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여름밤의 꿈"
최근 들어 '번안극'이 봇물처럼 터져나와 우리 연극/뮤지컬 무대를 휩쓸고 있다. 우스꽝스런 노랑가발과 멋쩍은 서양식 의복을 입고 서구식 사고방식을 이야기하는 연극에 더 이상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 관객 - 영화나 음악과 같은 다른 장르들 역시 이제는 '우리 것'이 확실하게 시장을 장악해냈다 - 들에게, 서구의 걸작희곡을 전달하기 위해선 반드시 '번안'이라는 과정을 거쳐 더 이상 사대주의적이지 않은 한국관객들의 입맛에 맞춰주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버린 것. 이번에 서울예술단에서 준비한 "여름밤의 꿈"은 이런 '번안극 열풍'의 와중에서도 돋보이는 작업을 해내고 있는 독특한 케이스이자 모종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여름밤의 꿈"은 수많은 셰익스피어극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한여름밤의 꿈"을 번안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극의 번안극은 국내에서도 숱하게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이지만 - 아마도 수많은 번안극 중 가장 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듯 싶다 - "여름밤의 꿈"은 그 '완벽한' 번안화로 확연한 차별성을 두고 있다. '동양의 고대적 환타지'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펼쳐지는 "여름밤의 꿈"은, 단오날 밤 벌어질 백제의 왕 다루와 마한의 여군주 나누의 결혼식이라는 '한국 고대사'에 훌륭하게 밀착된 설정을 놓고, 한국화된 토속적 유머와 재치, 기발한 상상력을 풀어내 보이고 있다.
"한여름밤의 꿈"이 지녔던 가장 큰 매력인 '꿈'과 '현실' 간의 경계의 부재, 몽환적 상황, 극도로 로맨틱한 설정 하에서도 나름의 풍자적 요소와 날카로운 센스를 절대 놓치지 않는 극의 전개 등을 고스란히 담아내려 애쓴 작품이다. 항상 세련된 프로덕션 디자인과 독창적인 방향성으로 많은 호응을 얻어온 서울예술단의 작품이니만치 그 기대감은 이미 여늬 셰익스피어극 번안극을 훨씬 상회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완성도 높은 대중 작품'을 만들겠다는 극단의 취지에 가장 적합한 아이템일 듯 여겨진다.
(장소: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일시: 2004.05.08∼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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