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한 소설, 익살스러운 실험
비루한 소설, 익살스러운 실험
  • 고미정
  • 승인 2006.10.2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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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소설집
▲ 이기호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11개월 동안 산 속에서 소설을 쓰다 내려와보니 그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해 세상이 변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심사를 받고 직업에 따라 흩어지는데, ‘소설가’라는 직업은 없다. “그가 라이터를 켜면 그곳에 소설이 있었고 그가 라이터를 끄면 소설은 사라졌다.” 자기 작품을 읽어주려고 콜걸을 여관방으로 부르는 소설가. ‘오디오용’이라며 천연덕스럽게 소설을 읽어주는데 소설 내용은 어느새 최면의 주문으로 변한다. “당신은 이제 그 빛을 따라 걸어가게 됩니다. 제가 그 빛 속으로 당신을 인도할 겁니다.” 소설가 이기호의 2번째 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는 영상매체의 기세에 눌려 꺼져가는 소설의 운명을 담았다. 첫 책 <최순덕 성령충만기> 이후 2년 만이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제목은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서 따온 것이다. 표제작은 <문학동네> 여름호의 작가 특집 때 발표한 자전소설이다. 단편 <수인> 속의 소설가는 결국 곡괭이질을 하는 노동자로 전락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를 “수영은 책과 함께 순교한 것이 아니라 곡괭이와 더불어 다시 태어난 것”이라 해설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소설집에서도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선보인다. <할머니, 이젠 걱정 마세요>는 할머니와 주고받는 대화만으로 소설을 마무리하고,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은 TV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의 말투를 따왔다. <당신이 잠든 밤에>와 <국기게양대 로망스: 당신이 잠든 밤에 2>에서는 <최순덕 성령충만기>의 시봉이 다시 등장한다. 기이함의 과시가 지나쳐 서사적 필연성이 미달한다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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