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의 시대가 열렸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체제에 대한 비판은 아직 끊이지 않는다. 왕성한 호기심과 대중적인 글쓰기로 유명한 다치바나 다카시는 최근 <멸망하는 국가>(이언숙 옮김, 열대림 펴냄)을 통해 고이즈미 정부가 구축한 일본 사회를 진단했다.
이 책의 메시지는 일본은 ‘고이즈미 개혁’이라는 미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아베 총리로 정권이 바뀐 것에 대해서는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고이즈미와 아베의 큰 차이라고 하면, 아베는 맨 처음부터, 다시 말해 총리 후보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헌법 개정을 자신의 핵심 정책으로 삼아왔다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고이즈미 정부와 아베 정부의 지향은 같고 단지 아베 정부 쪽이 더 적극적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책은 작년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닛케이BP> 인터넷 웹사이트에 연재된 칼럼들을 발췌해 엮은 책이다. 당시의 현안을 다뤘기 때문에 주제가 다소 산만한 느낌은 있으나,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정부를 진단한다는 일관된 주제의식이 엿보인다. 이 칼럼은 연재 당시 1천만 회 이상의 조회건수를 기록했다.
책은 야스쿠니, 헌법, 고이즈미 개혁, 이라크, 미디어, 라이브도어 사건, 천황에 관한 7가지 주제로 나눠졌다.
이중 ‘라이브도어 사건’이란 일본의 대표적인 IT기업인 라이브도어가 후지산케이 계열의 닛폰방송을 매수한 과정을 일컫는 말로, 라이브도어 주식을 제공받아 공매와 재매수를 거듭하면서 미국계 투자은행인 리만브러더스가 엄청난 수익을 챙긴 사건이다.
고이즈미 체제에 대한 비판의 중심은 ‘미래가 없다’는 말로 요약된다. 정계·관계·경제계·지역에 만연된 일본 엘리트주의를 혁파했지만, 혁파 이후 국가를 이끌고 갈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비전이 없기 때문에 민족주의에 의존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귀결되는 동아시아 갈등이 빚어졌다는 것.
일본의 현안을 살펴보는 다치바나의 시각은 다소 과격하다. ‘라이브도어 사건’에 대해서는 “미국 금융자본의 일본 강탈노선”이라 표현하고 “일본은 미제국주의의 종속국가”라는 일본공산당의 구호에 일정부분 동의하기도 한다. 또한 군대와 전쟁을 포기한 헌법 9조를 “오늘날 일본의 정치적·경제적 성공을 이끌어낸 일등공신”이라 평가하는 데서 다치바나의 정치적 성향을 읽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