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오닐의 고통스런 '가족잔혹사'
유진 오닐의 고통스런 '가족잔혹사'
  • 이문원
  • 승인 2004.04.16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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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
20세기 희곡사에 길이 남을 인물 유진 오닐의 일생은 '영광'과 '오욕'이 교차하는, 어찌보면 '위대한 예술가'의 전형과도 같은 것이었다. 퓰리쳐상 4회 수상은 물론,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쥐어 세계 희곡계의 정상에 우뚝 선 그는, 결국 그의 표현대로 '빌어먹을 호텔방에서 태어나 호텔방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 - 어머니의 이름을 제외하면 모든 작가의 가족 이름을 실명으로 썼다 - 를 담은 "밤으로의 긴 여로"는 그 자체로 위대한 문학작품인 동시에 유진 오닐이라는 작가의 의식세계가 어떤 경험과 고통을 거쳐 완성되었는지를 살필 수 있는, 모종의 '정서적 탐험담'이라 볼 수 있다. 전체 극을 하루 동안의 이야기로 압축하여 전달하고 있는 이 작품은, 가난에 몸에 배어 찌들어버린 아버지와 마약중독에 빠진 어머니, 삶에 대해 총체적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장남, 니힐리즘에 빠져있는 폐결핵 환자 차남으로 이루어진 '절망의 가족'을 차례로 묘사하면서, 이들이 결국 이 고통의 굴레에서 절대 빠져 나갈 수 없음을, 더 나아가 이들의 고통의 시간과 함께 더욱 악화될 것임을 보여주어,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의 인간의 타락성에 대해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번에 다시 한번 우리 앞에 선보이고 있는 "밤으로의 긴 여로"는 연극 "베니스의 상인", "베케트", "겨울 사자들" 등을 통해 '고전극'의 베테랑으로 평가받고 있는 김성옥이 '티론' 역을, 2001년 공연예술제 여자연기상을 수상한 우상민이 '메어리'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으며, 숱한 번안극의 열풍 속에서도 꿋꿋이 '번역극'의 자리를 지켜나가고 있는, '고전의 위대함'을 피력하고 있는 작품이다. (장소: 우석 레퍼토리 극장, 일시: 2004.04.0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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