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목만 다를 뿐 전국적 관행… 연간 수십억 낭비

창원·마산·김해시 등 경남지역 일선 지자체에서 평생을 공직자로 봉사한 지방공무원들의 사기 진작과 위로 차원에서 퇴직을 6개월 안팎 남겨놓은 공무원을 대상으로 시 예산을 들여 서유럽이나 동남아 등 해외연수를 실시하고 있다는 것. 이번에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 10일 마산시가 추경예산에 공무원 해외연수 비용을 포함시킨 것이 계기가 됐다.
마산시, 해외연수에 5천만원 집행
마산시는 이번 추경예산에서 내무행정의 대외여비 명목으로 1인당 3백만원씩 총 5100만원(인솔자 2명 포함 총 17명)의 예산을 책정했다. 올해 안에 정년퇴직하는 6급 이하 직원 15명(상반기 5명, 하반기 10명)을 9박10일 동안 영국·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독일 등 서유럽 5개국에 해외연수를 보내기 위한 것이다.
이 예산은 때마침 작년 말 창원시의 예산안을 검토하면서 비슷한 내용의 ‘공로연수자 해외연수’를 문제 삼았던 한 시민단체에 포착됐다. 창원시의 경우 몇 년 전부터 10명 내외의 공무원을 선정해 ‘위로여행’을 보내주고 있다.
마산시와 마찬가지로 9박10일이지만, 부부동반이기 때문에 연간 7천만원이 예산이 집행되고 있다. 조유묵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현직에 있는 공무원이 해외연수를 통해 시정의 질을 높이는 것은 권장할 일이지만, 퇴직을 눈앞에 둔 사람들한테 ‘연수’를 통해 배워온 성과가 있다한들 언제 써먹겠느냐”고 비판했다.
연수 내용도 문제다. ‘연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유럽의 선진 시정을 직접 보고 배우는 일정은 전혀 없이 오로지 문화재 등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으로만 짜여 있다.
마산시의 경우 이옥선 민주노동당 마산시의원 등이 “조만간 퇴직할 공무원한테 공짜 관광을 시켜준다는 것은 명백한 선심성”이라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무사히 예산심의를 통과했다. 마산시의회는 총 22명의 의원으로 구성됐으며, 한나라당 19석·민주노동당 2석·열린우리당 1석으로 배분돼 있다.
최근 한나라당 도의원 필리핀 관광성 외유 징계사건에서 보듯 지방의회 의원들이 해외연수도 만만찮게 큰일인 마당에 남 뭐라 할 입장이 못된다. 마산과 창원뿐만이 아니다.
김해시는 퇴직예정 공무원 전원에게 1인당 130만원을 지원해 4박5일로 태국·중국·필리핀 등 동남아에 보내준다. 올해는 12명에 1560만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동남아라 비교적 액수는 적지만 김해시도 부부동반에 공로연수자 포함이다. ‘공로연수’란 퇴직전 사회적응기간이라는 차원에서 1년간 유급 휴가를 받는 제도로, 이 역시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수’라는 명목을 내세우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더 큰 문제는 전국적으로 수많은 지자체에서 이와 유사한 위로 차원의 해외연수를 실시하고 있으며, 그 규모와 실체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 사무처장은 전화인터뷰를 통해 “우리도 우연찮게 해당 사안을 발견해 검토보고서를 냈을 뿐,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이런 식의 관행이 자리 잡은 것으로 짐작하지만 구체적으로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마창진시민연대는 마산·창원·진해 일대를 근거로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다.
마산시 관계자는 “이번에 문제가 된 해외연수는 공직생활을 통해 단 한 번도 해외연수를 다녀온 적 없는 이들만을 선별했고, 연수 이후 결과보고서를 제출받는 등 규정과 절차에 의해 철저히 관리됐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업무 연관성이 없는 기행문 수준의 보고서가 무슨 시정 기여도가 있겠느냐는 지적이 이미 나왔다.
“어느 지자체가 얼마나 집행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전국적으로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유사한 해외연수에 예산을 쓰고 있다. 다른 지자체와의 형평성, 공무원노조와의 관계상 우리만 안 할 수는 없다”고 덧붙인 답변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평생을 봉사한 공로를 인정해 보내는 것이므로 긍정적으로 봐달라”라는 해명도 일리는 있지만, 지자체 예산으로 해외연수를 보내는 것이므로 지역주민과 합의가 있었느냐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다.
시의회 심의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마산시의 경우와 같이 요식행위로 넘어가는 예산심의에서 해외연수 같은 작은 항목이 눈에 띄기는 어렵다. 당장 마산시 주민들만 해도 “의원들도 연수인지 관광인지 따지는 마당에 지자체 공무원을 그냥 넘어간다는 게 말이 되나”, “안 그래도 경제가 어려운데 혈세로 해외여행 보낸다는 있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시정기여도·지역주민과 합의 있었나
이미 이번에 파악된 것만 벌써 연간 2, 3억원이다. 전국적으로 추적하면 연간 수십억원 혹은 그 이상의 혈세가 효용도 합의도 없이 몰래 새어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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