 만나도 매번 얻어먹기만 해 궁색하다. 김씨는 요즘 외출을 자제하고 시험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대기업 입사를 준비중인 박모씨(28)도 "취업 생각만 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며 괴로워하긴 마찬가지. 박씨는 1년 간 대기업에만 이력서를 넣었다. "어차피 취업은 장기전이다. 이왕 고생하는 거 연봉과 복지가 좋은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낫다"는 게 박씨의 지론.속도 모르고 가족들이 "대기업만 선호하지 말고 눈을 낮추라"고 조언할 때면 서럽고 야속하다. 며칠 전 아버지에게 이런 속내를 조심스레 비추며 "이번 명절에는 내려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백수가 뭐가 바쁘냐"며 되레 혼만 났다. "할 일이 없긴 왜 없어요!" 울컥한 나머지 버럭 소리지르고 전화를 끊었던 게 못 내 마음에 걸린다. 월 15만원짜리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박씨는 "명절에 편의점에서 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싱숭생숭하다"며 씁쓸해 했다. ▲ 구박받느니 차라리 공부할래!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하고 있는 조모씨(28)는 이번 추석에 고향 부산에 내려가는 걸 일찌감치 포기했다.조씨는 "공무원 시험 준비한지 벌써 1년 반이다. 가족들 앞에 서면 위축된다"며 "관심 반 타박 반의 질문공세에 시달리느니 서울에서 시험 공부하는 게 속 편하다"고 말했다. 공무원의 안정성에 반해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지만 경쟁자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하지만 이제와서 물러설 수도 없다. 공무원 이외의 직업은 생각해 본 적 없고 여태껏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 광고대행사 취업을 준비 중인 김모씨(27.여)도 고향에 못 가는 건 마찬가지다.2년째 뒤돌아보지 않고 한 우물만 팠지만 계속된 낙방에 자신감은 사라진 지 오래. 차라리 중소 광고사에 취업한 후 대형 광고사로 이직할까 고민하고 있다. 김씨는 "여자 백수들은 취업은 물론 결혼 압박까지 이중고를 겪는다"고 토로하며 차라리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연휴에는 부족했던 토익점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영어에 집중하는 한편 자기소개서도 보완할 계획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