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생명은 내 손에 달렸다!
환자의 생명은 내 손에 달렸다!
  • 이문원
  • 승인 2004.04.1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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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적 효과’ 높은 ‘의사 코믹’, 그 다양한 방향성을 살펴보자
최근 들어 모든 극예술 장르에서 '전문직'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 경우가 잦은데, 아무래도 '어디에나 있을 법한 누구나'의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보다는 보다 전문적이고 예외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살펴보면서 느껴지는 대리체험욕구의 충족이 기계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 대중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 이들 '전문직 종사자'들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분야라면, 뭐니뭐니해도 '다양한 계층의 여러 사람'을 만나보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일텐데, 일단 '경찰'과 '의사'의 이야기로 쉽게 양분될 수 있을 듯 싶다. '경찰'의 이야기가 추리 장르적 요소와 사회파적 시각이 강조되어 있다면, '의사'의 이야기는 의료행위에 대한 교육적 효과와 휴머니티를 강조하고 있다 볼 수 있으며, 지난 수십년 간 빈번하게 다루어졌던 경찰보다는 '외곬수 의사'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최근의 '트렌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이들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코믹들을 살펴보며,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졌던 의사 이야기와 코믹이 다루어내는 이야기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그리고 각 코믹마다 어떤 방향성으로 의사의 이야기를 다루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의적'인가 '의사'인가, 데츠카 오사무의 "블랙 잭" 일본만화계의 '천황'으로 불리우는 데츠카 오사무의 <블랙 잭>은 비록 우리에겐 낯설지 몰라도, 본국에서 그의 대표작인 <철완 아톰>, <정글대제>, <리본의 기사> 만큼이나 전설적인 '클래식'에 속하며, 실질적인 모든 '의사 코믹'의 아버지격으로 불리울 수 있을 법한 작품이다. 첫 등장 당시 비상한 관심을 모으며 일본만화가협회 특별우수상을 차지하기도 한 <블랙 잭>은, 그 '전설적인' 위치로 인해 연재 시점으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1996년에 극장판 <블랙 잭>이 탄생되기까지 했다. <블랙 잭>의 이야기 구조는 가히 넌센스 코미디에 가깝다. 천재적인 수술 솜씨와 의학 지식을 지니고 있는 '무면허 의사' 블랙 잭이 여러 난치병을 손쉽게 해결해버린다는, 그야말로 '사무라이' 이미지의 변형판으로 보일 법한 이야기는 그가 부자에게서 돈을 뜯어내어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는 '의적'의 테마를 삽입시킴으로써 '신화적 남성상'의 원형을 치고 지나가고 있다. 워낙에 극도로 단순화되고 과장된 기본 설정을 즐기는 데츠카 오사무로서는 별달리 의외랄 것도 없지만, 오사카 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그가 이처럼 '의학 지식'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환타지성 의사 이야기를 그려냈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의문으로 남고 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블랙 잭>은 그저 '의사'라는 직업군을 만화에 처음으로 '타이틀 롤'로서 등장시켰다는 점 외에는 그닥 주목할 만한 점이 없는 작품이지만, 적어도 카즈오 마후네의 <슈퍼 닥터 K>와 같은 넌센스 의사 코믹 - 망토를 두르고 다니며 신출귀몰하는, 자신 몸을 자신이 맨정신으로 수술할 정도로 터프한(!) - 장르를 이어나가게끔 하는 데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볼 수 있다. '의사'의 기본은 '환자와의 일체감', 야마다 타카토시의 "Dr. 코토 진료소" 는 수많은 의사 코믹들 중에서도 가장 교육적 효과가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생활 중에 겪을 수 있는 여러 사고·전염·질병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떤 병이 다른 병으로 오인되어 무시될 수 있는지, 우스꽝스런 민간요법이 사실은 적절한 조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이르기까지 일목요연하게 열거하고 있는 것. 그러나 의 '진정한 주제'는 단순한 일반 의료 상식의 전달이 아니라, 대도시의 병원에서 일하던 의사가 '의료 조직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외딴 섬의 진료소 의사로 부임해 펼치는 '의료 휴머니즘'의 구현에 더 가깝다. 의 무대가 되는 시키지마 섬은 실로 다양한 인간군상의 집합소와도 같다. 의료 행위에 무지한 섬 사람들을 상대로 '섬의 건강'을 책임지는 닥터 코토는 의료 행위의 근본, 즉 '환자에의 심정적 배려'를 통한 '일체감'을 가장 분명하게 지키고 있는 의료인이며, 이런 인본주의적 사고와 대도시의 경제논리상의 의료 행위를 교차시키며 '도시-농촌', '문명-비문명', '순수성-타락성'의 단순 대비를 끊임없이 - 어찌보면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 강조하고 있다. 에피소드식 구조가 가장 적절하게 드러나고 있는 는 첫 등장 당시부터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대로 지난 2003년, 후지 TV를 통해 드라마화되어 전파를 타기도 했으며, 드라마성과 교육성, 그리고 주제의식이 튀지 않고 잘 배합된 '교과서적 케이스'로 들 수 있을 법한 작품이다. '의료'는 그 자체로 '사회문제'다, 사토 슈호의 "헬로우 블랙잭" <해원>을 통해 박력있는 그림체와 역동적인 연출력을 선보인 사토 슈호의 <헬로우 블랙잭>은, 과연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데츠카 오사무의 <블랙 잭>에 대한 헌사이자 대립형 명제임을 암시하고 있다. <헬로우 블랙잭>은 지금껏 등장했던 모든 의사 코믹들 중 가장 파격적이고 대담무쌍한 작품이다. 의료 행위를 통해 엮어지는 훈훈한 감동의 드라마를 '기본'으로 여기던 기존 의사 코믹의 틀을 깨고, 실제 일본에서 행해지는 의료 행위의 모든 문제점을 짚어내고 있는 <헬로우 블랙잭>은, 일본의 '병원수 대 의사수' 문제에서부터 야간진료 문제, '대학병원'이라는 복합적 기능 기관의 문제, 의료보험법의 아이러니, '파벌'의 문제, 그리고 '생명 윤리'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가히 사회문제로서 부각될 수 있을 법한 모든 '의료상의 딜레마'를 속속들이 파헤쳐 해부해내고 있다. 이런 충격적인 사회고발적 요소와 함께, 현재 다케히코 이노우에(<슬램 덩크>)와 함께 가장 뛰어난 동작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되는 사토 슈호의 강렬한 필치와 연출력에 크게 힘입어 <헬로우 블랙잭>은 일본에서 단행본 1, 2권 동시 출간의 175만부, 3, 4권 동시출간으로 410만부를 팔아치우는 대기록을 세우고 있으며, '코믹' 장르로서는 예외적으로 일본문화청에서 주관하는 '문화청 미디어 예술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헬로우 블랙잭>의 엄청난 상업적/비평적 성공에 힘입어 현재 일본에서는 수많은 의료 코믹들이 '사회파' 코믹화되어 가는 경향이 엿보이고 있는데, 이를 통해 '안정적 휴머니즘' 표출의 장으로서 여겨지던 많은 고정 쟝르들이 보다 더 리얼리스틱하고 자극적인 방향으로 선회되어, 비단 '코믹' 장르 뿐 아니라 여타 극예술 장르에까지 그 파급효과를 끼칠 수 있는 문화적 '대변혁'의 중심에 바로 <헬로우 블랙잭>이 서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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