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5대 비리를 공약한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문제가 많았기 때문”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오후 청와대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에서 “만약에 공약을 구체화하는 인수위 과정이 있었다면 구체적인 인사 기준을 사전에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러지 못한 가운데 인사가 시작됐기 때문에 논란이 생기고 말았다”며 “지금의 논란은 그런 준비 과정을 거칠 여유가 없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 대해 야당 의원들과 국민들께 양해를 당부드린다”고 요청했다.
◆ 대통령, 계속된 인사논란에 직접 의사표명 “야당 의원들과 국민들께 양해 당부”
문 대통령은 “5대 비리에 관한 구체적인 인사 기준을 마련한다는 것은 결코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거나 후퇴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며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 당연히 밟아야 할 준비 과정”이라며 “구체적인 인사 기준을 마련하면서 공약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임을 다시 한 번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준이 늦어지고, 또 정치화되면서 한시라도 빨리 총리 후보자를 지명하고자 했던 저의 노력이 허탈한 일이 되어 버렸다”며 “또한 새 정부가 한시 빨리 진용을 갖추어서 본격적으로 가동돼 주기를 바라는 국민들께도 큰 걱정을 끼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공직인선 5대 기준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선거법 위반, 음주 운전, 그 밖의 범죄나 비리 등 더 큰 범죄 사유가 있을 수 있는 데도 특별히 5대 중대 비리라고 해서 공약했던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인사청문회에서 특히 많이 문제가 됐었던 사유들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저는 이 5대 비리를 비롯한 중대 비리자들의 고위 공직 임용 배제 원칙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와 깨끗한 공직 문화를 위해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이 지나치게 이상적인 공약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했다.
그는 “하지만 제가 공약한 것은 그야말로 원칙이고,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며 “사안마다 발생 시기와 의도, 구체적인 사정, 비난 가능성이 다 다른데 ‘어떤 경우든 예외 없이 배제다’라는 원칙은 현실 속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구분했다.
문 대통령은 “그렇다고 그때그때 적용이 달라지는 고무줄 잣대가 돼서도 안 될 것”이라며 “구체적인 적용 기준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미 발생한 논란들은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개별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서도 “앞으로의 인사를 위해서 국정기획자문위와 인사수석실, 민정수석실의 협의를 통해 현실성 있게, 그리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원칙을 지킬 수 있는 구체적인 인사 기준을 빠른 시일 내에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에 앞서 여야 원내대표도 인사청문 세부기준을 국회에서 마련키로 합의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정우택 자유한국당, 김동철 국민의당,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29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 회동에서 인사청문 검증 기준과 관련해 국회 운영위 소위를 열어 세부 기준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이 자리에 배석한 강훈식 의원은 “인사청문회 검증 기준과 관련해 국회 운영위 소위를 열어 세부 기준을 마련하자고 합의됐다”면서 “우 원내대표가 운영위 소위를 제안했고 다른 당 대표가 공감했다. 다만 ‘운영위 소위’ 부분에서는 여지가 있는지만, 논의 착수는 맞다”고 설명했다.
강 의원은 “전병헌 정무수석이 와서 보고했다. 전 수석은 인사청문회 관련해 송구스럽다. 인수위워원회 없이 출범하는 것에 대해 양해 부탁한다고 했다”며 “국정공백 최소화 위해 총리지명 서두르는 건 사실이다. 앞으로도 위장전입 관련 사전검증을 강화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강 의원은 이어 “향후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와 관련해서 인사 청문회 제도가 2005년 7월 도입되고 2006년 시행됐는데, 2005년 도입 이후에 위장전입 관련해서 원칙적으로 배제하겠다고 했다”면서 “전 수석이 2005년 이전 위장전입은 투기성에 대해 강력히 검증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낙연 총리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여부를 두고 야당의 반발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인선 일정이 지연되던 지난 26일 청와대는 임종석 비서실장이 사과를 발표했으나,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표명을 요구하면서 29일 오전까지 총리인준안 본회의 처리 일정이 정해지지 않고 있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26일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인사기준 문제에 대해 언론의 질문과 일부 야당의 사과요구 등이 있어서 국민께 설명 드리는 게 도리”라면서 “후보시절 5대 이사검증 기준으로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을 인사원칙으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임 실장은 “그 취지와 방향에 맞게 검증 중”이라면서도 “선거캠페인과 현실의 무게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양해를 구한다”고 했다. 이어 “심각성, 의도성, 반복성, 시점 등을 종합검토하고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도 고려하고 있으나 현실적 제약 안에서 인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좀 더 상식적이고 좀 더 잘 노력하겠다”며 “국민 눈높이에 다가가지 못한 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또 “국회 청문위원들께도 송구한 마음 이며 넓은 이해 바란다”고 당부하면서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으로 널리 좋은 인재 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비서실장의 사과에 이어 주말 내내 청와대와 민주당의 대여 설득 노력이 이어지고 마침내 대통령이 직접 양해를 구하고 나서자 일단 국민의당은 누그러진 모습이지만, 자유한국당은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29일 오후 의원총회 직후 국회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후보자가 위장전입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서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총리 인준안 처리에 협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5원칙에 대해 “대승적 차원에서 협조한다고 해놓고 조건을 거는 것은 아니다”라며 “문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스스로 천명한 약속이다. 그 원칙을 포기하는 것에 대해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을 통한 입장 표명이 아니라 대통령이 스스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이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야당과 국민들에 양해를 구한 데 대해서는 “그걸 원칙을 포기한 데 대한 유감표명으로 이해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자유한국당도 이날 의원총회를 열고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에 협조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우택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기자들에게 “대부분의 의원들이 압도적으로 총리 인준을 받을 수가 없다는 입장으로 정리됐다”며 “대통령이 선거전에 직접 언급한 내용을 이행하라는 것인데 그것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정 원내대표는 “더군다나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 말한데 대해 강박관념까지 갖고 있다고 했는데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빨리 하다 보니 검증을 못했다는 이유로 총리 인준을 해줄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이유를 들었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위장전입 거짓말’ 논란이 불거진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지명철회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해서는 겸직금지 위반 의혹의 해명과 즉시 사퇴를 요구하는 등 문재인 정부의 인선에 대해 맹공을 이어갔다.
새 정부의 첫 총리 첫 국회 인준 과정부터 순조롭지 않았지만, 일단 40석의 국민의당이 협조를 밝힌 만큼 자유한국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 인준 통과는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의 근거 없는 의혹제기와 인신공격 등으로 국민들의 '문자폭탄' 혹은 '문자세례'에 시달리며 '역검증'을 당했던 야당 의원들로서는 앞으로의 인사청문회에서는 보다 더 '대승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국회 본회의 인준은 31일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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